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긋하게 아침산책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보도블록 위에 놓인 작은 털뭉치가 시선을 끌었다. 다가가서 살펴보니 죽은 박새의 사체였다. 가만히 누워 있는 모습이 꼭 인형 같았다. 얼핏 보면 기절한 것처럼 보였다. 몇 초간 살펴봤지만 미동조차 없었다. 숨을 거둔 것이 확실했다. 커다란 통유리로 된 투명한 카페 유리창이 보였다. 유리창에 머리를 부딪힌 충격으로 죽은 것 같았다. 묻어줄 만한 곳을 찾아보려고 주변을 둘러봤다. 그러나 번화가 한복판이라 마땅한 곳이 보이지 않았다. 근처에 공원이 있었지만 땅을 팔만한 도구도 없었다. 공공용지에 동물의 사체를 매장하는 것 역시 불법이었다.
맨손으로 죽은 박새를 들고 집 근처 야산까지 가는 것도 무리였다. 머리를 굴려봐도 별다른 방법은 없었다. 결국 카페 근처 가로수 아래 흙이 드러난 곳에 죽은 박새를 올려놨다. 도시는 사람 손을 타지 않은 야생동물에게 무덤을 허락하지 않는다. 작은 동물의 사체는 쓰레기봉투 속으로 들어간다. 인간의 활동영역이 늘어난 만큼 동물들의 서식지는 줄어든다. 먹이가 줄고 쉴 곳이 사라지다 마침내 죽을 자리마저 잃어버리게 된다. 산 밑에 있는 우리 동네는 겨울만 되면 너구리들이 내려왔다. 음식물 쓰레기봉지를 뒤지는 모습이 귀여우면서도 처량해 보였다. 많은 동물들이 도시에서 밀려나 삭막한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어렸을 적에는 사람들이 죽은 동물을 보면 꼭 묻어줬다. 떠돌이 개나 고양이도 많았고 꽃과 풀로 뒤덮인 노지도 흔했다. 손길 한 번 닿은 적 없는 사이였지만 어른들은 동물의 사체를 보고 지나치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수습해서 삽으로 땅을 판 후에 매장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숙연함을 느꼈던 것 같다. 나와 관계없는 존재의 죽음을 외면하지 않는 어른들의 태도는 깊은 인상을 남겼다. 살아있는 생명을 존중하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진정한 존중은 죽음을 대하는 태도라는 생각이 든다. 마음이 태도를 결정된다. 그리고 행동은 태도에서 비롯된다.
박새를 묻어주지 못하고 돌아온 것이 마음에 걸렸다. 행동에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아쉬움이 남았다. 사람들은 생명의 소중함을 이야기하지만 그보다 더 현실적인 것은 죽음의 무게다. 결코 가볍지 않지만 한없이 가볍게 취급되는 죽음이 널려있다. 사람의 목숨이라고 해서 무거운 것도 아니다. 해마다 전쟁과 분쟁으로 희생되는 무고한 생명은 셀 수 없이 많다. 동물이나 사람이나 죽음의 무게는 점점 더 가벼워지고 있다. 모르는 사이에 생명의 가치를 잃어버리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