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태민 Feb 07. 2024

비트코인은 달러와 경쟁하지 않는다

사회현상으로 바라본 비트코인 1편

 인류의 역사는 힘의 논리가 지배했다. 더 강한 쪽이 약한 쪽을 늘 궤멸시켰다. 승리자는 역사가 되고 패배자는 이야기로 남았다. 힘의 논리는 여전하다. 달러는 인류 최고의 발명품이다. 달러의 본질은 미국을 세계 유일의 최강국으로 유지시키는 데 있다. 군사력과 경제력 그리고 기술력과 문화 지배력. 이 네 가지가 화폐의 힘을 가늠하는 기준이다. 인류의 모든 화폐 중에서 이 네 가지 요소를 모두 갖춘 것은 달러뿐이다. 달러의 왕좌를 넘봤던 도전자들은 모두 무너졌다.


 버블시기의 엔이나 일장춘몽으로 끝난 페트로위안화를 떠올려보면 알 수 있다. 달러는 미국중심의 세계질서인 신자유주의와 자유무역을 확대시켰다. 이 과정에서 상호주의와 같은 휴머니즘은 국제무대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15-20년 주기로 반복되는 경제 위기에서 살아남는 것은 언제나 미국이다. 신흥국들이 눈부신 발전은 늘 경제 위기 앞에서 좌초당한다. 그때마다 미국은 살아남고 매번 자기중심적인 경제질서를 내세웠다. 어느 누구도 거역할 수 없었다.


 혼란이 잠잠해지고 나면 다시 새로운 10년(new decade)을 이어갈 미국식 경제모델이 통용된다. 90년대 말 아시아 신흥국 경제 위기나 08 서브 프라임 그리고 코로나 이후 촉발된 미중 신냉전의 승자는 미국이다. 달러는 공방 일체의 무기다. 달러를 사용하는 모든 국가는 미국의 고객이지만 위기가 닥치면 노예로 전락한다. 달러 가치가 치솟으면 자국의 통화체계는 타격을 받는다. 수출산업에 의존하는 대부분의 국가들이 달러 앞에 무릎을 꿇는다. 국제관계에서 달러에 충성할 수밖에 없는 헤게모니가 만들어진다.


  비트코인은 이런 달러 헤게모니가 지배하는 무대에 등장한 역사적인 사건이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현상에 가깝다. 사토시 나카모토가 처음 비트코인을 들고 나온 시기는 서브 프라임 전후다. 분명히 말하자면 미국식 금융주의는 이때 실패했고 한 번 죽었다. 제도와 시스템은 합리적으로 작동하지 않았고 인간의 탐욕이 법망과 금융질서를 유린하는 명확한 한계를 보여줬다. 체계와 법 그리고 제도는 중앙화된 결정권을 갖는다. 힘을 가진 책임자는 곧 사람이다.


 학연과 지연 같은 인적 네트워크에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중앙화는 반드시 타락한다. 모럴해저드는 모든 집단의 성숙기에 발생하는 운명론적 결과물이다. 그래서 미국금융주의는 서브프라임 시기에 붕괴했다. 타락의 끝은 파멸이고 무너질 때가 오면 속절없이 넘어진다. 금융의 중앙화는 늘 똑같은 결말을 맞이한다. 비트코인은 중앙화 즉, 결정권자들의 타락과 권력집단의 자본 사유화를 차단한다. 비트코인의 이런 특징을 다른 자산들과 비교해서 무결성(integrity)으로 부를 수도 있다.


 인간은 변한다. 사회도 인간의 변화에 따라 모습이 달라진다. 본능과 욕구에서 인간은 자유로울 수 없다. 그래서 시장은 늘 탐욕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위대한 철학자 플라톤은 철인정치를 강조했다. 철인(wiseman)은 사리사욕을 배제한 현자다. 사적으로 권력과 자본을 소유하지 않고 인적관계에 영향을 받지 않는 존재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비트코인은 철인의 위치에 올라선 것처럼 보인다. 금융권력의 중앙화에서 자유로운 특성은 혁신으로 대우받았다. 그러나 현재까지의 행보를 본다면 방향성이 없는 것일 뿐이다. 금융시장이 초래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완벽한 대안이 된 적은 없었다.


 비트코인은 달러경제질서의 대척점에 서있는 시장이 아니다. 달러패권과 살육전을 벌이거나 치열한 경쟁을 통해 세력을 확장하려 하지 않는다. 그럴만한 힘이 없다. 가격은 시장과 사회에 영향력을 발휘하지만 문제를 해결하는 결정권은 없다. 비트코인은 권력이 아니라 단어 그대로 현상이다. 21세기에 새로 등장한 자본현상이다. 데이터가 권력이 되고 수익이 되는 데이터 경제시대의 초상이다. 모든 경제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마법 같은 해법이 아니다. 여전히 달러패권이 지배하는 세계 속에 살고 있다는 점이 이를 반증한다.


 미국 금융주의의 모럴해저드가 극에 달하면서 2010년대 초반까지 ‘월가의 도둑을 몰아내자’는 반감이 득세했다. 달러가 만든 20세기 이후의 세계질서가 아버지라면 미국식 금융주의는 적장자나 다름없다. 그런 금융주의가 가져온 사회적 실패에 미국인들과 세계인들은 분노했다. 그러나 앞서 밝혔듯 경제 위기는 늘 달러에 의해 해소된다. 한 번 죽었던 미국식 금융주의는 달러의 축복을 받고 곧바로 부활했다. 양적완화의 힘으로 서브프라임이 안긴 피해는 불과 1년 반 만에 시장이 반등하는 결과로 돌아왔다.


 그 후 2010년대 아이폰의 등장과 함께 찾아온 IT 혁명을 시작으로 미국 증시는 이후 14년간 우상향 하고 있다. 결과론적으로 말하자면 달러는 또다시 승리했다.  2024년 현재 미국 증시의 대표주자인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 시총을 합치면 한화 7천 조가 넘는다. 대한민국 10년 치 국가예산이다. 달러 패권은 경제력과 군사력 그리고 기술력과 문화 지배력이라는 네 가지 힘이 모여서 만들어졌다. 미국의 빅테크 기업집단인 ‘매그니피센트 7’이 AI혁명을 선도하는 것을 보면 달러 패권은 앞으로도 공고할 것이다.


 미국달러 중심의 기축통화는 한계가 명확하고 단점도 뚜렷하다. 주기적으로 위기를 부르고 붕괴와 재생을 반복한다. 그러나 전 세계적으로 미국의 입지가 내려오지 않는 한 달러의 쇠락과 회복은 부활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달러는 늘 혼란과 환란 속에서 부활한다. 죽지 않고 매번 다시 살아난다. 달러가 초래하는 경제 위기가 팬데믹이라면 면역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미국뿐이다. 지존의 자리를 노리는 신흥강대국은 경제위기로 늘 고꾸라진다. 공방일체의 무기인 달러는 대체 불가능한 패권이다. AI혁명기가 오면서 위세는 더 강해졌다. 통화가 갖는 권력에서 기술력이 차지하는 비중은 점점 더 우상향 하고 있다. 그리고 AI기술마저 미국의 매그니피센트 7이 독식해 버렸다.


  물론 환란 속에서 비트코인도 살아남았다. 달러처럼 시대를 관통하는 결정력은 없지만 변동성을 타고 살아남는 생존력은 있다. 이런 유연함이 비트코인이라는 현상의 본질일지도 모르겠다. 다만, 유연함이 탐욕과 불안 같은 외부요인에 영향을 받는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비트코인은 자유롭지만 자유롭지 않은 자산이다. 금융의 중앙화가 갖는 문제로부터 자유롭지만 외부에서 오는 변화로부터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강해서 살아남았다기보다는 살아남았으므로 강하다고 부를 수 있는 쪽에 가깝다.


 비트코인을 향한 사람들의 시각은 극과 극으로 나뉘는 편이다. 이미 누군가에게는 종교가 됐다. 추종자들은 복음을 의심하지 않는다. 혁명으로 보는 사람도 있고 사기로 취급하는 관점도 존재한다. 인류는 언제나 같은 현상에 대한 다른 해석을 가지고 대립한다. 서로 다른 해석을 가지고 늘 싸운다. 전쟁은 매번 여기서 비롯된다. 비트코인도 마찬가지다. 생각은 자유다. 100억이 될 수도 있고 전망과 달리 망가질 수도 있다. 갑자기 등장했으므로 갑자기 사라져도 문제는 없다. 결말이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환희나 비극이나 어차피 똑같이 시끄러울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