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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민 Nov 08. 2023

후드티에 대한 이야기

 밤새 가을비가 내리더니 아침과 함께 겨울이 찾아왔다. 하룻밤사이 계절의 터널을 순식간에 지나온 기분이 들었다. 창문을 열었더니 차가운 공기가 밀려들어왔다. 숨을 내쉬자 하얀 입김이 연기처럼 피어올랐다. 옷장에서 두꺼운 후드티를 꺼내 티셔츠 위에 겹쳐 입었다. 나의 겨울생활복은 후드티다. 가을과 겨울을 지나 초봄까지 늘 후드티를 입고 지낸다. 후드티는 편한 옷이다. 상황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입어도 괜찮은 옷이다. 말끔하게 차려입는 자리를 제외한다면 거의 만능에 가깝다. 실내복과 외출복의 기능을 모두 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봄가을에는 주로 지퍼가 달린 집업후드를 즐겨 입는다. 일교차도 크고 날씨가 급변하기 때문에 지퍼를 여닫을 수 있는 후드가 훨씬 더 쾌적하다. 추운 계절이 시작되면 풀오버 형태의 후드를 꺼내 입는다.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면 플리스나 경량패딩을 후드티 위에 걸친다. 사람들을 만날 때는 코트를 더하면 된다. 큰 고민 없이 입을 수 있는 편한 옷이 좋다. 무채색의 후드티는 그런 면에서 정말 좋은 옷이다. 아무 생각 없이 걸칠 수 있고 위아래로 상하의 색깔을 맞추면 제법 단정해 보인다. 겨울철생활복으로 후드티 만한 옷이 없다.

 

 언제 어디서나 입을 수 있는 가벼운 옷이지만 후드티는 생각 이상으로 다채로운 디자인을 자랑한다. 화려한 후드티하면 늘 베이프의 멀티카모와 샤크후디가 생각난다. 패럴 윌리엄스가 전개했던 스트릿패션 브랜드 아이스크림의 알록달록한 후드도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가장 성공적인 로고플레이로 꼽히는 슈프림의 후드티도 빼놓을 수 없다. 고등학생 시절 잡지나 인터넷을 통해서 봤던 화려한 후드티는 내게 로망이었다. 수십만 원을 호가하는 가격이라 쳐다볼 수도 없었지만 꿈꾸는 데는 돈이 들지 않았다. 늘 똑같은 교복을 입고 다니는 학생신분이라 개성 강한 브랜드의 옷을 유난히 좋아했던 것 같다. 막상 한 번도 입어본 적은 없었지만 로망은 한결같았다.


 결국 고3 시절의 나는 가품과 병행이 난립하던 옥션에서 중국산 짭을 샀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내 돈을 주고 산 가품이었다. 기다림 끝에 받아본 베이프 후드는 지나치게 화려했다. 입고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퀄리티는 생각이상으로 좋았지만 후드를 입은 거울 앞의 내 모습이 우스꽝스러웠다.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는 것만큼 바보 같은 꼴은 없다. 화려한 카모플라주 패턴이 들어간 베이프 후드는 나랑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이상할 정도로 카모 패턴이 안 받는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몇 년 후에 군복을 입었을 때도 같은 생각을 했다. 집 앞에서 여자친구를 만날 때 베이프 후드를 입었더니 당장 옷 갈아입고 나오라는 핀잔이 돌아왔다. 내 눈에 이상하면 타인의 눈에는 더 이상해보이는 법이다.


 화려한 패턴이 들어간 강렬한 색감의 후드티는  후로   다시 입지 않았다. 나이키 SB 신고 베이프 후디를 입은 쿠보즈카 요스케를 동경했지만 나는 흔한 일반인이었다. 대학생 시절 샤크후디가 예뻐서 잠깐 눈이 돌아간 적도 있었지만 구매하는 일은 없었다.  번은 실수지만  번부터는 실패다. 앞으로도  인생에서 베이프 후드를 입을 일은 없을  같다.  번씩  일이 생각나서 혼자 웃을 때가 있다. 글을 쓰면서 생각난 김에 최근의 베이프 라인업을 찾아봤다. 역시나 화려함은 그대로다. 여전히 내게는 어울리지 않을  같다. 시간이 지나도 옷을 입는 사람의 색깔은 변하지 않는  같다. 지금  옷장을 열면 무채색의 단순한 후드티가 여러  걸려있다. 나는 역시  쪽이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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