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사는 것과 글을 쓰는 것은 같은 의미다
한참동안 노트북 화면 속 깜빡이는 커서를 노려보다 자리에서 일어난다. 창문을 활짝 열어 방 안의 공기를 신선하게 바꿔주고 향초를 꺼내 불을 붙인다. 발걸음은 부엌을 향하고 주전자에 물을 끓여 녹차를 손에 들고 창가로 다가간다. 오후의 햇살이 가득한 공원의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산책로를 따라 걷는 사람들 열심히 운동을 하는 사람들 그 위로 하늘이 그림처럼 고운 푸른빛을 띄우고 있다. 하늘을 올려다보며 코로 숨을 크게 한 번 들이마신다. 글이 잘 써지지 않아 답답한 마음이 조금이나마 진정된 느낌이다.
원하는 대로 뜻대로 글이 잘 써지는 경우는 드물다. 뒤죽박죽으로 섞인 머릿속의 단어들을 가지런히 모아 하얀 화면위에 정렬시키는 일은 언제나 어렵다. 특히 무수히 많은 동의어 중에 문장에 들어가기에 가장 적합한 하나의 단어를 선택하는 작업은 피곤함까지 동반한다. 때론 만족스러운 문장이 손끝으로부터 흘러나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글을 완성해주기도 하지만 그럴 때면 꼭 다음 내용을 이어나갈 알맞은 단어와 그럴싸한 표현이 떠오르지 않아 난감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엉덩이를 의자에 딱 붙이고 계속해서 글을 쓴다. 쓰다보면 또 자연스럽게 막힌 부분이 뚫리기 때문이다.
지겹게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면서 천천히 단어의 꼬리를 잇다 보면 힘들게 쓴 긴 문장을 지워버려야 할 때도 있다. 그리고 갑작스레 떠오른 표현이 마음에 들어 잘 배열된 글의 흐름을 통째로 바꾸는 일도 생긴다. 글쓰기는 이렇듯 답답함과 난감함의 연속이지만 그럼에도 나는 계속해서 글을 쓰고 싶다. 글쓰기의 어려움을 통해 느낀 삶의 깨달음이 내게 큰 힘이 되었기 때문이다. 글쓰기 지루하고 고단한 작업이다. 생각대로 글이 써지지 않아 몇 시간 혹은 며칠을 고민하기도 한다. 아무리 쓰고 또 고쳐보아도 결말이 나오지 않는 글은 그대로 방치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렇듯 힘겨운 글쓰기에 중단은 있어도 포기는 없다.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는 우여곡절 끝에 언제나 글은 한 편의 작품으로 변모한다. 고된 시련의 반복 속에서도 결코 삶이 끝나지 않는 것처럼 긴 수정과 보완의 과정은 반드시 글의 완성이라는 결과로 이어진다.
한 편의 글은 수많은 창조와 삭제의 결과물이다. 단 번에 완성되는 글은 없다. 긴 분량의 소설이든 몇 글자 안 되는 단편시든 지루한 반복을 거쳐 아주 천천히 만들어진다. 그래서 글쓰기는 세상을 살아가는 일과 무척이나 많이 닮았다. 삶은 도전과 실패를 통해 성공으로 이어지고 글은 수정과 보완을 통해 하나의 작품이 된다는 점에서 닮았다. 글쓰기는 무수한 창조와 삭제의 반복을 통해 완벽이 아니라 완성을 찾아가는 작업이다. 아무리 뛰어난 작가라도 지루한 반복을 통해 완성을 지향하는 글쓰기의 법칙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글쓰기는 반칙이 없다. 치사한 수법과 비열한 술수가 통하지 않는다. 잘 쓰기 위해서는 많이 써야하고 많이 쓰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을 들여 지루한 수정과 끝없는 보완의 과정을 견뎌야 한다.
아마추어나 유명작가나 모두 글을 쓸 때는 텅 빈 하얀 화면을 마주하는 똑같은 시작을 경험한다. 서로의 상황과 사회적인 위치는 달라도 창작의 출발선은 언제나 평등하다. 그리고 지루한 과정을 거쳐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면서 완성을 향해 천천히 전진한다. 정직하게 그리고 꾸준하게 쓰고 또 쓰는 일이 글쓰기의 본질일 것이다. 그래서 글쓰기는 답답하고 또 갑갑하다. 하지만 그 갑갑함을 견디면서 글을 쓰는 동안 나는 어려움을 버텨내는 우직함을 배웠고 막힌 길을 돌아가는 유연함도 배웠다. 뜻대로 되는 것보다 되지 않는 것이 더 많다는 것을 나는 글을 쓰며 깨달았고 다시 일어서는 방법 역시 체득할 수 있었다.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나는 몇 번이나 Backspace와 delete키를 눌러 쓰고 지우기를 반복했다. 그 와 중에 몇 번은 insert를 누른 탓에 멀쩡하게 잘 쓴 문장을 날려버리기도 했다. 잘 써지지 않아서 문단을 통째로 지워버리기도 했고 이런저런 단어를 바꾸느라 꽤 골치가 아팠지만 괜찮다. 과정이 조금 힘들긴 했어도 결국 이 글을 완성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 살아가는 일도 글을 쓰는 것처럼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 나가다보면 아름다운 완성에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 사는 것과 쓰는 것은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둘 다 잘할 수 있도록 둘 다 매일매일 끈기 있게 해내야겠다. 힘들어도 중단해도 결코 포기하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