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도 효율적으로 선택해야 하는 시대
아침 운동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늘 서브웨이 앞을 지나게 된다. 출근시간의 서브웨이는 항상 사람들로 붐빈다. 한 줄로 서있는 사람들의 구성은 샌드위치 속 재료처럼 다양하다. 직장인과 학생 그리고 나처럼 운동복 차림의 동네 주민까지. 모두 샌드위치를 주문하기 위해 이 시간에 서브웨이를 찾는다. 비빔밥이나 샌드위치 같은 이른바 한 그릇 음식을 선호하는 나에게 서브웨이는 언제 들러도 괜찮은 곳이다. 2010년대 초반 주먹밥을 파는 오니기리와 규동 같은 프랜차이즈도 같은 이유로 좋아했다. 한 번에 여러 가지 재료를 넣어서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질리지 않는다.
한창 웨이트 트레이닝에 열을 올리던 시절 닭가슴살을 자주 섭취하기 위해 비빔밥을 만들어 먹었다. 잘게 찢은 닭가슴살을 밥 위에 올리고 냉장고에 있는 채소와 고추장을 넣고 비벼 먹는다. 거의 반년을 매일 두 끼씩 먹었는데 늘 맛있었다. 볶음밥을 점심으로 한 달 내내 만들어먹은 적도 있고 세 달간 아침식사로 서브웨이 샌드위치를 선택한 적도 있다. 한 그릇 음식은 여간해서는 질리지 않는다. 하루 세끼 다 같은 음식을 먹어도 괜찮다. 미역국이나 카레를 한 솥 끓여놔도 불평 없이 잘 먹는 편이다. 물린다 싶을 때 다양한 방법으로 맛의 변주를 주면 오래 먹어도 괜찮다.
미역국의 국물을 베이스로 라면이나 수제비를 끓이거나 여러 항신료를 첨가해 가며 먹어도 괜찮다. 카레는 체다치즈나 코코넛밀크에 매운 고추와 마늘을 넣어서 동남아식으로 먹을 수도 있다. 비빔밥이나 주먹밥도 속재료를 다양하게 바꿔가며 즐길 수 있는 음식이다. 서브웨이 샌드위치 역시 그런 점에서 다채로운 조합으로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다. 맛의 다양성은 음식의 종류보다는 조합에 의해 결정되는 경향이 크다. 요리라는 행위 자체가 새로운 조리법을 시도하는 도전이라는 점을 생각해 보자.
작곡에서 샘플링이나 표절 시비가 자주 발생하는 이유가 멜로디조합이 한계에 직면해서 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사람들이 선호하는 리듬이나 멜로디의 경향이 있기 때문에 비슷한 자가복제가 쉽다는 논조였다. 발언의 정확성을 완벽하게 검증할 수는 없지만 대중이 좋아하는 스타일이 존재한다는 말은 동의한다. 유행이 돌고 도는 점이나 레트로와 뉴트로라는 이름으로 몇 년 주기 반복되는 것을 생각하면 납득하게 된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요리에서 맛이라는 결과물이 갖는 다양성은 예술보다 훨씬 폭넓은 것 같다.
당장 서브웨이를 생각해 보자. 채소와 빵 그리고 채소의 조합만 따져봐도 매일매일 새로운 샌드위치를 만들 수 있다.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일수록 다양한 조합을 통해 다채로운 변주를 이끌어낼 수 있다. 햄버거와 샌드위치는 빵과 속재료 그리고 소스를 바꿔가며 새롭고 신선한 맛을 경험할 수 있다.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구성이지만 다른 음식으로 쉽게 대체할 수 없는 존재감을 자랑한다. 오랜 세월 사랑받는 이유는 편의성과 더불어 맛의 다양성이 갖는 강점 때문이 아닐까. 물론 아침 시간에 맥모닝이나 서브웨이를 택하는 이유는 좀 다르겠지만.
IT회사의 개발자인 친구는 채소를 먹기 위해 매일 두 끼를 서브웨이 샌드위치로 해결한다고 말했다. 샐러드만 먹자니 탄수화물이 부족하고 나가서 밥을 먹자니 귀찮다는 말. 아마 바쁜 직장인뿐만 아니라 한국인 누구나 공감하는 대목일 것이다. 건강을 위해서 균형 잡힌 식단을 지향해야 한다지만 다들 그럴 시간이 없다. 정확하게는 그만한 여유가 없다. 학생과 직장인은 잠이 부족하고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부부들은 챙겨 먹을 짬이 나질 않는다. 혼자 사는 사람은 일일이 차려 먹을 엄두가 안 난다. 배달음식이나 안 먹으면 다행이다. 주부들도 상황은 비슷하다. 반조리간편식이나 밀키트가 주부들에게 환영받은 이유가 있다. 집안일하고 가족들을 신경 쓰면서 음식까지 일일이 만들어 먹이는 것은 중노동이다. 나이 들수록 쉽지 않은 일이다.
출퇴근시간의 붐비는 거리나 회사가 밀집한 중심가의 점심풍경은 어느 나라나 비슷하다. 그러나 가끔 서브웨이 샌드위치를 먹을 때면 여유 없는 한국 사회의 단면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만성피로를 호소하는 직장인과 수면부족에 시달리는 아이들. 바쁜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음식도 효율적으로 선택해야 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회사원 시절 팀원들과 나는 늘 빨리 먹을 수 있는 한식뷔페를 선택했다. 주변의 다른 회사원들 역시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나도 10분 만에 밥을 먹고 커피 한 잔을 들고 회사로 돌아가는 대열에 합류했다. 다들 그렇게 행동하니까 나도 그렇게 생활했다.
반찬이 제법 맛있었던 한식뷔페였지만 늘 허겁지겁 먹는 바람에 느긋하게 맛을 음미한 적이 없었다. 맛을 즐기기보다 뱃속에 연료를 공급한다는 의미의 식사였다. 몇 년 후 친구와 근처를 지나다 직장인 시절 매일 가던 한식뷔페에서 밥을 먹은 적이 있다. 느긋하게 밥을 먹어보니 여유로운 시간이야말로 최고의 조미료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날이 갈수록 사람들은 자극적인 음식을 찾는다. 맵거나 달지 않은 음식을 찾기 어려울 지경이다. 어쩌면 매일 여유 없이 밥을 먹느라 맛에 점점 무뎌지게 된 것은 아닐까? 시간에 쫓기면서 스트레스까지 받는 현대인에게 가장 즉각적인 일탈은 자극적인 맛일 테니까.
습관처럼 자주 사용하는 먹고사는 문제라는 단어의 절반은 먹는다는 표현이 차지한다. 식습관과 외식문화는 사회의 단면과 이면을 모두 보여주는 측면이 있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음식문화는 속도와 편의성을 만족하는 형태로 진화해 왔다. 외식 프랜차이즈들이 한국 시장에만 들어오면 회전율 빠른 점심메뉴와 세트메뉴를 선보이는 이유가 있다. 한국처럼 서브웨이와 맥도널드의 인구대비 매출이 잘 나오는 나라는 흔치 않다. 먹고 즐기기 위해 사는 사람들보다 살기 위해 빠르게 배를 채우는 사람들이 많은 나라는 프랜차이즈의 천국이 된다.
다양한 맛의 조합을 시도해 가며 즐기는 음식의 본질은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는 방식으로 변질된다. 매일 빠르게 후딱 때우면서 물리지 않도록 맛의 변주가 늘어난다. 자극적인 맛이 추가되면서 스트레스도 잡아주면 일석이조다. 음식은 사회에 맞게 진화한다. 다윈의 적자생존은 생물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동물이 구성하는 사회에도 존재한다. 살아남은 음식들은 사회구성원의 욕구와 사회의 요구를 받아들이며 진화한다. 우리는 매일 프랜차이즈를 통해서 진화의 첨단에 놓인 음식들을 만난다. 빠르고 자극적으로 포만감을 선사하는 지식문명사회의 식사를 거부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리고 이 글을 쓰는 나 역시 줄을 서서 서브웨이 샌드위치를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