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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민 Feb 07. 2024

사회문화적인 현상으로 바라본 비트코인

 인류의 역사는 힘의 논리가 지배했다. 더 강한 쪽이 약한 쪽을 늘 궤멸시켰다. 승리자는 역사가 되고 패배자는 이야기로 남았다. 힘의 논리는 여전하다. 달러는 인류 최고의 발명품이다. 달러의 본질은 미국을 세계 유일의 최강국으로 유지시키는 데 있다. 군사력과 경제력 그리고 기술력과 문화 지배력. 이 네 가지가 화폐의 힘을 가늠하는 기준이다. 인류의 모든 화폐 중에서 이 네 가지 요소를 모두 갖춘 것은 달러뿐이다. 달러의 왕좌를 넘봤던 도전자들은 모두 무너졌다. 버블시기의 엔이나 일장춘몽으로 끝난 페트로위안화를 떠올려보면 알 수 있다. 달러는 미국중심의 세계질서인 신자유주의와 자유무역을 확대시켰다. 이 과정에서 상호주의와 같은 휴머니즘은 국제무대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15-20년 주기로 반복되는 경제 위기에서 살아남는 것은 언제나 미국이다. 신흥국들이 눈부신 발전은 늘 경제 위기 앞에서 좌초당한다. 그때마다 미국은 살아남고 매번 자기중심적인 경제질서를 내세웠다. 어느 누구도 거역할 수 없었다. 혼란이 잠잠해지고 나면 다시 새로운 10년(new decade)을 이어갈 미국식 경제모델이 통용된다. 90년대 말 아시아 신흥국 경제 위기나 08 서브 프라임 그리고 코로나 이후 촉발된 미중 신냉전의 승자는 미국이다. 달러는 공방 일체의 무기다. 달러를 사용하는 모든 국가는 미국의 고객이지만 위기가 닥치면 노예로 전락한다. 달러 가치가 치솟으면 자국의 통화체계는 타격을 받는다. 수출산업에 의존하는 대부분의 국가들이 달러 앞에 무릎을 꿇는다. 국제관계에서 달러에 충성할 수밖에 없는 헤게모니가 만들어진다.


 비트코인은 이런 달러 헤게모니의 새로운 대안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경제체계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체계보다 새로운 질서(new order)에 가깝다. 사토시 나카모토가 처음 비트코인을 들고 나온 시기는 서브 프라임 전후다. 분명히 말하자면 미국식 금융주의는 이때 실패했고 한 번 죽었다. 제도와 시스템은 합리적으로 작동하지 않았고 인간의 탐욕이 법망과 금융질서를 유린하는 명확한 한계를 보여줬다. 체계와 법 그리고 제도는 중앙화된 결정권을 갖는다. 결정하는 주체가 있고 힘을 가진 책임자가 존재한다. 그들은 사람이다. 학연과 지연 같은 인적 네트워크에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중앙화는 반드시 타락한다. 모럴해저드는 인간이 만든 모든 집단의 성숙기에 발생하는 운명론적 결과물이다. 그래서 미국금융주의는 서브프라임 시기에 한 번 죽었다.


 비트코인은 중앙화 즉, 인간의 타락과 거대 권력집단의 자본 사유화를 차단한다. 도덕적으로 타락하지 않으며 사회적인 병폐와 스캔들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비트코인의 이런 점을 나는 무결성(integrity)이라고 말하고 싶다. 인간은 변한다. 사회도 인간의 변화에 따라 모습이 달라진다. 본능과 욕구에서 인간은 자유로울 수 없다. 고대 그리스 시기의 위대한 철학자 플라톤은 철인정치를 강조했다. 철인(wiseman)은 욕망과 권위 사리사욕을 배제한 현자다. 사적으로 권력과 자본을 소유하지 않고 인적관계나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존재인 것이다. 이전의 금융시장에 존재하지 않았던 철인의 지위에 올라 선 것이 ‘비트코인’이다.


 도덕적인 무결성과 중앙화되는 금융권력의 한계를 벗어난 비트코인의 가치는 새로운 질서로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다. 미국 금융주의의 모럴해저드가 극에 달하면서 2010년대 초반까지 ‘월가의 도둑을 몰아내자’는 반감이 득세했다. 달러가 만든 20세기 이후의 세계질서가 아버지라면 미국식 금융주의는 장자나 다름없다. 그런 금융주의가 가져온 사회적 실패에 미국인들과 세계인들은 분노했다. 그러나 앞서 밝혔듯 경제 위기는 늘 달러에 의해 해소된다. 한 번 죽었던 미국식 금융주의는 달러의 축복을 받고 곧바로 부활했다. 양적완화의 힘으로 서브프라임이 가져온 괴멸적인 피해는 불과 1년 반 만에 시장이 반등하는 결과로 돌아왔다. 그 후 2010년대 초 IT 혁명을 시작으로 미국 증시는 이후 14년간 지금까지 우상향 하고 있다. 결과론적으로 말하자면 달러는 또다시 승리했다.

 

 2024년 현재 미국 증시의 대표주자인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 시총을 합치면 한화 7천 조가 넘는다. 대한민국 10년 치 국가예산이다. 달러 패권은 경제력과 군사력 그리고 기술력과 문화 지배력이라는 네 가지 힘이 모여서 만들어졌다. 미국의 빅테크 기업집단인 ‘매그니피센트 7’이 AI혁명을 선도하는 것을 보면 달러 패권은 앞으로도 공고할 것이다. 그러나 비트코인은 그 속에서 제 역할을 다하고 있다. 비트코인은 달러라는 경제질서의 대척점에 서있는 것이 아니라 효율적인 대안(effective alternatives)이다. 비트코인은 달러와 살육전을 벌이거나 치열한 경쟁을 통해 지위와 세력을 확장하려 하지 않는다. 현상은 말 그대로 현상이다. 자연적이든 인위적이든 한 번 발생하고 나면 사라지지 않는다. 비트코인은 사라지지 않는다. 질서이자 현상으로서 달러 체계의 대안으로 존재할 가능성이 높다.


 가격이라는 관점으로 본다면 비트코인은 21세기에 새로 등장한 자본시장이다. 데이터가 권력이 되고 수익이 되는 데이터 경제시대다. 사람들은 비트코인의 가격에 집착한다. 달러 헤게모니의 훌륭한 대안이라는 현상으로서의 가치를 보려고 하지 않는다. 주류 언론이나 기존 경제학의 시각이 크게 작용한다는 반증이다. 비트코인에 우호적인 이들도 달러나 미국을 겨냥하면서 비트코인과의 매치업을 만들기를 즐긴다. 그러나 비트코인은 달러와 경쟁하거나 다른 국가의 통화와 경쟁해서 제로섬게임을 할 이유가 없다. 힘의 논리는 인간의 논리다. 비트코인은 사토시 나카모토가 만들었지만 비트코인의 방향성을 결정하는 사람은 없다. 인간적인 감정과 판단에서 유리되어 있으므로 힘의 논리가 통하지 않는다. 바로 이점이 비트코인의 ‘지속 가능한 영속성(sustainable perpetuity)’을 부여한다.


  비트코인은 가격이나 규제 같은 내외부적인 요인에 영향을 받아도 사라지지 않는다. 화폐는 중앙정부에 의해 발행되는 일종의 가치 저장소다. 신뢰에 의해 작동하고 국가의 상태(status)에 영향받는다. 경제와 사회문화적 배경으로 인해 화폐가치는 지속적으로 변동성을 갖게 된다. 그러므로 화폐는 체계(system)다. 반대로 비트코인은 현상(phenomenon)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가치저장과 가격이라는 관점에 집착해서 화폐로 규정하는 것은 1차원적인 시각에 가깝다. 비트코인은 사회문화적인 현상과 내외부적인 다양한 변동성에서 유리되어 있는 ‘독립적인 정체성(isolated identity)’을 가지고 있다. 이 점이 비트코인의 강점이다. 물론 키를 잡은 사람이 없는 만큼 예측하지 못한 위험성이 존재할 수도 있다. 완전무결한 기술은 없다. 도태될 수 있고 얼마든지 밀려날 수 있다. 비트코인도 마찬가지다.


 달러 중심의 패권주의는 독자적인 경제적 정체성을 불허한다. 달러 이외의 헤게모니를 지향하면 국제사회에서 고립되거나 제재당한다. 어느 누구도 미국의 경제사회문화적 지배력에서 벗어날 수 없다. 달러가 통용되는 곳에서는 늘 코카콜라와 맥도널드, 스타벅스를 볼 수 있다. 화폐는 지배력이다. 돈이 영향력을 끼치는 곳은 그 나라의 문화적인 식민지나 다름없다. 전 세계의 달러의 영향이 끼치지 않는 곳은 없다. 미국의 적인 중국이나 심지어 북한까지 달러의 영향권 아래 놓여있다. 비트코인을 중앙 통화로 삼은 엘살바도르라고 다르지 않다. 달러는 모든 것을 지배하고 통제하는 미국식 힘의 질서를 품고 있다. 그러나 인류는 AI 기술의 발달을 통래 물리적인 영토의 한계를 곧 넘어설 것이다. 온라인은 현실 세계와 완전히 통합될 것이다. AR/XR 기술과 AI 딥러닝은 가상현실을 현실에 접목시키게 될 것이다. 나는 이 시점을 크로스브리지(cross-bridge)라고 명명하려 한다.


 현재  세계는 기술적 우위를 점하고 정보를 통제하고 독점하는 빅브라더의 등장을 경계하고 있다. 매그니피센트 7 거느린 미국은 기술로 세계를 선도하고 있지만 동시에 경계의 대상이 됐다. 가상현실이 가져올 미래마저 달러 패권에 지배당하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현실세계에서 달러의 영향력은 절대적이지만 현실과 온라인이 하나가 되는 크로스브리지를 완전히 지배할 만큼 강력하지는 않다. 비트코인은 그런 사람들의 열망과 소망을 끌어들이는 자유로운 피난처(exodus shelter)  것이다. 비트코인은 달러와 경쟁하지 않는다. 달러가 만든 경제적인 체계와 다투지 않는. 현상은 체계 너머에 존재한다. 물을 댐에 가둔다고 수증기가 만드는 구름을 막을 수는 없다. 비트코인은 화폐가 아니다.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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