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친구와 함께 영화를 봤다. 주말인데 영화관에 사람이 거의 없었다. 코로나 전에 비해서 확실히 영화관의 위상은 많이 내려온 같다. 피크타임이었지만 영화관 로비에 앉아있는 사람은 나와 친구를 포함해도 열 명이 채 되지 않았다. 사람이 워낙 없다 보니 상영관까지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트가 전부 멈춰있었다. 친구가 보자고 한 영화는 <오펜하이머>였다. 한여름에 개봉한 영화가 아직 상영 중이라는 사실이 신기했다. 천만이 넘어가도 두 달을 넘기면 내려가는 게 당연했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한국인들이 사랑하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작품이었지만 오펜하이머는 한국에서 큰 반향을 얻지는 못했다.
일단 러닝타임이 3시간이라 접근성이 낮은 편이었다. 요즘은 90분도 길다는 말이 나오는 시대다. 게다가 전기영화는 한국에서 인기를 끌기 힘든 장르에 속한다. 좋든 나쁘든 오펜하이머는 색다른 시도를 한 작품이다. 한 인간의 삶을 기승전결의 형식으로 조명하는 일반적인 스토리텔링을 거부했다. 쉴 새 없이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장면의 전환을 통해 주인공과 주변 상황을 다면적으로 보여준 점은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새로운 시도가 모든 사람들의 공감을 받는 것은 아니다. 대중적인 시각으로 본다면 두서없고 정신없는 영화로 보일 만하다. 인상적인 드라마를 기대하고 간 사람들은 아마 대부분 실망했을 것이다.
인터넷상에서는 <인셉션>이나 <다크나이트>를 거론하면서 예전 같지 않다는 평가가 많았다. 충분히 납득할만한 이야기다. 대중적인 시각과 감독의 예술적인 관점 사이의 온도차가 크게 벌어져서 그런 것 같다. 전작 <테넷>은 너무 난해한 영화였고 그전에 연출한 <덩케르크>는 솔직하게 정말 지루했다. <인터스텔라> 같은 강렬한 인상과 감동을 원했던 사람들이 다 떨어져 나갈 만한 라인업이었다. 다만 그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초기나 지금이나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다. 그는 대중이 열광하는 멋진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 아니다. 그저 본인이 전달하고 싶은 이야기만을 자기 식대로 맘대로 표현하는 사람이다. 감독보다는 아티스트에 가까운 느낌이다.
본래 예술가들은 대부분 그런 사람들이다. 영화는 하고 싶은 말은 담은 매개체이자 수단에 불과하다. 그는 특별한 메시지를 드러내지 않는다. 복잡한 영화적 메타포를 사용해서 주제의식을 전달하지도 않는다. 테넷은 그저 복잡한 생각을 가감 없이 쏟아낸 것이었다. 대단한 깨달음이나 삶을 관통하는 격조 높은 통찰 같은 것을 지향하지 않는다. 그저 영화를 연출하는 방식이 진지하고 스케일이 크다 보니 심오해 보이는 이미지로 오해받는 것 같다.
놀란의 영화를 보고 있으면 독서감상문이 떠오른다. 자신이 생각하고 느낀 바를 그냥 영화라는 도구를 사용해서 서술한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오펜하이머는 평전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를 읽고 쓴 감상문 같은 영화였다. 책을 읽는다고 생각하고 보면 나쁘지 않겠지만 영화로 받아들이면 지루한 특이한 작품이었다.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읽는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