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손잡아

백마디 말을 대신하는 한마디

by 김태민

나는 안다. 당신이 얼마나 힘들고 외롭고 또 답답한지. 밝게 웃어 보이는 얼굴 아래 잠시 차오르다 해물어지는 달그림자처럼 슬픔이 지나는 것을 본다. ‘잘 지내고 있어. 힘든 일 없어 일 하느라 바쁘고 다들 그렇게 살잖아.’ 라는 말 저변에 침묵하듯 웅크린 슬픔의 크기를 조용히 혼자 가늠해본다. 선뜻 손을 내밀어 등을 다독여주기도 유려한 명언을 던져가며 힘을 내라고 말해주기도 쉽지 않다. 그런 작은 손길과 어설픈 위로가 품기엔 당신의 아픔과 고뇌가 너무 크고 또 무겁기 때문이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연예인들이 나오는 예능 프로그램을 보고 잘생긴 남자 주인공이 나오는 드라마에 시선을 던지기도 하지만 티브이를 끄면 당신은 또 혼자만의 시간을 감내해야 한다. 철저하게 혼자라는 감각이 한기처럼 가슴을 파고들지만 선뜻 입 밖으로 누구에게 그 감정을 털어놓을 수 없다. 모두가 힘들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살아가는 일은 괴로움이고 젊음에게 청춘은 아프지만 견뎌내야만 하는 서글픈 통과의례와 같다. 핸드폰을 들어 화면을 올리고 내리기를 몇 번. 메시지를 보내기도 전에 용기는 사라지고 당신은 조용히 노트북을 켜서 영화를 보기 시작한다. 울기 위해 슬픈 영화를 고르는 당신을 알기에 나는 쉽게 힘내라는 말을 꺼낼 수가 없다.

언제부터 술자리에서 밀린 대출금과 통과 되지 않는 이력서들이 미래에 대한 희망과 꿈을 밀어내버렸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눈물을 차마 보이기 어려운 어른이란 나이와 사회인이란 이름표가 한숨조차 쉽게 뱉지 못하게 만든다. 가면을 쓴 것처럼 산다. 힘들다는 말이 언제부터 무능력함과 나약함을 의미하게 된 것 일까. 힘겹게 털어놓은 고민이 다른 날 어느 술자리에서 가벼운 안주거리처럼 떠오르다 차게 식어버리는 것을 알고 나서부터 당신은 쉽게 힘들다는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천천히 그러나 꾸준하게 모두 담을 쌓아 올린다. 갖가지 화려한 장식을 달고 자극적인 네온사인을 달아 꾸미고 장식한다. sns 상의 모든 사람은 행복한 일상을 자랑하듯 뽐내며 ‘난 괜찮아 난 행복해.’ 라는 메세지를 광고하듯 보여주고 있다. 울고 싶고 무너져 내리고 싶고 당장 주저앉아 풀지 못한 숙제처럼 갑갑한 마음을 쏟아내고 싶지만 마음의 언어는 웃고 있는 이모티콘으로 치환되어 좋아요를 누르고 있다. 당신은 아프다. 웃고 있지만 슬프다. 괜찮다고 말하지만 힘겹다. 다 포기하고 싶고 도망치고 싶지만 여전히 발은 출근길 정류장을 향한다.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당신은 바쁜 하루를 보낼 것이고 외로움과 아픔은 그 하루만큼의 무게를 달고 당신의 심장 위로 내려앉을 것이다.

예전보다 조금 흐려진 그리고 조금 부은 듯한 당신의 눈을 보며 나는 ‘괜찮다.’ 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가능하다면 추운 날씨로 인해 조금 딱딱해진 당신의 손도 잡아주고 싶다. 잡은 손아귀 위로 뛰는 맥박이 전해지도록 꼭 잡아주고 싶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이것뿐이다. 날씨가 춥다는 핑계로 손이 왜 이렇게 차냐는 뻔한 멘트를 날리며 손을 잡고 싶다. 주어도 목적어도 없는 ‘괜찮아.’ 라는 말을 빨개진 당신의 귓가에 흘려 넣어주고 싶다. 그리고 나는 소망한다. 오늘 저녁만큼은 당신이 슬픈 영화를 고르지 않기를 드라마도 예능프로그램도 보지 않고 편안하게 잠자리에 들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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