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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민 Mar 26. 2024

프루티거에어로

 싫어하는 것들은 죽지도 않고 또 돌아온다. 기어코 2000년대 스타일이 관뚜껑을 열고 지옥에서 기어 나왔다. Y2K룩은 초등학생이었던 90년대에도 진짜 꼴 사나웠다. 중고등학생 시절을 관통한 2000년대 패션은 그보다 더 끔찍했다. 옷 잘 입는 사람에 관한 제대로 된 기준이 없는 이상한 세상이었다. 1년 단위로 미적기준이 폭락과 상장폐지를 거듭하는 미친 차트흐름이 적어도 5년 이상 이어졌다. 납득하기 힘든 시대였다. 이 시기에 통용된 정신 나간 미의식이 2010년대에 재활용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끔찍한 것들일수록 명이 길고 질기다.


 유행은 10년 주기가 아니면 20년 주기다. 에슬레저룩이 코로나 시기에 급부상할 때부터 뭔가 불안했다. 레트로가 뉴트로를 낳으면서 불안은 현실화되기 시작했다. 후루츠 마켓에서 낡은 디지털카메라와 오클리 고글이 인기를 끌었다. 성수동 빈티지 샵에서 2000년대 중반 무드를 품은 유물들을 보고 흠칫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뉴진스가 끌고 온 일시적인 나비효과라고 여겼다. 하지만 푸마 스피드캣을 보고 의심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기어코 본더치 트러커캡과 리바이스 부츠컷이 부활한 것을 목격하고 실소가 나왔다.


 2000년대 스타일은 그때나 지금이나 내 취향은 아니다. 하지만 추억을 회상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반가운 이상한 양가감정을 느꼈다. 역시 인간은 모순덩어리다. 끔찍한 패션과 별개로 당시 산업디자인은 눈부시게 발전했다. 90년대 말 Y2K 시기의 사이버네틱한 괴상한 무드를 벗어나 정체성을 제대로 확립한 시기였다. 애플의 아이팟이 전 세계를 휩쓸었고 핸드폰과 디지털카메라 열풍은 인체공학적인 유선형 디자인을 산업표준으로 만들었다. 특히 핸드폰 디자인은 바, 폴더, 슬라이드 형태로 분화되면서 산업디자인의 격전지로 부상했다. 그야말로 대모바일 시대였다.


 지금은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지만 핸드폰이 새로운 기능이 추가될 때마다 매번 시장은 환호했다. 흑백폰에서 16화음 벨소리를 지원하는 컬러폰이 나왔을 때 모두들 놀랐다. 그러다 30만 화소 카메라폰이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기능은 시간이 지나면 전반적으로 상향평준화된다. 그래서 차별화를 목적으로 기업들은 디자인에 공을 들이기 시작했다. 최근 주목받는 프루티거에어로 스타일은 피처폰 시기에 전성기를 누렸다. 당시에는 어고노믹스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했다.


 다양한 전자기기들이 조약돌처럼 동글동글한 디자인을 선택했다. 날카로운 직선을 버리고 부드러운 곡선을 살린 핸드폰과 MP3가 인기를 끌었다. 아이리버나 삼성전자의 옙은 학생들에게 선호도가 높았다. 기능이나 용량면에서 압도적인 강점은 없었지만 예뻐서 다들 좋아했다. 디자인은 독자적인 철학을 갖고 있으면서도 시대를 반영한다. 2000년대는 복잡한 시기였다. 밀레니엄에 들어서자마자 9.11 테러가 발생했고 2010년대 후반까지 전쟁이 이어졌다. 국내 상황도 비슷했다. IMF이후 양극화가 심해졌고 카드대란이나 신용문제로 사회가 자주 시끄러웠다. 그래서 현실과 다르게 디자인은 부드럽고 생기 있는 형태로 발전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글을 쓰다 보니 푸른색과 녹색을 강조한 윈도우XP 인터페이스가 떠올랐다. 소리바다와 네이트온 메신저도 비슷한 UXUI 갖고 있었다. 알록달록한 색감에 동글동글한 모양새를 띄고 있는 것들이 많았다. 딱히 아름답다고 느낀 적은 없었지만 시각적인 피로감을 주지는 않았다. 화려하지만 자극적인 최근의 콘텐츠와 이미지에 비하면 훨씬 더 보기 편안했다. AI기술혁신이 새로운 것들을 계속해서 만들어내고 있지만 이제 점점 질린다. 혁신도 일상이 되면 재미가 없다. 갈등과 혐오가 생활이 되고 전쟁과 분쟁이 매일 뉴스 1면을 장식하는 2020년대. 동글동글한 2000년대 프루티거에어로 스타일이 돌아온 이유는 사람들의 피로감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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