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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민 Jan 24. 2024

반면교사의 교과서가 된 엔씨소프트

신뢰를 잃어버린 기업은 미래가 없다

 엔씨소프트는 <리니지> 시리즈를 필두로 <아이온>과 <블레이드 앤 소울>이라는 걸출한 MMO 장르의 명작을 탄생시켰다. 엔씨의 성장동력은 MMORPG였다. 다른 기업들이 장르 다변화에 공을 들일 때 한눈팔지 않고 오로지 한 우물만 팠다. 엔씨는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기술개발을 위해 아낌없이 투자했다. 매출대비 R&D는 투자규모는 매년 국내 기업 최상위권을 놓치지 않았다. 인공지능 개발에 지출한 금액만 1조가 넘는다. 그 결과 자체 개발한 생성형 AI 플랫폼 바르코(VARCO)를 보유하게 되었다. 메타휴먼 기술력 역시 상당한 수준을 자랑한다. 하지만 2024년 엔씨소프트의 현실은 참혹했다.


 엔씨소프트의 주가는 2009년 5월 수준으로 돌아갔다. 2021년 100만 원을 넘겼던 시절이 꿈처럼 멀게 느껴진다. 기술개발에서 보여준 성과와 별개로 기업가치는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중이다. 전진이 아니라 후퇴를 거듭하게 된 이유는 리니지다. 칼로 흥한 자는 칼로 망한다. 리니지로 흥한 엔씨는 결국 리니지로 몰락하고 있다. 과거 MMORPG 장르의 명가시절 제작한 걸작들은 모두 독자적인 세계관과 특색을 갖고 있었다. 콘텐츠와 스토리텔링 면에서 완성도와 독창성이 높았다. 그러나 모바일로 넘어오면서 이런 강점은 전부 사라져 버렸다.


 모바일로 플랫폼을 전환하면서 <리니지 M>은 PC 리니지에 없던 확률형 아이템이라는 BM을 들고 나왔다. 천문학적인 수익을 내기 시작하자 엔씨는 BM을 고도화하는데 집중했다. 국내 최고 수준의 전문가들이 모여 게임 내 수익성을 극대화하는데 사활을 걸었다. 전략은 성공했다. 2010년대 초 아이온과 블레이드 앤 소울의 흥행을 아득하게 초월하는 대박을 터뜨렸다. 다른 기업들보다 모바일 진출이 늦었던 엔씨소프트는 세간의 의심을 불식시키고 대성공을 거뒀다. 그러나 치밀하게 설계한 리니지식 과금모델은 독이 든 성배였다. 독이 든 이상 성배는 극약이 든 독배나 마찬가지다.


 리니지 모바일의 성공 이후 엔씨가 개발하는 모든 게임의 모범답안은 리니지가 되어버렸다. 성공을 그대로 답습하려는 안일함은 결국 화를 불렀다. <블레이드 앤 소울 2>와 <트릭스터 M>은 처참하게 실패했다. 리니지가 완벽하다는 오만이 부른 패착에서 엔씨는 벗어나지 못했고 이 과정에서 IP가 손상되는 치명상을 입었다. 독자적인 세계관을 자랑했던 블레이드 앤 소울 시리즈는 회생불가능한 수준으로 망가졌다. 트릭스터 M은 얼마 전 서비스를 종료했다. 회심의 일격으로 준비했던 <TL: 쓰론 앤 리버티> 역시 리니지의 팔레트스왑에 불과했다. 해킹이슈와 유저감소라는 악재를 만나 최근 서버까지 통합했다. 영업이익은 급감했고 야심 차게 내놓은 신작은 모두 실패했다.


 과거의 엔씨는 한 장르에 집중했다는 점에서 장인정신을 발휘했다는 평가를 듣는 기업이었다. 지금의 행보와 상반되는 돌아갈 수 없는 슬픈 과거다. 뿌리 깊이 퍼진 독을 씻어낼 방법은 없다. 뼈를 깎는 노력으로 쇄신과 혁신을 약속했지만 결과물로 제시한 <TL>은 게임계 역대 최악의 자충수였다. 누가 봐도 악수였지만 본인들은 묘수로 생각했다는 점에서 앞으로 반전을 만들어낼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온갖 악재를 다 달고 있지만 리니지는 매출 1조 원을 달성했다. 하지만 엔씨소프트의 향후 전망을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변화를 상실한 집단의 미래는 늘 과거를 답습한다. 결국 엔씨는 <리니지클래식> 따위를 내놓을 것이다.


 신작의 흥행실패로 인한 매출감소는 문제가 아니다. 진짜 심각한 문제는 제대로 된 AAA급 게임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공신력을 완전히 잃어버렸다는 점이다. 엔씨는 게임개발역량과 MMO 명가라는 강점을 완전히 상실했다. 리니지와 동일한 게임성과 과금모델을 가진 리니지라이크 말고 엔씨가 만들 수 있는 게임이 없다는 사실은 치명적이다. 리니지라이크 장르는 이제 엔씨만의 강점이 아니다. 카카오게임즈와 넥슨 그리고 웹젠까지 리니지라이크를 내놓으면서 엔씨의 영역을 잠식했다. <오딘>과 <나이트크로우> 그리고 <뮤 모나크>는 리니지를 떠난 린저씨들을 조용히 흡수했다.


 위기를 감지한 엔씨는 또다시 혁신을 입에 담았다. 기업전문가를 공동대표로 선임하고 가족경영 체제를 종료한다고 선포했다. 하지만 한 번 잃은 신뢰는 회복할 수 없다. 신뢰를 쌓는 것은 정말 힘들지만 잃는 것은 한순간이다. 유저들은 대부분 등을 돌렸고 대중의 전방위적인 조롱이 난무하는 중이다. 회사가 망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회사 밖에 진을 치고 있는 기업은 매 순간이 위기다. 어떤 시도를 해도 부정당하고 혁신을 결의해도 폄하당한다. 그러나 대중을 탓할 수는 없다. 문제는 전적으로 신뢰를 잃은 쪽에 있다. 물론 엔씨의 위세는 건재하다. 4조가 넘는 시가총액과 2조 원 대의 현금성 자산 그리고 1조 원대 매출은 분명 강점이다. 하지만 신뢰를 완전히 잃어버렸다는 단점 하나가 이 모든 장점을 전부 무너뜨려버렸다.


 소비자이자 이용자인 유저를 천대했던 엔씨의 행보를 생각해 본다면 지금의 퇴보는 자업자득이다. 문양롤백 사건이나 과금유저를 대하는 차가운 태도가 전부 인과응보가 되어 돌아왔다. 위기에서 벗어날  마지막 방법은 하나뿐이다. 체질개선을 빌미로 비용절감을 실행할 수밖에 없다. 이제 진짜 뼈를 깎아야  시간이 왔다. 위기 앞에서 기업은 체통을 지킬 수도 없고 체면을 내세울 수도 없다. 양반처럼 위세부리던 시절은  끝났다. 수익이 나지 않는 사업을 정리하고 구조조정을 거쳐서 인건비를 줄이게  것이다. 경영진의 사업실패는  직원들의 희생을 낳는다.


 엔씨는 ESG 경영의 선두주자를 자처하고 있지만 허울 좋은 소리일 뿐이다. 유저를 기만하고 대중을 우습게 여기는 행보는 윤리경영과는 거리가 멀다. 애초에 엔씨는 두 얼굴이었다. 게임이라는 한 우물만 판 것 같지만 엔씨는 문어발식으로 신사업을 추진하다 모조리 실패했다. 케이팝 플랫폼 유니버스는 수익성 악화로 문을 닫았고 클렙엔터테인먼트는 지분을 정리했다. 웹툰과 디자인 사업 역시 성과를 내지 못했고 야심 차게 내세운 AI 로보어드바이저 투자사업은 0원에 매각했다. 미래먹거리를 확보하기 위한 신사업은 전망과 방향성을 찾아볼 수 없는 도박에 불과했다. 엔씨는 리니지에서 나오는 막대한 수익을 무분별하게 배팅했을 뿐이다. 배팅이 비즈니스가 아니라는 사실을 결과가 말해준다.


 엔씨소프트는 B2B 가 아니라 B2C 기업이다. B2B 기업이 핵심이 신용이라면 B2C는 신뢰다. 매출의 대부분은 게임 내 유저들의 결제가 차지한다. 유저는 기업이 제공하는 게임 서비스의 이용자이자 아이템과 같은 콘텐츠를 구매하는 소비자다. 소비자의 기대와 신뢰를 잃은 기업은 경쟁력을 상실한 것이나 다름없다. 브랜드이미지와 소비자신뢰도 둘 다 잃어버린 현재 상황은 사면초가나 마찬가지다. 결국 엔씨는 리니지라는 철옹성을 쌓고 내부에서부터 천천히 무너져 내리고 있다.


 수많은 게이머들이 엔씨소프트가 도산하기를 바라고 있다. 유튜브와 온라인 커뮤니티의 조롱과 비난은 날이 갈수록 증가하는 중이다. 소비자를 기만하는 기업은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된다. 소비자의 민심은 천심이다. 기업의 명운을 결정하는 것은 소비자다. 변화를 거부하고 안일함에 도취된 채 소비자의 목소리를 외면한 대가는 파국이다. 시대의 변화에 발맞춰 움직이는 기업들만 살아남을 것이다. 소비자는 돈줄이 아니다. 기업과 소비자는 서로 공생하고 협력하는 동등한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 존중과 배려가 없다면 기업의 미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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