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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민 Oct 26. 2023

시간은 늘 감정을 이긴다

다 괜찮은 사람은 없다 모두 흔들리면서 산다

 멋진 인생은 기대하는 일들이 모두 이뤄진 삶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기대보다 익숙한 것은 실망일 것이다. 도전하고 기대하고 실패하고 납득하고 다시 기운을 해서 계속하는 . 아마도 삶을 문장으로 만든다면 이런 것이 아닐까. 정말  풀리는 인생은 기대한 것들이 모두  성공으로 이어지는 것일까? 그런 삶을 살아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기대와 실망의 반복에서   어른스럽게 슬픔을 받아들이고 싶다.


 간절하게 원할수록 꼭 결과는 늘 실패로 이어졌다. 사랑도 그랬고 일도 그랬고 자잘하게 꿈꿨던 요행도 마찬가지였다. 로또 맞지 않는 걸 보면 행운의 여신은 나랑 일면식도 없는 관계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하는 것들이 실패하고 나면 꽤나 오래 좌절하고 슬퍼했던 날들이 많았다. 성숙한 인간이 아니라서 그런 걸 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이나 어른이 된 지금이나 나는 철이든 적이 없었다. 그냥 한결같이 철이 없었다. 나이가 들면서 그때마다 표정을 바꿔가며 스스로를 숨겼을 뿐이다.


 꿈을 먹고사는 인생을 택하고 나서 더 많이 좌절했다. 차근차근 성과를 내면서 계단을 밟듯이 삶이 발전할 줄 알았다. 초창기의 성과는 지금 생각해 보면 초심자의 운이었고 운 좋게 터진 럭키펀치나 다름없었다. 여전히 나는 멋진 인생과 거리가 멀었다. 소망하는 것들이 실패로 이어지면 한동안 좌절하고 한 번씩 절망한다. 결과를 생각하고 도전하는 것은 아니지만 패배의 쓴맛은 쉽게 가시질 않는다. 스스로를 패배자로 몰아세우는 것은 언제나 본인의 자괴감이다. 그러나 알면서도 나는 매번 기대를 벗어나는 결과에 화가 나고 짜증이 난다.


 내일모레 불혹이 얼마 남지 않은 나이를 달고 있지만 사는 게 뭔지 아직 감이 오질 않는다. 사람들은 본인의 삶에서 적당한 타협점을 찾았을 텐데 나는 아직 멀었다. 그저 작은 목표인데도 제대로 성취하지 못할 때 스스로가 부끄러웠다.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던 일이 실패로 끝나면 자신이 그렇게 초라해 보일 수가 없다. 물론 나는 늘 내편이라 절망하고 실망해도 매번 가까스로 벼랑 끝에서 기어올라온다. 그래도 살아야 하고 그래도 계속해야 하니까. 지나온 날들을 실패로 만들지 않으면 어쩔 수 없이 계속해야 한다.


 중학교 시절 친하게 지냈던 친구는 수학을 좋아했다. 고등학교에서 가서도 수학을 좋아했고 좋아해서 그런지 수학을 참 잘해서 수학과를 갔다고 들었다. 우연히 대학을 졸업하고 만난 적이 있다. 공시생이 된 친구는 더 이상 수학에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고 고백했다. 인생은 복잡해도 수학은 답이 나와서 좋아한다고 말했던 중학생은 이제 없었다. 현실에서 살아남으려면 학문이 아니라 직업을 택해야 한다는 말이 기억에 남았다. 나도 그때 현실을 붙잡고 평범한 인생을 살았어야 했던 게 아닐까?


 선택은 늘 결과를 낳지만 결과는 늘 예상을 벗어난다. 변수는 복잡한 문제를 만들어낸다. 수학문제처럼 명확한 풀이법이 없는 인생은 꼬이기 시작하면 답이 없다. 가까스로 문제를 풀고 나면 또 다른 문제가 눈앞에 쌓이기 시작한다. 그렇다고 피할 수도 없으니 죽을 맛이다. 어떻게든 아등바등 버티면서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잘살고 있다고 생각한 적도 없고 잘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꿈꾸고 아직도 기대하고 사는 인생이지만 나는 사는 게 뭔지 전혀 모른다.


 책임과 의무를 다하면서 행복과 자아실현을 다 성취하는 멋진 삶도 있을 것이다. 내가 살아 본 적은 없지만 어쩌면 언젠가 나도 그런 삶을 살지도 모른다.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오늘이 초라하다고 내일까지 초라하게 만들 필요는 없다. 그냥 남들보다 더 많이 흔들리고 갈등하고 불안해하는 사람도 있다. 타고난 천성인지는 모르겠지만 예민하다는 단어나 유별나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하다. 그냥 나는 나답게 살면 된다. 실패도 하고 실수도 하고 망가지기도 하면서 느리더라도 하나씩 배우기도 한다. 멋진 삶은 아니더라도 떳떳하게 살고 있다. 일단 그러면 나쁜 사람은 아니니까 괜찮다고 생각한다.


 스스로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보는 것만큼 괴로운 것은 없다. 합리화하면서 사는 것은 쉽지만 자신에게 솔직해지는 데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 특히 몸과 마음이 지쳐있을 때 본인의 속내를 들여다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한 번씩 불안감과 회의감이 파도처럼 밀려올 때면 가면을 벗고 거울 앞에서 맨얼굴을 본다. 지친 얼굴의 초라한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내면의 황량한 풍경이 드러난다. 가만히 그 모습을 보면서 내가 얼마나 여유가 없었는지 깨닫는다. 감정이 메마르고 연민과 공감이 바닥난 채로 널브러져 있는 스스로를 외면한 채 살고 있었다. 한동안 내가 엉망진창으로 살아온 것을 깨닫는다.


 사람들의 푸념은 대게 비슷하다. 선택한 것에 후회하고 하는 일에 회의감을 느끼고 인간관계에 대한 피로감을 호소한다. 다들 지쳐있다. 나를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이 그냥 다 지쳐있다. 책임과 의무를 성실하게 수행하면서 행복과 만족까지 얻는 인생이 애초에 있을 리가 없다. 완벽하지 않은 인간이 완벽하게 산다는 것은 그저 환상일 뿐이다. 다들 적당히 거짓말하고 부풀리면서 웃는 얼굴만 보여주면서 사는 것이다. 괜찮은 척하지만 다 괜찮은 사람은 없다. 모두 흔들리면서 산다. 그러다 한 번씩 위태롭게 휘청거릴 때도 있다. 크게 넘어지기도 하고 자빠져서 바닥을 구르기도 한다. 그러므로 남을 부러워하거나 나를 깎아내릴 필요는 없다.


 사는 게 쉽지 않다는 생각이 나면 노트북을 꺼내 일단 글을 쓴다. 글로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고 나면 좀 편안해진다. 내가 어떤 마음을 품고 살아왔는지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차피 감정은 휘발성을 갖고 있다. 좌절감이 슬럼프로 이어질 때도 있지만 시간이 늘 감정을 이긴다. 당장 도입부를 쓸 때 느꼈던 감정은 벌써 누그러졌다. 자주 도전하고 자주 기대하고 자주 실패하면서 살다 보면 뭐라도 될 것 같다. 남들보다 나은 삶이나 남들만큼 잘 사는 것을 원한 적은 없다. 그냥 어제의 나보다 조금 더 나은 행동을 하면서 과거의 나에게 부끄럽지 않은 내일을 만들자. 기대하고 좌절하고 실패할 때마다 글을 쓰고 매번 다시 일어나서 또 앞으로 걸어보자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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