답답할땐 맥모닝

복잡한 마음을 푸는 단순한 방법

by 김태민

마음이 답답할 때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 맥도날드에 간다. 겨울 아침은 새벽과 구분되지 않는 새까만 밤의 모습을 하고 있다. 찬바람을 얼마간 맞고 있다 버스를 탄다. 사람 하나 없는 몇 개의 정류장을 그냥 지나치다보면 금세 도착한다. 횡단보도를 건너 코너를 돌면 이제 맥도날드가 시야에 들어온다. 출근 시간 전의 텅 빈 거리를 가로질러 매장의 문을 열고 들어간다. 졸린 눈을 하고 있는 아르바이트생이 똑같이 졸린 눈을 고쳐 뜨고 메뉴판을 살펴보는 손님을 심드렁하게 쳐다본다. 4인용 테이블을 혼자서 차지하고 앉은 사람들은 모두 조용히 맥모닝을 먹고 있다. 그리고 나도 그들처럼 4인용 테이블을 혼자 차지하고 앉아 금방 나온 맥모닝 세트를 먹는다. 갓 튀겨 나온 해쉬브라운은 혀끝에 대지도 못할 만큼 뜨겁다. 손가락 끝으로 조심스럽게 반을 갈라놓고 식기를 기다린다. 하얀 김이 피어오르는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시고나서 맥머핀의 포장을 벗긴다.

퍽퍽한 잉글리시 머핀 사이 바짝 익힌 계란과 둥글넓적한 소시지. 한 입 가득 베어 물면 입 안 가득 가공된 소시지의 인공적인 육향이 퍼진다. 대뇌가 맛의 유무를 판별하기도 전에 턱은 반복적으로 움직이면서 입 안의 내용물을 식도로 차곡차곡 넘긴다. 씹으면 씹을수록 짜고 뻑뻑하다. 입 안 가득 찬 짠 맛과 텁텁함을 씻어내기 위해 나는 아메리카노를 천천히 들이킨다. 이 과정을 세 네 번 반복하고 중간 중간 해쉬브라운을 몇 번 베어 먹다보면 어느새 식사는 끝난다. ‘별 맛 없구나.’ 라는 생각은 쓰레기통에 내가 먹은 잔해들을 밀어 넣을 때 떠오른다. 아무 의미 없는 식사를 의식처럼 치르고 그대로 정류장으로 돌아가 버스를 타고 집으로 온다. 그리고는 책을 좀 읽다가 늘 그렇듯이 그림 그릴 준비를 한다. 집을 나설 때의 복잡한 마음은 없다. 가슴을 꽉 막고 있던 쓸데없는 감정들은 퍼석퍼석하고 짠 맥머핀을 씹어 넘길 때 함께 사라졌기 때문이다.

나에게 있어 아침 일찍 맥도날드에 가서 퍽퍽한 맥머핀을 먹는 것은 일종의 ‘의식’이다. 맛에서 기쁨을 느끼는 행위를 배제하고 그저 씹는 것에 집중하면서 머릿속을 비워내는 의식이다. 이리저리 마음을 어지럽히는 감정을 가만히 앉아 다스리는 일은 정말 어렵다. 재미있는 영화를 보고 맛있는 음식을 좋은 사람과 함께 먹어도 사라지지 않는 감정이라면 더욱 어렵다. 이런 감정에서 벗어나고자 몇 번이고 다시 생각하고 정리하면서 내면의 되새김질을 해보지만 그렇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다.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가슴을 답답하게 만드는 감정의 덩어리는 씹어도 크기가 줄지 않는 껌과 같다. 열심히 씹어봐야 내 맘만 아프다. 그래서 나는 맛을 느낄 필요 없는 맥머핀을 씹으면서 풀리지 않는 감정의 되새김질을 턱관절의 저작운동으로 치환해버린다.

입 안 가득 텁텁함을 선사하는 몇 덩이의 맥머핀을 감정의 응어리라고 생각하면서 열심히 꼭꼭 씹어 넘긴다. 맛을 음미하는 감각도 바쁘게 돌아가는 사고의 톱니바퀴도 모두 정지한 채 오로지 턱관절만 바쁘게 상하운동을 한다. 그렇게 씹고 삼키고 마시고나면 거짓말처럼 가슴 속이 깨끗하게 비워진다. 단순하다 못해 원시적인 방법이지만 나는 이보다 더 효과적인 감정의 해소방법을 아직까지 발견하지 못했다.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역지사지의 태도라고 해도 세밀한 감정의 결을 파악하여 받아들이는 일은 늘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때론 단순한 방법이 복잡한 머릿속과 답답한 가슴을 깨끗하게 비우는 해법이 되기도 한다. 알렉산더가 어지럽게 얽히고설킨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단칼에 잘라 풀어냈듯이 직관적인 방법으로 뒤엉킨 감정의 실타래를 푸는 시도가 필요한 것이다.

이해되지 않는 감정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많은 시간을 소비한다.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을 받아들이기 위해 소모되는 에너지는 또 얼마나 많은가. 상식을 벗어난 누군가의 행동을 나의 기준으로 해석하려는 시도는 바람직하지만 이해라는 결과까지 도달하는 과정에서의 답답함은 쉽게 감당하기 어려운 스트레스다. 받아들일 수 없는 일들은 그대로 놓아버려야 한다. 머리와 가슴에 담을 수 있는 생각과 감정은 한계치를 가지고 있다. 용량을 초과해버린 감정은 쉽게 풀기 힘든 고민이 되어 자신을 괴롭힌다. 억지로 받아들이지 않아도 괜찮다. 이해되지 않은 감정은 퍼석퍼석한 빵을 씹어 삼키듯 씹어서 잊어버리는 것이 좋다.길게 이어진 한강 변의 트랙을 달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허벅지가 터질 것 같은 근육통을 느끼며 높은 산을 올라가는 것도 괜찮다. 중요한 것은 이해되지 않는 감정과 해소되지 않는 의문들을 머리와 가슴에서 말끔히 비우기 위한 단순한 행동을 실천하는 것이다.

세상 모든 고민을 짊어진 듯 어두운 표정을 하고 있는 사람을 보면 나는 맥머핀을 건네고 싶다. 아주 맛있지도 맛이 없지도 않은 빵을 씹으면서 복잡한 감정도 같이 잘게 씹으라고 말해주고 싶다. 입안의 물기를 쫙 빼앗아가는 빵의 퍽퍽함에 갈증이 날 때 쯤 아메리카노 한 모금을 쭉 마시라고 권하고 싶다. 입안에 잔뜩 뒤엉켜 있던 텁텁함이 사라지는 순간 동시에 꽉 막혀 있던 감정의 응어리들이 잘게 부서져 나가는 경험을 할 수 있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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