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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민 Nov 06. 2023

나를 닮은 가방

 공기가 많이 차가워졌다. 완연한 가을날씨다. 외출하기 위해 필슨 가방을 들었다. 두껍고 투박한 가죽손잡이를 쥐면 익숙한 촉감이 기억을 불러온다. 오래 사용한 물건은 내가 잊고 살았던 순간들을 고이 품고 있다. 10 넘게 사용하면서 군데군데 들러붙은 세월과 시간이 친근하게 느껴진다. 내가 나이가  것처럼 노란빛의 필슨 가방도 낡았다. 오래된 물건이 주는 편안함이 좋다. 차가운 계절이 되면 어딜 가든 필슨을 들고 다닌다. 성긴 눈이나 겨울비를 만나도 괜찮다. 때와 얼룩은 흔적을 남길  흠이 되지 않는다.  부릴 필요 없이 외출할  주저 없이 선택할  있는 가방이다.


 필슨은 캐주얼한 착장에 참 잘 어울리는 가방이다. 편안한 차림새는 마음도 편안하게 만들어준다. 그러다 보니 가장 애용하는 가방은 언제나 필슨이었다. 겨울철 외출할 때면 늘 왼손에 257이 들려있었다. 노트북이 들어있는 위스키컬러의 878은 내 출근복장이었다. 어깨에 메고 다니는 오터그린 컬러의 260은 내 데일리백이다. 가방은 삶을 담고 사람을 닮는다. 편안하고 단순한 삶을 추구하는 내 성격은 필슨 가방이 주는 느낌과 비슷하다. 생활이 계속되다 보면 삶이 된다. 시간이 누적되다 보면 세월이 된다. 한 사람의 인생에서 오랫동안 사용한 물건은 자연스럽게 삶을 품기 마련이다. 그래서 자주 들고 다니는 가방을 보면 삶의 방식이 보인다.


 나이가 들면 얼굴에 인생이 묻어난다. 사람이 자주 사용하는 물건 역시 삶을 드러낸다. 추억이 깃든 물건은 온기를 품고 있다. 세월의 흔적이 남은 오래된 가방은 늘 나와 함께한 고마운 존재다. 언제나 내 곁을 지켜준 좋은 친구처럼 편안하다. 사람도 물건도 편안한 것이 좋다. 화려하고 멋진 겉모습에 눈길을 주는 시기는 지나갔다. 시선을 끄는 매력은 생각보다 쉽게 질린다. 단 번에 마음을 빼앗은 장점은 시간이 지나면 제일 눈에 거슬리는 단점이 된다. 사람의 마음은 때가 되면 변하는 계절이 아니라 급변하는 날씨에 가깝다. 그래서 티를 내는 아름다움보다 티 내지 않는 평범함을 좋아한다. 평범함은 시간이 지나면 익숙함이 된다. 특별하지는 않아도 질리는 일은 없다.


 평범함을 품고 살아남은 것들은 구식이 아니라 클래식으로 대접받는다. 유행은 늘 유통기한이 정해져 있다. 그러나 클래식은 짧은 유통기한 대신 수명을 갖고 있다. 삶을 품고 있는 오래된 물건은 망가지기 전까지 늘 사람과 함께한다. 각별한 애정이 깃들어있다면 관리하고 고쳐가면서 사용한다. 관리해 가며 사용하다 보면 애착은 더 늘어난다. 자연스럽게 수명도 길어진다. 유통기한은 연장될 일이 없지만 수명은 연장될 수 있다. 10년은 긴 시간이다. 몇 번이나 트렌드가 변하고 스타일도 달라졌다. 그러나 클래식한 아이템은 여전히 현역으로 대접받고 사랑받는다.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 아래 햇살이 쏟아져내렸다. 필슨 가방을 전부 꺼내서 환한 가을볕을 쬐어줬다. 가방을 뒤집어가며 오래 묵은 먼지를 털어냈다. 햇볕이 닿은 곳에 녹인 왁스를 솔로 꼼꼼하게 발랐다. 한 번씩 리왁싱을 해주면 눈비를 맞아도 끄떡없다. 왁스를 흠뻑 먹은 원단은 색감이 진해지면서 빈티지한 느낌을 물씬 풍기게 된다. 20대에 구입한 필슨 가방을 10년 넘게 썼다. 10년 후에도 여전히 나는 필슨을 들고 다닐 것이다. 추억과 시간을 품은 가방은 나와 함께 나이 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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