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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민 Jan 17. 2024

게임업계가 엉망이 된 이유

방향이 틀렸다면 속도는 의미 없다

 게임은 돈을 받고 꿈과 낭만을 파는 사업이다. 게임회사는 유저들이 원하는 세계관을 게임으로 구현하고 유저들의 욕망에 비용을 청구한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즐거움을 느끼려면 돈이 든다. 원활한 플레이를 위해서 패키지를 구매하기도 하고 캐릭터를 육성하려는 목적으로 코스튬과 아이템을 결제한다. 쾌락은 돈이 된다. 경쟁과 성장을 선호하는 유저가 늘어날수록 사업성과 수익률 모두 증가한다. 게임회사는 엄연한 기업이다. 이윤을 추구하고 수익과 성장에 열을 올리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도가 지나치면 당연한 일이 부당한 문제와 왜곡된 병폐를 낳는다.


 한국 게임계의 심각한 과금 문제는 이미 오래전에 도를 넘었다. 확률형 아이템과 관련된 사건 사고가 지속적으로 발생했지만 업계차원의 자정작용은 없었다. 기업 입장에서는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했을 것이다. 리니지라이크로 불리는 한국형 MMO RPG 장르는 논란 속에서도 매년 천문학적인 매출을 달성했다. 수천억 대의 수익을 내는 든든한 캐시카우의 배를 자진해서 가를 회사는 없다. 경영진과 수뇌부는 철저하게 실리를 중심으로 회사를 운영한다. 그런 점에서 수익성 좋은 확률형 아이템과 한국식 과금모델은 완벽한 사업으로 인정받았다. 악명 높은 BM으로 유명한 게임들은 여전히 게임 매출 순위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게임계 내부에서 자정작용이 일어날 가능성은 희박하다. 대형게임사들은 확률형 아이템과 관련된 사건사고에 대응할 뿐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생각은 없다. 유저만 확률형 BM에 길들여진 것이 아니다. 게임 회사들은 달콤한 수익에 중독된 상태다. 한국 게임계는 이용자들로부터 수익을 쥐어짜 내는 맹독성 과금모델을 버릴 수 없다. 리니지라이크를 찍어내기만 하면 돈을 번다는 것을 알게 된 시점부터 방향감각을 완전히 상실했다. 전반적인 게임의 완성도는 급락했고 장르가 일원화되면서 다양성도 심하게 훼손됐다.


 게임은 콘텐츠산업이다. 그러나 과금과 수익모델이 지나치게 강조되면서부터 콘텐츠가 사라지고 사업인 비즈니스만 남았다. 특색 없는 그래픽과 몰입감이 떨어지는 스토리텔링은 외면받을 수밖에 없다. 가장 큰 문제는 콘텐츠 완성도 저하를 문제로 인식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문제개선은 콘텐츠가 아니라 대부분 과금모델에 치중되어 있었다. 사업성을 정비하고 다듬는 것에만 열을 올렸다. 업계 내부에서 자성의 목소리와 자조적인 비판이 터져 나왔지만 변화는 없었다. 게임은 실무자들이 개발하지만 사업은 경영진의 몫이다. 게임의 완성도를 판가름하는 기준이 매출이 된 시점부터 게임계를 지배한 것은 영업이익이었다.


 수익을 목적으로 하는 사업성만 남고 중장기적인 개발전략이나 성장방향성은 자취를 감춰버렸다.

다채로운 게임 IP를 통해서 다양한 연령대의 유저들을 공략하는 도전정신은 사업성에 막혀 사라졌다. 모럴 해저드가 업계전반에 심각한 위기를 불러왔지만 제대로 된 위기의식을 갖지 않았다. 책임론을 근거로 하는 인적쇄신을 찾아볼 수 없었으므로 근본적인 혁신은 없었다. 그리고 직업윤리와 책임의식을 잃어버린 자리를 수익성이 대신했다. 돈만 되면 상관이 없다는 인식이 상식으로 자리 잡았다.


 고점은 저점의 시작이다. 한국식 과금모델을 내세운 게임을 찾는 사람의 숫자는 계속해서 감소할 것이다. 게임은 꿈과 낭만 그리고 즐거움을 파는 산업이다. 이제 한국 게임업계에 큰 기대를 갖는 사람은 거의 없다. 기대가 사라지면 즐거움도 사라진다. 꿈과 낭만에 돈을 지불하는 이용자들이 떠날 수밖에 없다. 새로운 시도로 큰 사랑을 받았던 <P의 거짓>이나 <데이브 더 다이버> 같은 작품은 주류가 될 수는 없다. 대형게임사들은 여전히 과금모델과 확률형 아이템이 주는 수익만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늘 머리부터 썩는다. 방향성이 잘못되면 속도는 의미가 없다. 매출과 시총이 오른다고 해도 내실은 결국 점점 더 하락할 것이다.


 게임업계는 생각보다  겨울을 보내게   같다. 3 원대 매출을 자랑하는 넥슨은 메이플 큐브 조작 사태로 위기에 빠졌고 TL출시 실패로 영업이익이 급감한 엔씨소프트주가폭락했다. 넷마블은 흑자전환에 기대감이 감돌고 있지만 독자적인 IP 여전히 구축하지 못하고 있다. 리니지라이크의  축을 담당하는 카카오게임즈나 웹젠은 서브컬처게임에 기대를 걸고 있다. 새로운 시도는 좋지만 과금영역에서 책임감 있는 행보를 보여줄 가능성은 낮다. 크래프톤은 신작을 대거 예고한 상태지만 작년에도 수익의 대부분을 <배틀그라운드> 의존했다. 순항 중인 스마일게이트의 <로스트아크> 역시 과금 관련 이슈에서 자유롭지는 않을  같다.


 사람이 진흙탕에 너무 오래 뒹굴다 보면 자신이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게 된다. 주기적으로 거울을 들여다보지 않으면 겉모습은 엉망이 된다. 내면도 마찬가지다. 지속적인 반성과 성찰을 잃어버리면 인간은 괴물이 된다. 사람들이 모여서 기업을 만든다. 사람이나 기업이나 그 성격은 동일하다. 한국 게임계는 진흙탕에 너무 오래 있었다. 뛰어난 개발능력을 상실하고 즐거운 게임을 만든다는 직업의식도 희미해졌다. 역량은 아직 남아있겠지만 그 역량을 발휘할 기회를 위에서 허락하지 않는다. 업계 종사자들은 이상을 품고 있지만 배의 키를 잡은 자들은 별이 아니라 오로지 돈만 보고 있다.


 사업부진과 매출하락은 구조조정과 퇴직 그리고 프로젝트 중단을 낳는다. 인력감원 바람이 불면 종사자들은 더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다. 적극적으로 의견을 표출하면서 개선점을 제시하기 어려워진다. 사업부와 경영진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검증된 사업모델을 보수적으로 적용할 가능성이 높다. 혁신적인 도전은 없고 효율적인 새로운 과금모델만 혁신이라는 가면을 쓰고 등장할 것이다. 그렇게 자성과 쇄신의 기회는 또다시 사라지게 될 것 같다. 위기를 만든 원인제공자들이 위기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으므로 변화는 없다. 생각이 바뀌지 않으면 행동은 반복될 뿐이다. 머리가 달라져야 체질개선도 가능하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눈을 씻고 봐도 전혀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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