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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민 Nov 03. 2023

맥시멀리스트에서 미니멀리스트로

 시간이 지나면 사람은 다 변한다. 마음과 생각 그리고 입맛까지 전부 달라진다. 늘 그대로 인 것은 버릇뿐이다. 취향은 유난히 쉽게 변한다. 좋아하는 음식리스트가 바뀌듯 선호하는 스타일도 급변한다. 슈트를 고집하던 맥시멀리스트였던 나는 나이가 들면서 캐주얼을 주로 입는 미니멀리스트가 됐다.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는 사실 나이가 아니라 관점의 전환에서 시작된다. 가볍고 단순하게 살고 싶어서 주변 환경을 정리하다 보니 옷차림도 간소해졌다. 집을 정리하다 보면 반드시 옷장에 손이 가기 마련이다. 그때마다 조금씩 필요 없는 옷을 정리하면서 살림이 단출해졌다. 여름은 리넨셔츠 봄가을은 후드를 입고 산다. 겨울은 플리스와 패딩이면 충분하다.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 바뀌면 옷차림도 변하고 생각도 달라진다. 화려한 슈트는 여전히 멋지지만 나에게 잘 어울리는 옷은 아니다. 30대 중반이 되면서 옷 입기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비싸고 좋은 옷을 입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옷이 멋진 사람을 입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옷이 사람을 말해주는 것이 아니다. 알맹이인 사람이 본질이다.  그러다 보니 좋은 옷을 찾아다니는 과정이 번거롭고 피곤하게 느껴졌다. 무슨 옷을 입어도 나는 어차피 나다. 포장지를 열심히 신경 쓰는 것보다 내용물을 다듬는 것이 더 중요한 시기다. 그래서 옷차림이 간소해졌다. 활동하기 편한 스포츠 의류를 자주 입고 다닌다. 분명 예전보다 멋 부리는 즐거움은 줄어들었지만 마음은 한결 편하다.


 늦가을이 오면 트렌치나 바버재킷을 즐겨 입었다. 지금은 나이키나 언더아머의 후드에 경량 패딩조끼를 애용하고 있다. 치노팬츠나 셀비지 진 대신에 와이드 조거팬츠를 입고 다닌다. 깔끔한 슈트를 입고 TPO에 맞는 옷차림을 고집했던 예전의 나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변화다. 꼭 맞는 핏보다 여유로운 핏을 선호하게 됐다. 체격이나 체중이 늘어난 것은 아니다. 굳이 늘어난 것을 꼽는다면 마음의 여유가 아닐까? 예전에는 강박을 갖고 살았다. 옷차림이 나를 드러내는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많이 편해졌다. 패션이 감정과 취향을 표현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모든 것을 다 말해주는 것은 아니다. 겉모습에 지나치게 연연할 필요는 없다.


 미니멀리스트의 옷 입기는 고민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레이, 블랙, 네이비 세 가지 컬러의 후드티와 트레이닝팬츠를 여러 벌을 구비해 두면 걱정이 없다. 신발은 나이키나 뉴발란스의 편한 스니커즈를 착용한다. 집이나 카페에서 작업을 할 때도 편안한 캐주얼 차림이 좋다. 넉넉한 핏이라 몸이 편하고 글을 쓰다 산책을 나가도 부담이 없다. 편하고 여유로운 옷이 최고다. 멋도 중요하지만 일단 몸과 맘이 편해야 한다. 가죽소재의 구두나 가방을 선택한 날에 날씨가 갑자기 안 좋아지면 걱정이 앞섰다. 지금은 그럴 일이 없다. 비가 와도 괜찮고 옷이나 신발이 좀 더러워져도 상관없다. 옷차림이 가벼워지면서 옷에 큰 신경을 쓰지 않게 됐다. 그래서 마음도 가벼워진 것 같다.


 옷장을 비우면서 미니멀리스트가 된 나는 주기적으로 필요한 물건 리스트를 점검한다. 눈길을 끄는 물건 중에 꼭 사야 할 만한 이유를 지닌 것은 거의 없다. 욕심이 늘 구매를 부추긴다. 싸다고 유용한 것도 아니고 지금 아니면 못 사는 것도 아니다.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면 살 필요는 없다. 불편함에 이미 적응했다면 구매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옷장의 옷이 늘어난다고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비우고 덜어낼수록 마음이 편해졌다. 여유는 부담 없는 편안한 삶에서 비롯된다. 언더아머에서 산 후드티 몇 장이 올 하반기 쇼핑의 전부다. 내년 봄까지 옷을 사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부족함이 없다. 가진 것만으로 이미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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