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득할 수 있는 것보다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훨씬 더 많다.
살다 보면 설명할 수 없는 기분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순간이 있다. 오늘이 딱 그런 날이었다. 자다 일어나서 갑자기 햄버거가 먹고 싶어졌다. 까만 어둠 속에서 눈을 뜬 채 잠시 고민하다 방문을 열었다. 바람막이를 걸치고 러닝화를 신고 밖으로 나간다. 나는 새벽 2시에 맥도널드로 향했다. 논리적인 인과관계 따위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그야말로 설명할 수 없는 기분. 이번주에 햄버거를 먹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도 없지만 지금 나는 햄버거가 먹고 싶다. 맥도널드 앱을 눌러보니 3300원에 쿼터파운더치즈를 판매한다는 배너가 눈에 들어왔다. 오늘은 빅맥이 아니라 쿼파치를 먹어야 한다. 목적지와 목표가 정해졌다.
바닐라 밀크셰이크도 이벤트 가격을 달고 나를 유혹했다. 쿼터파운더에 바닐라셰이크 합해서 5000원. 어마어마한 칼로리를 감안해서 오가는 왕복코스를 걸어가기로 했다. 1.2km면 걸음이 빠른 나에게 20분도 걸리지 않는 거리다. 가는 길에 신호등도 없고 쭉 직진하다 오른쪽으로 꺾어서 조금만 걸으면 맥도널드다. 느긋하게 걸어도 2시 30분이면 햄버거를 손에 넣을 수 있다. 새벽의 거리는 사람이 한 명도 보이질 않았다. 지나가는 차도 거의 없었다. 새벽 2시에 햄버거를 사 먹으러 굳이 걸어갈 만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큰길을 직진하면서 갑자기 햄버거가 왜 먹고 싶어 졌는지 생각했지만 이유는 떠오르지 않았다. 자면서 햄버거를 먹는 꿈을 꿨던 것은 아닐까? 3300원이라는 아름다운 행사가격의 쿼터파운더를 먹기 위해 계속해서 밤길을 걸었다. 지루한 코스가 이어지자 잠에서 깬 지 얼마 되지 않은 머리가 무거워졌다. 걷다 보니 가로등 불빛 아래로 밤안개가 보였다. 주변에 불빛이라도 얼마 없다면 사일런트 힐이 생각났을 것 같다. 밤안개를 뚫고 걸어서 햄버거를 사러 가는 남자가 지금 이 새벽에 나 말고 또 있을까? 야식도 안 먹는 나로서는 낯선 식욕이 만든 여정이 난감했지만 발걸음은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지금은 뇌보다 위가 더 강력한 통제력을 갖고 있는 모양이다.
새벽에 햄버거를 사러 가는 상황 때문인지 <해롤드와 쿠마>라는 영화가 생각났다. 햄버거가 먹고 싶어서 새벽에 밖으로 나왔다가 주인공 둘이 사건에 휘말리는 내용이었다. 밑도 끝도 없는 코미디 영화라서 재밌게 봤었던 기억이 난다. 햄버거라는 공통분모 때문인지 영화 주인공들을 떠올리면서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늘어서있던 가로등이 사라지고 네온사인을 달고 있는 거리가 나왔다. 간판은 대부분 불이 꺼져있었다. 코로나 이후 자정을 넘겨 새벽까지 영업하는 가게들이 많이 사라졌다. 중반까지 걸어왔을 때 번화가의 불빛들이 보였지만 예전에 비하면 초라하게 느껴졌다. 햇수로 3년간 일상을 지배했던 전염병의 여파는 사회 곳곳에 남아있다. 이제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사람이 많은 곳이 아니면 마스크를 쓸 일은 없지만 팬데믹의 흔적은 여전했다.
임대와 폐업이란 글씨가 붙은 골목을 천천히 지나친다. 20대 초반의 남녀들이 술집이 들어서있는 골목 앞에 모여있다. 한눈에 봐도 얼마 되지 않는 숫자다. 환한 불을 밝히고 서있는 맥도널드만이 힘없는 거리에서 건재함을 과시하며 서있었다. 글로벌 기업의 위용은 대체로 어려운 시절에 더 빛을 발한다. 3300원에 햄버거를 이벤트 가격으로 팔려면 대체 마진을 어디서 얼마나 뽑아내고 있는 걸까? 황량한 새벽 거리의 풍경을 보다 떠오른 감상적인 생각을 뒤로하고 매장 안으로 들어갔다. 늘어서 있는 키오스크는 모두 텅 비어있었다. 앱을 켜서 쿠폰을 찍고 쿼터파운더치즈를 주문했다. 물론 바닐라셰이크도 잊지 않았다. 번호가 적힌 주문확인서를 손에 들고 가까운 자리에 앉았다.
카운터 너머 직원들은 한눈에 보기에도 피곤해 보였다. 주문을 확인하고 음식을 조리하는 손길이 느릿느릿했다. 가만히 서있어도 피곤할 시간에 일한 다는 것은 쉽지 않다. 주문이 밀려있다면 좀 미안했을지도 모르지만 나 말고 손님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음식을 기다리면서 시선을 이리저리 던진다. 이번달 해피밀 장난감이 보인다. DC코믹스 캐릭터와 콜라보한 해피밀 장난감은 인기가 없다. 아이들이나 어른이나 선호도는 또렷하다. 마리오나 포켓몬 아니면 디즈니 혹은 스펀지밥 같은 쪽이 인기가 좋다. 배트맨과 로빈이 누군지도 모르는 아이들에게 DC 코믹스 캐릭터 장난감을 내놓다니. 당장 배트맨을 아는 나조차 갖고 싶지 않았다.
장난감세트 진열장 위로 장난감 대신 고를 수 있는 맥도널드 해피밀의 동화책도 보였다. 생각해 보면 저 동화책을 골라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해피밀동화책을 읽는 아이 역시 본 적이 없다. 어딘가에 있겠지만 확인한 적은 없는 이론상으로만 존재하는 느낌이다. 일단 장난감과 책 중에서 책을 고를 아이도 없겠지만. 직감적으로 내용의 완성도를 떠나서 책의 만듦새가 뻔히 들여다보인다. 아이들은 그런 면에서 어른보다 훨씬 뛰어난 감을 가지고 있다. 장난감보다 별로일 테니 고르지 않는 게 확실하다. 애들의 취향과 선호도는 어른보다 훨씬 더 정확하다.
특이한 그림체와 신기한 제목은 제법 눈길을 끌었다. 보다 보니 내용이 궁금하기도 했지만 굳이 확인해 볼 일은 없을 것 같다. 늦은 새벽에 쓸데없는 생각을 해서일까? 해피밀 동화책을 두고 나는 공상과 망상의 경계에 있는 상상의 수렁에 빠져버렸다. 누구도 고르지 않는 맥도널드 동화책은 스파이들의 비밀임무를 담은 물건이 아닐까! 어느 도시에나 있는 맥도널드. 매장에 늘 구비되어 있는 해피밀 동화책! MI6 같은 진지한 조직보다는 킹스맨같은 키치 한 스파이서클이 애용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평소 같으면 잘 시간에 깨어있으니 머리가 이상하게 돌아간다. 크게 하품을 하고 졸린 눈을 비비며 망상을 털어낸다. 얼른 햄버거나 먹고 집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지루함과 졸음이 뒤섞일 때쯤 카운터 위쪽에 달린 모니터에 내 번호가 떴다. 반사적으로 일어나서 기다렸던 햄버거와 셰이크를 받아온다. 이게 뭐라고 이 새벽에 찬공기를 마셔가며 걸어왔을까? 머리로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쿼터파운더를 한 입 먹는 순간 행복해졌다. 확실히 밤이 되면 뇌가 아니라 위가 인간을 지배한다. 자극적인 맛에 눈을 뜬 혀는 입 안에서 날뛰면서 춤을 췄다. 진한 맛의 소고기패티는 기분 좋은 온기를 품고 있었고 버거번 밖으로 축 늘어진 치즈는 풍미를 더해줬다. 기름진 고기와 지방으로 가득한 치즈사이 새콤한 케첩은 혀끝에 새콤하게 퍼지면서 감칠맛을 이끌어낸다.
햄버거를 삼키고 입안으로 바닐라셰이크를 밀어 넣는다. 당분은 빠르게 혈당을 올리면서 기분까지 들뜨게 만들어준다. 앉아있는 동안 스멀스멀 올라오던 졸음과 피곤함을 달콤함이 사르르 녹여버린다. 이 순간만큼은 정말 아무 생각 없이 행복하다는 감정이 위와 뇌를 지배한다. 걸어서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현실이나 내일 운동을 두 배로 해야겠다는 생각은 접어둔다.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충동이 느낌표로 이어지는 순간. 물음표를 내미는 이성적 판단이 꼬리를 내리고 물러나는 시간. 내가 아니라 본능의 통제를 받는 뇌가 나를 움직인다. 살다 보면 새벽에 햄버거를 씹어먹는 이런 날도 있다.
인생은 납득할 수 있는 것보다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훨씬 더 많다. 이해하고 분석하려는 습관은 어쩌면 불안에 대처하는 방어기제일지도 모른다. 논리적인 이성으로 해석할 수 없는 본능의 영역도 존재한다. 그럴 때면 당황하지 말고 그냥 받아들이는 것도 좋다. 이미 현대인들은 누구나 충분히 피곤하게 살고 있다. 한 번쯤은 새벽에 햄버거가 먹고 싶은 자신을 그냥 납득해 주자. 덕분에 이 글도 쓸 수 있었으니까. 역시 무슨 일이든 다 경험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