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태민 Nov 30. 2023

문 너머의 작은 세계

사회적 고립과 은둔형 외톨이에 대하여

 문 너머에는 작은 세계가 존재한다. 아무도 들어올 수 없는 곳에 누구도 닿을 수 없는 세상이 있다. 한 지붕 아래 현실과 공존하는 기묘한 세계. 외부와 단절을 선언하고 작은 방 속에서 고립을 선택한 이들은 은둔형 외톨이라고 불린다. 한 번 닫힌 방문은 다시 열리지 않는다. 개방도 진입도 불허하는 낯선 공간을 평범한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다. 납득하기 어려운 현상 앞에서 상식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럴 때는 새로운 눈으로 다르게 바라보는 시도가 필요하다. 작은 방 속에 세상을 만든 이들은 생존을 위해 고립을 선택한 것일 수도 있다. 문 밖의 세상이 주는 위험과 고통으로부터 본인을 지키는 방법이 그들에게는 은둔일 수도 있다.


 몸을 다쳤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대부분 비슷하다. 소리를 지르거나 눈물을 보인다. 그러나 마음을 다쳤을 때 반응은 사람마다 차이가 있다. 고통을 호소하거나 심하면 크게 엄살을 부리기도 한다. 대부분 어떤 식으로든 반응을 나타내지만 몇몇 사람들은 티를 내지 않는다. 괜찮다는 말과 함께 털어버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에서는 비명을 지르고 있다. 참기 힘든 고통을 피하기 위해서 노력해 보지만 소용없다. 한계까지 내몰리게 되면 결국 모든 것을 내던지고 방으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근다. 처음부터 고립을 결심하는 사람은 없다. 은둔을 결심하는 결정적인 원인이 존재한다. 물론 구체적인 이유는 본인만 알고 있다. 어느 누구도 자신을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드러내지 않을 뿐이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보낸 구조신호를 가족이나 친구들이 무시했다고 느꼈을지도 모른다. 혼자라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을 때 인간은 깊은 좌절감을 느끼게 된다. 아무도 나를 이해할 수 없고 누구도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지 않는 상황. 여기서 비롯된 막막함은 방아쇠를 당기는 역할을 한다. 현실의 고통으로부터 나를 지키는 방법을 운둔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소극적이거나 개성이 강한 소통방식을 갖고 있는 사람은 대인관계에 어려움을 느끼게 된다. 감정이나 생각을 표현하고 이해하는데서 오는 피로감은 스트레스의 누적으로 이어진다. 사회적 관계에서 비롯된 실망감은 심리적인 고립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자발적인 고립은 자신을 보호하려는 극단적인 방어기제일 수도 있다.


 원만한 대인관계를 구축하고 사회생활을 잘했던 사람도 심리적인 고립에 빠질 수 있다. 가족이나 친구들과의 관계도 좋고 사회적으로도 안정된 상태다. 그러나 내면에는 불안과 좌절감이 위험수위를 넘나들고 있다. 팽팽한 표면장력을 깨뜨리는 것은 단 한 방울의 물이다. 아슬아슬한 심리적인 균형이 깨지면 정신은 순식간에 망가진다. 피폐한 심리상태에 인간적인 실망감이나 심리적인 불안이 더해지면 최악의 시너지가 나온다. 긍정적이고 당당했던 모습은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다. 설득과 위로 역시 아무런 소용이 없다. 문제가 발생하기 훨씬 전부터 내면의 균열이 극심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문 너머에 존재하는 혼자만의 세계는 위험도 공포도 없다. 나를 공격하는 사람도 없고 나를 힘들게 하는 존재도 없다. 이해할 수 없다는 주변의 반응이나 실망감이나 좌절감은 모두 사라졌다. 그러나 마음은 평온하지 않다. 세상의 위협으로부터 스스로를 격리해 버렸지만 결과적으로 행복해진 것은 아니었다. 가슴속에는 아직 무거운 마음이 남아있다. 문 밖의 가족과 친구들이 정말 나를 잊은 것일까? 아니면 내가 그들을 잊으려고 애쓰는 것일까? 어쩌면 다른 길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지만 해법을 찾을 만한 용기가 없다. 여기까지 와서 다시 돌아갈 여력이 없다. 그래서 익숙한 고립을 선택한다. 시간이 더 지나면 무거운 마음도 어둠 속으로 가라앉아서 사라질 것이다. 그전에 누가 나를 데리러 올까?


 자발적인 고립을 선택하고 외톨이로 지내는 사람들이 세상으로 나오려면 시간과 용기가 필요하다. 문 밖의 사람들은 문 너머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한다. 얇은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법칙이 다른 세상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쪽의 상식을 버리고 다가가지 않으면 안 된다. 손길이 닿으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인내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다. 시간은 안과 밖에서 모두 똑같은 속도로 흐른다. 급하지 않게 그러나 너무 늦지 않게 손길이 닿아야만 한다. 정말 어려운 일이다. 보이지 않는 선을 함부로 밟지 않으면서 닫힌 마음을 천천히 여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러나 포기할 수 없다. 소중한 가족이자 하나뿐인 친구를 잃을 수는 없다.


 문너머의 세계는 늘 밤이다. 내면의 어둠 속에서 끝없이 가라앉고 있는 이들에게 진심이 담긴 손길이 닿기를 바란다. 태생부터 패배자인 인간은 없다. 문 뒤로 숨었다고 해서 패배자가 되는 것도 아니다. 지금까지의 라운드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새로운 라운드를 시작하면 된다. 휴식시간이 길어도 괜찮다. 느린 것이 아니라 신중한 것이다. 남들과 달라도 자기만의 방식을 찾으면 된다. 정해진 답을 따라 살지 않아도 괜찮다. 문 밖의 세계로 나오는 일이 두렵다면 아주 천천히 움직이면 된다. 속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방향이 중요하다.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는 아직 남아있다. 달리지 말고 걸어가도 괜찮다. 거북이는 느려도 앞으로 간다.

이전 06화 그리핀도르의 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