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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민 May 03. 2024

라인야후 그리고 네이버

혈맹이 돌아서면 서로 피 흘리며 싸우는 적이 된다

 비즈니스 관계는 영원한 적도 친구도 없다. 경쟁자에서 동반자가 된 라인과 야후의 관계가 삐걱이고 있다. 일본 정부는 두 차례의 행정지도를 통해 라인야후와 네이버의 관계를 전면 재검토할 것을 지시했다. 지분매각을 통해 사실상 손을 떼고 나가라는 퇴출요구나 마찬가지다. 청천벽력이나 다름없는 낭보지만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네이버는 라인을 서비스하면서 일본 시장을 정복했지만 국적이슈가 늘 문제였다. 창립자인 이해진은 국적 논란에 관해서 심플하게 글로벌 기업이라는 논리를 내세웠으나 설득력이 부족했다. 한일관계는 양국 모두에게 결코 심플할 수 없는 문제다.


 라인은 일본 사회에서 일종의 사회적 인프라다. 메신저 서비스를 비롯해서 금융과 각종 인증서비스까지 제공하면서 생활의 필수요소가 됐다. 더군다나 일본 정부는 라인을 통해 전자정부로 디지털 전환을 실현하는 중이다. 라인의 입지가 강해질수록 국적 문제는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 포털 1위인 야후와 라인이 통합되면서 지배력은 더 공고해졌고 결국 일본은 칼을 빼들었다. 명분만 생기면 언제든 목을 칠 생각이었을 것이다. 합작회사에서 지분 매각하면 경영권을 넘기라는 말과 같다. 네이버 입장에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대마는 쉽게 죽지 않지만 머리는 자의든 타의든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


 네이버 측 최수연 대표와 소프트뱅크 측 손정의 회장이 만나서 해결책을 모색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양국 정부 모두 외교적인 수사법을 사용하면서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합리적인 해법이 나오지 않는다면 외교적 갈등으로 번질 수도 있는 문제다. 그러나 네이버에게 유리한 대안이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2억 명에 달하는 이용자를 보유한 라인을 포기해야 할 수도 있다. 10년 넘게 공들인 글로벌 시장에서 축출당하는 것은 수족이 완전히 잘려나가는 것이다. 높은 배당을 보장받고 주식 보상 플랜을 받는다고 해도 주도권을 빼앗기면 결국 을이 될 뿐이다.


 단순히 3,4%의 지분을 프리미엄을 얹어서 매각하는 걸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네이버의 해외사업 중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것은 라인뿐이다. 2조 원 가까이 주고 인수한 포쉬마크는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웹툰은 글로벌 1위를 달성한 카카오픽코마에 비해 입지가 줄었다.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공을 들이고 이커머스에 집중했지만 해외진출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상황이다. 라인을 제외한 네이버의 글로벌진출 성적표는 초라하다. 그래서 라인을 포기할 수 없다. 2억 명이 넘는 이용자를 보유한 라인 생태계는 네이버의 자랑이자 희망이다. 하지만 계획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 몇 년 사이 세상이 완전히 변해버렸다.


 신자유주의가 몰고 온 글로벌공급망 시스템이 전쟁과 분쟁으로 인해 망가졌다. 미국을 필두로 강대국들이 자체 공급망을 구축하고 생산기지를 자국으로 옮기고 있다. 분업화는 사라지고 각자도생이 대세가 됐다. 신의와 대의보다 실리와 국익이 더 중요해졌다. 그때는 맞았던 상식이 지금은 틀린 선택지가 됐다. 우방이라도 손익을 따지는 저울을 피할 수 없다. 누가 칼을 숨겼는지 알 수 없는 불안과 불신의 시대다. 이러한 갈등을 촉발시킨 배경에 AI혁명이 있다. AI 기술은 군사력 이상의 영향력을 갖게 됐다. 자국민 대다수가 이용하는 앱을 적국의 기업이 소유한다면 국가안보에 위협이 될 수밖에 없다. 외교에 있어서 영원한 적이나 친구는 없다는 사실은 역사가 증명한다. 피를 나눈 혈맹과 틀어지면 피를 흘리는 싸움을 해야 한다.


 한일 양국은 관계를 개선하고 발전을 모색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지만 과거는 쉽게 청산할 수 없다. 역사는 기록이므로 사라지지 않는다. 라인야후 사태는 외교와 안보 그리고 역사문제라는 여러 난제가 첨예하게 얽혀있다. 어느 쪽도 손해 볼 생각이 없다. 하나 내주면 하나 돌려받는 비즈니스의 상식이 통하지 않을 수도 있다. 기업과 국가가 보여주는 합의는 거래를 의미한다. 하지만 과거사와 민족정서가 끼어들면 거래가 성립될 가능성이 사라진다. 첨예한 대립이 빚어내는 입장차이는 좁힐 수 없다. 결국 힘의 논리가 작용하면서 더 강한 쪽이 칼자루를 쥔다.


 라인을 만든 것은 네이버지만 야후와 합작하면서 경영권은 소프트뱅크가 가져갔다. 일본 국내 사업을 원활하게 하려는 조치였지만 지금 와서 보면 독이 됐다. 일본은 우위를 점하고 있다. 명분 역시 마찬가지다. 50만 건이 넘는 라인 이용자의 개인정보가 네이버클라우드를 통해 유출됐다. 기술개발과 운영을 담당하는 네이버의 과실로 몰아가면 많이 불리해진다. 개인정보 유출은 어디까지나 표면적인 이유일 뿐이다. 일본 정부의 진짜 목적은 네이버를 축출하는 것이다. 일본은 최근까지 개인정보이슈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통신기업 NTT는 2023년 10년간 약 900만 건에 달하는 개인정보를 유출당했다. 그러나 NTT에게 정부는 약한 행정지도 처분만 내렸다. 네이버는 억울하겠지만 어쩔 수 없다. 세상이 변했고 상황이 달라졌다. 경영과 개발을 분리해서 운영하는 시스템이 악수가 됐다. 애초에 두 기업은 완전하게 하나가 된 적이 없다. Z홀딩스 시절에도 라인과 야후는 각자 움직였다. 핀테크 분야에서도 라인페이와 페이페이로 따로 사업을 운영했다. 합병이 아니라 통합이라는 말장난은 비즈니스 환경에서 통하지 않았다. 시너지는 발생하지 않았고 포털과 메신저 1위 자리를 꿰차고도 성장은 지지부진했다.


 Z홀딩스에서 라인야후로 사명을 변경하고 완전한 합병을 발표했지만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한국 쪽 임원들과 이사회가 물러나고 일본 측 인사들이 자리를 채웠다. 국적이슈 문제를 방지하려는 선택이었지만 효력은 없었다. 압도적인 규모의 플랫폼 기업 둘이 하나가 됐지만 라인야후는 성과를 내지 못했다. 기술개발을 전담했던 네이버가 내놓은 서비스들은 일본시장에 안착하는데 실패했다. 스마트스토어는 부진의 늪을 벗어나지 못했고 한국에서 성공했던 네이버파이낸스의 저력마저 통하지 않았다. 야후와 라인이 운영하는 여러 가지 서비스들이 수익성 악화를 이유로 사라졌다.


 페이페이가 핀테크 분야에서 크게 성장했다고 자화자찬했지만 두 기업의 점유율을 합친 것이나 같았다. 말뿐인 도원결의는 여기저기서 불협화음을 만들어냈다. 처음부터 찌르고 들어갈 만한 틈이 많았다. 개인정보유출은 물고 늘어지기 좋은 트집일 뿐이다. 어색한 동행의 끝은 정해져 있다. 동상이몽은 결국 갈림길 앞에서 서로를 갈라서게 만든다. 네이버의 입지가 줄어들거나 소프트뱅크가 우위를 차지하거나 결말은 어차피 정해져 있다. 네이버는 손해를 줄이는 쪽으로 가닥을 잡을 것이다. 피할 수 없다면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어차피 라인과 네이버는 이전부터 분리되어 있었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라고 볼 수 있다.


 플랫폼 기업의 국적논란은 한국과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은 틱톡을 유해서비스로 규정했고 강도 높은 규제의 칼날을 빼들었다. 동남아 국가들은 텐센트와 알리바바의 영향력을 제한하려고 난리다. 중국도 예외가 아니다. 빅테크 기업을 치면서 텐센트, 딜리버리히어로, 배달의 민족을 보유한 남아공의 프로수스를 견제했다. 쿠팡과 당근마켓 역시 최대주주인 소프트뱅크로 인해 일본자본 논란을 빚었다. 텐센트와 알리바바 지분이 들어간 크래프톤과 카카오 역시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불신과 불안이 팽배한 시대다. 기업가에게는 국적이 있지만 기업은 국적이 없다는 논리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세상이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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