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분 옮기기

by 김태민

10월의 끝자락이다. 가을이 벌써 멀어져 가고 있는 느낌이다. 아침 일찍 창문을 열고 심호흡을 하면 하얗게 입김이 인다. 오후 4시만 넘어가도 해가 기울기 시작한다. 낮은 짧아지고 밤은 길어진다. 한 번씩 가을비가 내리고 나면 공기가 몰라보게 차가워진다. 몇 주만 지나면 아침마다 이슬이 아니라 투명한 서리를 보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새벽녘의 기온이 3,4도까지 내려가기 시작했다. 옥상의 화분을 옮길 때가 됐다. 추운 계절이 오기 전에 끝내야 할 일이다. 화분을 옮기고 김장을 하고 두꺼운 솜이불을 꺼내면 겨울이 시작된다. 한 해의 끝을 준비할 때가 왔다.


내 나이만큼 오래된 군자란을 제일 먼저 옮겼다. 고무나무와 작은 측백나무도 계단 아래로 내렸다. 작은 토분을 양손에 들고 오와 열을 맞춰서 정리했다. 빗물받이 통에 담긴 물을 바가지 한가득 떠서 화분에 뿌렸다. 흙이 금세 물기를 머금은 짙은 빛으로 바뀌었다. 젖은 흙내음을 맡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가장자리에 돋아난 잡초를 뽑아내고 벌레 몇 마리도 쫓아냈다. 빗자루로 바닥을 쓸고 뒷정리까지 마무리했다. 허리를 펴고 크게 기지개를 켰다. 뒤통수를 따듯하게 감싼 햇살이 옥상 바닥에 까만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고개를 돌려서 하늘을 구경했다. 구름 한 점 찾아볼 수 없는 맑고 푸른 하늘이 호수처럼 투명해 보였다.


봄과 가을은 찰나와 같다. 해를 거듭할수록 가을은 점점 더 줄어들고 있다. 긴 여름과 지루한 겨울 사이를 잇는 짧은 구간. 몇 주 되지 않는 기간이라 가을날은 더없이 소중하다. 시간이 더디게 흘러갔으면 좋겠다. 2주만 지나면 후드티 대신에 패딩을 입어야 할 것 같다. 해 질 녘이 되면 차갑고 건조한 바람이 분다. 찬바람이 볼에 닿을 때마다 파란 물이 빠진 건조한 빛깔의 겨울하늘이 떠오른다. 화분을 옮기고 나니 계절이 흘러가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한 해가 저물고 있다는 현실이 벌써부터 아쉽다.


한 달은 길고 일 년은 짧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간다는 말은 다는 아니라도 절반은 맞는 것 같다.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9월을 지나 여유를 조금 즐기다 보니 벌써 11월이다. 햇살 없는 그늘에 서면 한기를 느끼게 되는 늦가을이다. 계절은 늘 사람의 예상이나 기대보다 훨씬 더 빨리 변한다. 세월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파란 잎을 두르고 있는 군자란이 왠지 모르게 조금 쓸쓸해 보였다. 선홍빛의 고운 꽃을 가득 달고 있었던 봄날은 오래전에 꾼 꿈같다. 손끝으로 꽃대궁이 있던 자리를 쓰다듬었다. 가을이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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