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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민 Mar 12. 2024

절망에 적응하는 사회

소멸하는 대한민국의 민낯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는 나라 대한민국. 마의 벽이라고 불렸던 출산율 0.7명이 깨졌다. 대한민국은 인류 역사에 지워지지 않는 선명한 족적을 남겼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인구가 감소하는 나라다. 2020년은 신생아보다 사망자가 많았다. 지난 3년간 우리나라의 인구는 40만 명 가까이 줄었다. 세종시 인구가 약 38만 명이다. 행정도시 하나가 3년 만에 사라진 것이나 마찬가지다. 한국 사회는 국가 존립과 직결된 심각한 위기상황에 빠졌다.


 20년 넘게 저출산해결을 위해 온갖 정책을 실행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가구당 출산율 0.6명이라는 상황을 설명하려면 인구감소보다 인구소멸이라는 표현을 사용해야 할 것 같다. 불행은 늘 한꺼번에 몰려온다. 고령사회문제, 저성장과 불황, 계층 간 불평등과 양극화 그리고 증오범죄까지. 인구소멸국가의 민낯은 생각이상으로 끔찍하다. 걱정과 불안이 늘어나기는 했지만 국민들이 크게 동요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위기는 늘 고조될 때 가장 혼란스럽다.


 정작 문제가 발생해서 사태가 심화되고 나면 사람들은 익숙해진다. 악재가 연이어 터지면 어느 순간부터 차분해진다. 원래 태풍의 눈 속이 더 고요한 법이다. 처음이 두려울 뿐 연달아 발생하는 사건은 더 이상 공포를 생산해내지 못한다. 위기가 초래하는 사회적 피로감이 만성화되면 다들 문제를 신경 쓰지 않는 경향을 보인다. 6.25 전쟁 중에도 사람들은 취미생활을 하고 여가를 즐겼다고 한다. 인간은 적응하는 동물이다. 사회문제가 도저히 해결 불가능한 상황에 이르면 결국 인간은 절망에 적응한다.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어느 지역이든 동네에서 아이들을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아침저녁으로 보이는 통학행렬도 1,20년 전과 많이 달라졌다. 학년을 막론하고 학생들이 눈에 띄게 줄었다. 젊은 부부들이 사는 신도시라고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이들이 줄어든 것과 반대로 반려동물의 수는 크게 증가했다. 2023년 기준 등록된 반려동물수는 1500만을 넘겼다. 저녁이 되면 공원은 강아지를 산책시키기 위해 나온 사람들로 가득하다. 학령인구가 줄면서 학원도 많이 사라졌다. 그 자리를 펫숍과 강아지미용실이 채웠다.


  인구는 줄고 늘어나는 것은 반려동물과 노인뿐이다. 낮 시간에 어디를 가든 가장 많이 보이는 연령대는 고령층이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확실하게 체감할 수 있다. 선진국이 되자마자 한국사회는 늙어버렸다. 성장동력을 크게 잃어버린 느낌이다. 장년에 접어든 나이로 고시에 합격한 장수생이나 마찬가지다. 가까스로 현상유지는 하겠지만 미래를 향해 도약할만한 체력이 더는 남아있지 않다. 운신의 폭은 좁은 데다 상한선마저 뚜렷하게 정해져 버렸다.


 고령화와 인구감소 문제를 대한민국만 겪는 것은 아니다. 일본은 저출산 위기를 어느 정도 해결했지만 초고령사회가 야기하는 문제로 인해 고통받고 있다. 인구가 곧 국력인 중국은 인류역사상 가장 빠르게 고령화사회로 진입하고 있다. 더불어 청년세대의 높은 실업률이 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 적극적인 이민 정책으로 인구감소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유럽 역시 실패했다. 문화차이에서 비롯된 갈등은 유럽을 테러의 소용돌이 속으로 밀어 넣었다. 북미는 인구절벽위기는 피해 갔으나 인종문제와 약탈 같은 결함을 안고 있다.


 격차는 무리를 이루고 살아가는 사회적 동물의 습성이다. 차별과 차이는 문명이 존재하는 한 사라지지 않는다. 사회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사회문제는 자원의 유무와 분배와 관련해서 발생한다. 불평등이나 불만족 그리고 불합리 같은 문제들까지 전부 해당된다. 인구문제도 마찬가지다. 지속적으로 증가한 양극화와 심화된 경제적 불평등이 저출산문제와 이어져있다.


 한국은 선진국의 지위를 획득하기 위해 거시적인 지표를 개선하는데 집중했다. 경제규모와 생산성 국민소득은 비약적으로 늘었다. 그러나 폭발적으로 증가한 격차를 해소하는 노력은 부족했다. 동시에 사회발전을 목적으로 사람을 자원처럼 사용했다. 수십 년간 일했지만 안락한 노후는커녕 70대까지 일해야 하는 부모를  자식세대가 미래를 꿈꿀  있을까? 절망에 적응하다 보면 용기는 사라진다. 전의를 상실하면 성장동력도 자연스럽게 소멸한다.


 다들 겉으로는 괜찮아 보인다. 하루 세끼 밥을 먹고 일을 하고 사람들과 어울려 지낸다. 온갖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당장 사는데  문제는 없다. 불황과 저성장 그리고 인구감소라는 위기 상황에 자연스럽게 물든다. 긴장과 불안이 만성이 되면서부터 위기감은 피로감으로 돌변한다. 성장지표가 서서히 하락하면서 점점 기반이 무너지고 있지만 체감하기 쉽지 않다. 해결할  없는 문제 앞에 놓인 인간은 결국 현실을 외면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사람들은 하나 둘 침묵한다.


 환경문제를 생각해 보자. 어느 누구도 해결하려 한 적 없고 평범한 사람들 역시 심각성을 인식하지 않았다. 이상기후로 폭염과 자연재해가 극심해지자 심각성을 인식한 것이 전부다. 환경파괴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인구문제를 비롯한 대한민국의 위기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7억 명 가까운 사람들이 감염된 코로나19도 적응하면서 지나갔다. 백신을 접종하고 마스크를 쓰고 생활하면서 초반의 혼란은 차츰 사라졌다. 불편에 적응하면 사람들은 익숙해진다.


 매일 걱정만 하면서 사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무리 심각한 문제라도 시간이 지나면 차츰 익숙해진다. 그렇게 현실을 받아들이면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물들어간다. 동력을 잃고 저성장에 돌입한 사회는 절망에 적응한다. 절망이 상식이 되고 비극은 일상이 된다. 국가의 성장동력은 미래세대다. 미래세대가 사라진 대한민국은 이미 죽어가고 있다. 우리는 소멸하는 국가에 살고 있다. 이제까지 그랬듯이 위기를 극복하고 해법을 찾아낼 수 있을까? 해결하지 못한다면 한국사회는 붕괴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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