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열정을 가지고 열망했던 것들의 총합이다
유행은 돌고 돈다. 마니아들의 지지를 받던 아식스가 올 상반기 꽤 많은 사랑을 받았다. 2010년대 천대받던 나이키 덩크도 코로나전후로 큰 인기를 끌었다. 한 시대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신발은 언젠가 다시 유행을 만나 새롭게 빛을 볼 날이 온다. 인기로부터 잠시 멀어질 뿐 시장에서 쉽게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공급은 회사의 영역이지만 수요는 사람들의 몫이다. 그래서 시장과 유행은 늘 달라진다. 길에서 쉽게 볼 수 있었던 돌고래 덩크가 자취를 감추면서 나이키 덩크의 집권도 끝났다. 여전히 인기는 건재하지만 공급이 따라가지 못해서 리셀이 환영받던 시기는 지나갔다. 이렇게 스니커 문화는 항상 변화한다.
신발의 유행은 대체로 반복된다. 2010년대 중반의 국민신발이었던 아디다스 가젤이 올해 초 잠깐 인기를 끌었다. 생각해 보면 덩크도 꼭 10년 만에 유행이 돌아왔다. 올 상반기에 보여준 아식스와 푸마의 약진도 반복되는 유행이 존재한다는 것을 여실히 증명하는 사례다. 부츠컷에 오니즈카 타이거나 미하라 푸마신던 시절이 15년 전이다. 물론 부담스러운 스티치를 자랑하는 트루릴리전을 빼고 돌아온 유행이라 한편으로는 다행이었다. 하지만 종종 연예인들이 울프컷을 하는 걸 보면 샤기와 베스트까지 유행할지도 모르겠다. 그런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신발의 유행은 크게 두 가지 욕구로 설명할 수 있다. 다들 신으니까 나도 사야 된다는 욕구 그리고 나는 남들과는 다르게 돋보이고 싶다는 욕구. 전자가 유행의 주류를 담당한다면 후자는 마니아들의 사랑을 받는 소수의견이 된다. 사실 전자보다는 후자의 지지기반이 더 단단하다. 유행은 남들과 같아지려는 동일화의 욕구지만 취향은 독자적인 개성의 표현이다. 서코니나 닥터마틴 마니아들을 생각해 보면 간단하다. 특정 브랜드에 꽂히면 계속 같은 브랜드의 신발을 고수하게 된다. 본인의 취향이 곧 개성을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한 때 뉴발란스 마니아였다. 아웃렛에서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었고 내구성도 좋았다. 280 사이즈를 신는 내게 뉴발란스는 발볼이 제일 잘 맞는 브랜드였다. 폭이 좁게 나오는 나이키에 비해서 착용감도 좋았다. 아무리 멋진 스니커라도 발이 불편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발이 편안해야 한다는 기준에서 매번 합격점을 받는 것은 뉴발란스뿐이었다. 자신에게 잘 맞는 브랜드를 찾아 정착하면 유행을 신경 쓰지 않게 된다. 30대 후반의 나이가 된 현재까지도 뉴발란스는 내가 가장 애용하는 스니커브랜드다. 최근의 만듦새나 퀄리티는 갈수록 아쉽긴 하지만 애정은 여전하다.
웨이트를 열심히 했을 무렵의 나는 푸마를 사랑했다. 푸마는 나이키나 아디다스 대비 절반 이하의 가격에 훌륭한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실제로 푸마의 주가는 폭등했다. 푸마의 가장 큰 강점은 가벼운 무게였다. 독일계 스니커브랜드는 하나같이 아웃솔을 잘 만든다. 아디다스와 화학기업 바스프의 협업이 잘 알려진 사례지만 푸마도 아디다스 못지않았다. 다만 푸마 특유의 디자인은 호불호가 아주 심하게 나뉘는 편이었다. 덕분에 온라인에서 늘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었다. 2020년대 무렵의 푸마는 메종키츠네와 아더에러 그리고 아미 같은 다양한 브랜드와 협업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여전히 특유의 묘한 디자인은 한결같다.
오늘날 레트로라는 이름으로 유행하는 스니커즈들은 전부 학창 시절 자주 보던 것들이다. 나이키 덩크나 코르테즈 아디다스의 삼바 그리고 캠퍼스 시리즈까지. 나이키 덩크 로우와 하이는 선망의 대상이었고 에어포스 올빽과 올검 둘 다 인기가 많았다. 봄이면 컨버스를 신는 아이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다들 갖고 있는 올검 컬러를 피해서 종종 핫로드나 멀티컬러 같은 특이한 컨버스를 신는 녀석들도 있었다. 가을이면 푸마스웨이드가 인기를 끌었고 추운 겨울부터 보드화를 사는 아이들이 늘어났다. 해외에서 이슈가 되는 스니커 정보를 전달하는 블로그들이 하나 둘 생겨났던 시절. 온라인에서는 나매나 무신사의 인증샷과 스트릿사진이 싸이월드에서 인기를 끌었다.
스니커 문화는 생각보다 꽤 오래전에 한국에 자리 잡았다. 2000년대 중반 고등학생 시절에도 학교에 나이키sb 바이슨이나 호머를 신은 친구들이 보였다. 용돈을 모아서 중고장터에서 나이키 덩크를 거래하던 같은 반친구가 생각난다. 옥션에서 가품을 사는 사람도 많았지만 홍대나 명동에서 줄 서서 신발을 사는 마니아도 많았다. 90년대에도 슬램덩크와 마이클 조던이 몰고 온 농구화 유행이 전국을 들썩이게 만들었던 것을 기억한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스니커 문화의 역사는 결코 짧지 않다. 하지만 여러 글로벌 브랜드에서 한국과 제대로 된 협업을 시작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한국 패션시장의 규모와 소비자들의 구매력이 성장하면서 협업이 크게 늘어났다. 가장 상징적인 신호탄은 카시나와 나이키가 협업한 카시나 덩크였다. 물론 지디의 피스마이너스원과 나이키가 보여준 사례도 강렬했지만 카시나 덩크는 좀 달랐다. 고속도로와 시내버스 컬러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스토리텔링은 한국적인 헤리티지를 담고 있었다. 문화가 가진 스토리 그 자체를 인정받아야 진짜배기 콜라보가 된다고 생각한다. 태극기 컬러링을 조악하게 짜깁기했던 기존 스니커 브랜드들의 선례와 분명하게 달랐다. 카시나 덩크의 출시를 기점으로 한국 스니커 시장을 문화라고 제대로 부를 수 있게 된 것 같다. 세계 속에서 한국 스니커 문화가 보여줄 다채로운 모습을 기대하고 있다.
패션에 관한 이야기는 한 번 시작하면 끝이 없다. 나는 슈어홀릭도 아니고 신발장에 스니커즈라고 해봐야 이제 불과 5켤레 밖에 없는 아저씨다. 소중하게 보관했던 나이키 한정판이나 핸드메이드 구두는 전부 사라졌다. 지금은 오래 걸어도 편한 뉴발란스와 운동할 때 신는 아디다스 러닝화만 남았을 뿐이다. 그러나 스니커문화에 열광하고 흥분하던 소년의 마음은 여전히 남아있다. 좋아했던 신발, 동경했던 신발, 손에 넣을 수 없었던 신발, 밑창을 교체해 가며 신었던 신발까지 모두 추억이다. 삶은 열정을 가지고 열망했던 것들의 총합이다. 그런 점에서 스니커 문화는 내 삶의 일부가 되어준 아름다운 기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