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을 이어 붙이면 인생이 된다
시간은 빠르게 지나간다. 한낮의 뜨거운 햇살은 계절이 여름의 초입을 지났다는 사실을 알려줬다. 구름 한 점 없는 6월의 주말 오후 간간히 부는 바람은 습기를 한껏 품고 있다. 공원에는 나들이 나온 사람들이 많았다. 분수대 주변을 뛰어다니는 아이들과 흐뭇한 표정으로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엄마와 아빠. 한 손에 아이스크림을 들고 있는 아이들은 햇살보다 환한 미소를 띠고 있다. 공원 근처에 배스킨라빈스가 있다 보니 배스킨라빈스 싱글콘을 손에 든 아이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어른이 되면 입맛도 변하고 나이가 들면서 식성도 달라진다. 하지만 어린 시절의 입맛은 누구에게나 한결같은 면이 있다. 아이들은 아이스크림을 정말 좋아한다. 지금은 아이스크림을 거의 먹지 않지만 나 역시 어렸을 때 아이스크림을 정말 좋아했다. 하굣길에 친구들과 문방구에서 사 먹었던 빠삐코와 탱크보이, 아이스크림 속에 초콜릿과 사탕이 들어있었던 별난바, 동그란 플라스틱 막대 속에 별모양 풍선껌이 들어있었던 알껌바까지. 시원함과 달콤함으로 여름을 기억하게 만들어준 아이스크림들이 생각난다.
가장 저렴한 아이스크림은 학교 앞 문방구에서 파는 100원짜리 쭈쭈바였다. 색소와 향료로 만든 불량식품이었지만 신나게 뛰어놀다 친구들과 함께 먹으면 정말 맛있었다. 300원에서 500원 대의 아이스크림바도 즐겨 먹었다. 엄마나 아빠는 하드라고 불렀던 수박바와 죠스바 그리고 바밤바도 인기가 많았다. 전통의 강자였던 아맛나와 비비빅은 당시 어른들에게 사랑받았다. 과자 한 봉지 값에서 200원을 더 보태면 더블비얀코나 파르페 같은 비싼 아이스크림도 먹을 수 있었다. 투게더나 구구크러스터는 특별한 날에 온 가족이 둘러앉아 함께 먹었던 기억이 난다.
1000원 언저리였던 아이스크림계에 배스킨라빈스의 등장은 충격적이었다. 초등학교 앞 사거리에 처음 생긴 배스킨라빈스는 알록달록한 색깔의 간판을 달고 있었다. 31가지나 되는 맛의 아이스크림을 판다는 광고는 정말 신기했다. 가장 눈길을 끌었던 것은 아이스크림 케이크였다.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었던 나는 맛을 그저 상상할 수밖에 없었다. 케이크 시트 위에 아이스크림이 올라간 형태라고 추측할 수밖에 없었다. 12월이 다가오면 배스킨라빈스의 아이스크림케이크 광고를 텔레비전에서 자주 볼 수 있었다. 매번 광고를 보면서 맛과 식감을 그저 상상할 수밖에 없었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배스킨라빈스의 싱글콘은 당시 슈퍼에 파는 월드콘 두 개 값이었다. 매일 딱 과자 하나 사 먹을 만큼의 용돈만 쓸 수 있었던 내게 배스킨라빈스는 그림의 떡이었다. 당시는 IMF 시절이었고 동네 친구들 역시 비슷한 처지였다. 부모들의 안타까운 주머니 사정은 어린아이들의 행동에 제약을 만든다. 급식비를 내지 못해서 벌을 서는 친구도 있었고 잠적하듯 학교에서 사라진 아이들도 있었다. 나와 친구들은 학교 앞 문방구에서 파는 색소 가득한 100원짜리 쭈쭈바를 반으로 갈라 나눠 먹으며 여름을 보냈다. 친구들과 한 번씩 배스킨라빈스 앞을 지나갈 때면 다들 새로 나온 맛을 궁금해했던 기억이 난다. 아무도 먹어본 사람이 없어서 우리의 궁금증은 매번 풀리지 않았다.
90년대의 여름은 어디를 가도 늘 찌는 듯이 더웠다. 에어컨이 있는 곳도 거의 없었고 친구들과 나는 선크림이 뭔지도 몰랐다. 한바탕 땡볕 아래 뛰어놀다 학교운동장 수돗가에서 세수하고 불량식품 몇 개를 사서 나눠먹었다. 한 번씩 용돈을 좀 넉넉하게 받은 사람이 아이스크림을 샀다. 문방구 앞 빙과류 냉장고 안에는 더위를 식혀줄 아이스크림이 한가득 있었다. 약속이나 한 듯 다들 쭈쭈바를 사서 이마와 뒷목에 대고 더위를 식혔다. 문방구 입구 천막아래 그늘에 나란히 쭈그려 앉아 시원한 바람이 불기를 기다렸다. 서로의 얼굴이 맺힌 땀방울을 보며 괜히 웃기도 했다.
여름은 길었지만 방학은 짧았다. 아침을 먹고 나와서 해가 질 무렵까지 친구들과 노는 것이 일상이었다. 학원을 다니는 사람도 없었고 다들 집에서 할 일도 없었다. 설탕과 색소로 구색을 맞춘 100원짜리 하드를 입에 하나씩 물고 여름의 한낮을 버텼다. 게임기를 파는 동네 전파상에 가서 주인아저씨가 슈퍼마리오를 하는 모습을 구경하기도 했고, 너무 더울 때면 은행에 들어가서 에어컨 바람을 잠시 쐬다 나왔다. 오락실이나 인형 뽑기 가게는 IMF로 실직한 아저씨들이 많았다. 어린 나이라 많은 것을 알 수는 없었지만 얼굴이 보이지 않는 아저씨들의 뒷모습이 어딘가 모르게 슬퍼 보였다. 방학 중에 한 번씩 여는 학교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은 적도 있었다. 학기 내내 시끌벅적했던 학교는 여름방학 동안 사람 대신 매미소리만 가득했다. 그렇게 매일 같이 친구들을 만나서 놀다 보면 방학은 아주 빠르게 지나갔다.
같은 처지의 동네 친구들과 싸구려 아이스크림이 없었다면 90년대 말의 여름방학을 즐겁게 보내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은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사는지 알 수 없는 친구들. 이제는 다들 바쁜 삶을 살고 있을 것 같다.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고 온 동네를 여름 내내 뛰어다녔던 시절이 꿈처럼 느껴진다. 가진 게 없어서 비참하거나 여유롭지 못한 처지가 부끄럽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모두 다 매일 비슷한 옷을 입고 있었고 늘 같은 신발을 신고 다녔다. 집에서 들고 나온 생라면을 쪼개서 사이좋게 나눠먹어도 즐거웠던 나이. 주머니 속에 동전 몇 개면 마음이 넉넉했던 아이들. 어쩌다 500원짜리 동전 한 두 개를 손에 쥐고 놀러 나갈 때면 신이 나서 가슴이 두근거렸다.
주머니 사정은 늘 엉망이었지만 마음은 제법 여유로웠다. 7월 중순 한창 더운 날에 생일이었던 동네 친구를 위해서 우리는 주머니를 털었다. 천 원짜리 지폐 한 장과 동전을 모아 처음으로 친구들과 나는 배스킨라빈스에 들어갔다. 환한 조명과 신나는 음악 시원한 에어컨바람이 기분을 상쾌하게 만들어줬다. 매장 중앙의 진열장에는 텔레비전 광고에서 봤었던 31가지 맛의 아이스크림들이 한가득 놓여있었다. 생일이었던 친구는 우리들 중에서 처음으로 아이스크림을 고르는 영광을 얻었다. 아르바이트생 누나는 우리를 빤히 보더니 아이스크림을 크게 떠서 콘 위에 얹어줬다. 광고에서 본 것보다 훨씬 큰 야구공만 한 크기였다. 아이스크림 콘을 건네받은 친구는 한 입 크게 베어 물고 환하게 웃으며 우리에게 내밀었다. 다 같이 나눠먹자는 의미였다.
다들 눈빛을 한 번 교환하고 차례로 돌아가며 한 입씩 나눠 먹었다. 매장 밖으로 보이는 아스팔트 위로 이글거리는 아지랑이가 올라왔다. 친구들과 빨간색 소파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나눠먹으면서 참 행복했다. 진짜 맛있다는 감탄사를 연발하며 그렇게 생애 첫 배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을 경험했다. 그때 먹었던 아이스크림이 어떤 맛이었는지 지금은 모르겠다. 그 순간을 함께한 얼굴들 역시 가물가물하다. 불안하고 힘든 시절이었고 알게 모르게 우리는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고 있었다. 서로의 집안 사정이나 처지를 어린 나이에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그래서 폭염이 맹위를 떨치던 여름방학 내내 하루도 빼먹지 않고 만났다. 다정하게 이름을 부르며 누구도 혼자가 되지 않도록 서로가 서로를 붙들었던 시절이었다.
기억이 모이면 추억이 되고 그런 추억을 이어 붙이면 인생이 된다. 이제 소식도 알 수 없는 처지가 되었지만 어린 시절 말없이 서로에게 안전망이 되어줬던 친구들. 다섯 명이 나눠먹은 배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은 인생에서 지울 수 없는 에피소드로 계속 남아있을 것 같다. 아이스크림을 손에 들고 분수대를 앞을 나란히 걷는 아이들을 보면서 어딘가에서 잘 살고 있을 친구들을 생각한다. 많은 것들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