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하늘 아래 내리는 하얀 햇살이 유난히 맑은 날이었다. 화창한 날씨 덕분에 아침부터 기분이 상쾌했다. 책을 빌려서 도서관을 내려오는 길의 풍경은 평소보다 훨씬 더 예뻐 보였다. 10월이 되면서 완연한 가을이 찾아왔다. 9월의 늦더위도 자취를 감췄다. 짙은 빛깔의 나무그늘 아래를 지날 때 부는 시원한 바람. 가방을 멘 어깨에 느껴지는 기분 좋은 무게감. 평범한 것들마저 행복하게 만드는 가을 날씨는 마법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뭇잎 사이로 모래알처럼 반짝이는 햇빛까지 예뻤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천천히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다. 그때 거짓말처럼 매미울음소리가 들렸다.
살며시 부는 바람결에 실려온 매미의 노랫소리는 청아했다. 무심결에 핸드폰을 꺼내서 날짜를 확인했다. 오늘은 10월 4일이었다. 계단을 내려가던 발걸음을 돌려 울음소리를 따라 걸었다. 온 동네에 가득했던 매미들의 합창은 몇 주전에 사라졌다. 그래서 노랫소리는 유난히 더 선명하게 느껴졌다. 단 한 마리의 매미가 부르는 노래는 도서관 뒷산 전체를 무대 삼아 울려 퍼지는 중이었다. 무성하게 돋아난 나뭇가지들 사이에서 맑은 소리가 흘러나왔다. 구름 한 점 없는 가을 하늘 아래 매미울음소리를 들으면서 한참 서있었다. 여름은 지나갔지만 아직 여름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여름과 함께 매미는 모두 자취를 감췄다. 훨씬 늦게 육지로 올라온 마지막 매미는 홀로 가을날을 산다. 큰 일교차와 차가운 가을비를 이겨내고 살아있다. 적응한 건지 버티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매미는 살아남았다. 동족에게 닿을지는 알 수 없지만 노래는 멈추지 않았다. 아포칼립스를 주제로 한 영화나 소설을 보면 세상에 혼자 남은 사람이 종종 등장한다. 멸망한 세상의 생존자처럼 매미는 고군분투하는 것 같았다. 패배하기 위해 태어나는 생명은 없다. 도전하는 사람이 실패를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매미는 가을을 상대로 자신의 삶을 증명하고 있었다. 노랫소리는 멈추지 않고 먼 곳까지 퍼져나갔다.
산들바람이 불었다. 일렁이는 나뭇잎이 만든 파도가 산등성이의 빛깔을 바꿔놓았다. 춤추는 나무들 사이 울긋불긋한 가을이 얼굴을 드러냈다. 매미의 노랫소리는 여름날의 환한 햇살처럼 맑고 선명했다. 10월의 문턱 앞에 두 계절 사이의 점이지대가 펼쳐져 있었다. 한참을 서있던 나는 벤치에 앉아 그 모습을 눈으로 보고 귀로 담았다. 바람과 노래는 여름과 가을이 나누는 대화처럼 느껴졌다. 편안하고 부드러운 자연의 언어는 듣기 좋았다. 10월이 선사한 선물을 혼자만 몰래 받은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