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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민 Mar 25. 2024

대한민국 대표 K컬처 주입식 교육

교육에서 해법을 찾을 수 없는 한국 사회

 맥도널드에 들러서 아침을 먹고 있었다. 건너편 테이블에 40대 여성 둘이 앉았다. 자녀들 근황을 주고받는 것 같았다. 출근 시간이 지나서 그런지 매장은 한산했다. 음악소리도 평소보다 좀 작은 편이라 대화가 유난히 잘 들렸다. 얼굴이 보이지 않는 쪽의 여성의 이야기에 상대방은 열심히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었다. 명문대에 입학한 아들을 거론하면서 입시는 엄마의 역할이 8할이라고 주장했다. 자녀교육에 부모가 끼치는 영향은 적지 않다. 다만 8할에 가까운지는 잘 모르겠다. 성장과정은 부모의 역할 말고도 여러 변수가 작용한다.


 아들 자랑과 자기 자랑을 동일시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다. 엄마의 역할이 절대적이라면서 대입성공비법을 강의하기 시작했다. 스케줄을 짜는 방법과 잘 나가는 강사들 이름이 튀어나왔다. 자녀의 일거수일투족을 통제하면서 오로지 입시만 생각할 수 있도록 판을 짜라는 말이 섬뜩했다. 자녀가 잘되길 바라는 부모 마음은 납득할 수 있다. 다만 방법은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전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자식은 부모의 욕망을 투사하는 대상이고 교육이 아직도 목적이 아니라 수단에 불과하다는 점은 비극이다.


 한국의 높은 교육열은 전 세계적으로 잘 알려져 있다. 유명한 만큼 악명도 높다. 주입식 교육은 조롱과 선망을 동시에 받는 기묘한 문화다. 대한민국은 국가 예산을 들여서 국민 모두가 평생 동안 끊임없이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한다. 배우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자를 외면하지 않는 좋은 나라다. 문맹률은 0%에 가깝고 대학진학률은 거의 90%에 육박한다. 그러나 바닥을 치는 행복도와 높은 자살률, 낮은 직무만족도를 보면 교육의 힘은 무기력해 보인다. 방향성이 잘못되면 속도는 의미가 없다. 사람들이 행복하지 않다면 대체 교육에 무슨 가치가 있을까?


 의무교육은 성장기와 성인기를 잇는 다리와 같다. 가치관과 자의식이 형성되는 시기에 주입식 교육을 통해서 경쟁과 압박에 시달리는 것은 고문이나 다름없다. 성인이 되면서부터 크고 작은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의료계에 종사하는 지인으로부터 신경정신과 진료를 받는 연령대가 점점 더 낮아지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한국은 우울과 불안에 시달리는 아동청소년들이 약을 복용하고 상담을 받아가며 학교를 다니는 나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를 비롯한 기성세대와 사회는 여전히 문제의식이 없다.


 주입식 교육이 상식으로 자리 잡은 이래로 한국 사회의 자살률은 꾸준히 우상향 했다. 개인의 정서적인 문제나 사회구조적 결함으로 치부하는 것은 회피나 다름없다. 아이들은 죄가 없고 잘못도 없다. 정권이 바뀌고 시대가 변해도 주입식 교육은 그대로다. 실패한 교육제도를 고칠 생각은 없어 보인다. K교육의 성과를 자랑하지만 내부를 들여다보면 처참하다 못해 참혹하다. 대학 진학률은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전공을 살리는 비율은 거의 꼴찌나 다름없다. 의식 수준도 높고 직무를 수행하면서 끊임없이 자기 계발을 하지만 은퇴는 선진국 중에서 가장 빠르다. 그래서 중년이 되면 자영업자 비율이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남들처럼 살지 못한다는 생각은 강박이 되고 남들만큼 살지 못했다는 강박은 열패감과 열등감을 만든다. 한 번의 실패를 인생의 실패로 낙인찍는 사회 분위기는 자살률 증가에 악영향을 끼친다. 주입식 교육은 승자독식 구조다. 경쟁을 통해 나온 성과로 사람을 서열화해서 등급을 만든다. 평가기준을 벗어난 개인의 역량이나 다채로운 정체성은 드러나지 않고 인정받을 수도 없다. 등급은 계급이다. 지위가 나뉘면서 평행선을 달리는 사람들 간의 격차는 줄어들지 않는다. 격차에서 비롯된 차별은 상식이 되고 구성원들 간의 화합은 기대할 수 없다.


 1등급 안에서도 수석과 꼴찌라는 우열이 존재한다. 숫자로 줄을 세우다 보면 가르기와 나누기만 존재하는 구조기 만들어진다. 1등급 중에서도 최상위에 속하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서민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산다. 자기보다 못난 사람들을 보면서 우월감을 느끼느라 망각하고 있지만 99% 서민이다. 브랜드 아파트를 소유하고 높은 연봉을 받으면서 중산층이라고 믿고 있는 사람들 역시 서민에 불과하다. 그들 역시 1% 속하는 사람들이 만든 회사와 제도 아래 노동력을 제공하고 임금을 받는 부품이다. 주입식 교육이 만든 구조아래 1% 제외하면 99% 사실상 패배자가 된다.


 주입식 교육이야말로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완벽하게 담은 K컬처다. 제대로 된 자원 하나 없는 수출중심국가는 사람이 자원이다. 교육을 통해 산업전반에 들어가는 노동력인 인적자원을 생산한다. 정체성이나 자아실현 같은 목표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기계를 돌리는데 필요한 부품을 만드는 것만이 최우선이다. 일종의 선별작업에 교육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생각할수록 기분 나쁜 블랙코미디다. 여전히 한국은 천재 한 명이 세상을 먹여 살린다던 대기업 총수의 말이 진리로 추앙받는 나라다.


 한 명의 천재가 만든 시스템 아래 나머지 사람들은 철저히 부품으로 소비되고 때가 되면 교체된다. 아버지의 자리를 아들이 이어받기 위해 정신적으로 가장 유약한 시기에 정서적으로 가장 잔인하게 혹사당한다. 뛰어놀아야 할 나이에 갇혀서 지내고 장래를 꿈꾸면서 적성을 탐색해야 할 때에 문제풀이에 열을 올려야 한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나사가 풀리고 단단히 조여져 있던 기어는 마모된다. 겉으로는 괜찮아 보인다. 그러다 갑자기 엔진이 멈추면서 여기저기 고장 나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해해 주는 사람은 없다.


 사회는 곧바로 오작동을 실패로 규정한다. 부모는 자식을 탓하거나 사회를 욕하고 자식은 부모를 비난하고 세상을 부정하게 된다. 상처받은 사람들은 기댈 곳이 없다. 세대 갈등이나 파편화된 가족관계가 늘어나는 원인도 교육실패에서 비롯될 가능성이 크다. 인정과 애정이 없는 문화는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부모들은 자녀들을 쓸만한 부품으로 만들기 위해 자기들의 인생을 아낌없이 갈아 넣는다. 피땀 흘려 번돈을 사교육에 고스란히 투자한다. 가족이 함께 보낼 시간을 버리면서까지 입시경쟁에 돈을 댄다. 뜨거운 사랑과 희생정신이 빛나는 헌신이지만 결과는 휴머니즘에서 동떨어져있다.


 기술 발전과 사회구조적인 변화 앞에서 노동시장은 요동친다. 주입식 교육을 받으며 살아남은 훌륭한 부품이라도 언제든지 교체될 수 있다. 기업의 경영논리와 현대 자본주의는 인정도 온정도 없다. 마흔 살이 되기도 전에 밀려나는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다. 입시전쟁에서 살아남은 엘리트라고 할지라도 결국 부품에 지나지 않는다. 노력해도 부품은 엔진이 될 수 없다. 임원이나 사원이나 결국 직원이다. 한국식 자본주의에서 엔진은 기업을 소유한 1%의 지배층이다.


 명문대나 대기업에 들어가는 법을 20년 가까이 공부하지만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려주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인생을 올바로 사는 법을 가르쳐줘야 할 부모들은 사교육에 모든 것을 일임했다. 그러나 사교육은 시험을 치르는 법만 알려준다. 사람답게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식을 배울 곳은 없다. 사회에 나와서 제대로 아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에 직면하게 되면 사람들은 극심한 혼란에 빠진다. 그때 밀려오는 무기력과 당혹감을 이겨내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열심히 사는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삶을 불행하다고 여긴다. 교육에서 해법을 찾을 수 없는 현실이 지금처럼 계속된다면 미래세대가 마주할 현실 역시 어두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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