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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민 Mar 27. 2024

10분 늦게 영화관에 들어가는 이유

 친구들과 개봉하자마자 파묘를 보러 갔다. 오컬트와 스릴러장르 마니아인 나는 기대가 컸다. 하지만 뚜껑을 열고 보니 많이 아쉬웠다. 전반부는 오컬트 영화 특유의 분위기를 통해서 미스터리를 잘 살렸다. 흔한 설정이 반복적으로 나왔지만 몰입감을 나름대로 잘 유지했다. 그러나 중반부부터 ‘내가 지금 뭘 보고 있나.’ 싶은 느낌이 들었다. 친구들도 같은 반응이었다. 장르가 갑자기 판타지로 돌변하면서 객석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그나마 결말은 나쁘지 않았다. 그럭저럭 한 번 정도 볼만한 영화였다.


 사바하로 소포모어 징크스를 날려버렸던 장재현 감독의 역량을 믿었는데 이번에는 운이 나빴다. 친구들도 동의했다. 그래도 정말 오랜만에 다 같이 영화관나들이를 해서 나름 재미있었다. 코로나 이후로 영화관람은 드문 연례행사가 되어버렸다. 많아봐야 일 년에 서 너번 정도 찾는다. 파묘 전에 본 영화는 서울의 봄이었다. 그전에 본 영화는 오펜하이머. 기억을 더 거슬러 올라가려고 했는데 떠오르지 않았다. 한 달에 1,2번은 멀티플렉스 영화관을 찾던 시절이 꿈처럼 멀게 느껴졌다.


 물가가 폭등하면서 영화관람료가 크게 올랐다. 팝콘이나 콜라를 곁들이면 지갑에서 5,6만 원이 훌쩍 빠져나간다. 그 돈을 써가며 영화관에서 영화를 볼 만한 이유는 이제 없는 것 같다. 정말 좋아하는 감독이나 배우의 출연작이 아닌 이상 굳이 비싼 관람료를 지불할 필요성을 못 느끼겠다. OTT 서비스를 몇 달간 구독하는 쪽이 낫다. 심지어 더 싸다. 물론 영화관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유의 분위기는 대체할 수 없다. 그러나 50% 넘게 오른 비용을 감수하고 찾아야 할 만한 매력은 아닌 것 같다. 세상은 변했는데 영화관은 변할 생각이 없는 것 같다.


 시장의 분위기나 경제상황이 급변했고 소비패턴도 이전과 크게 달라졌다. 사용자경험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욕구와 취향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으면 소비자는 곧바로 차갑게 등을 돌린다. 구독형 비즈니스와 팬덤은 충성도가 높은 만큼 실망하면 바로 구독을 해지하고 결제를 중단한다. 맹목적으로 지지하는 충성고객이 없는 시대다. 세상은 변했다. 대부분의 기업들은 코로나를 기점으로 이런 변화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멀티플렉스 영화업계는 현실을 외면하고 있는 것 같다. 혁신도 개선도 없다.


 광고를 보면 소비자에게 보상을 지급하는 방식은 이제 상식이 됐다. 생성 AI 기반의 다양한 서비스들은 이용자들에게 광고를 시청하게 만든다. 광고 몇 개를 보면 서비스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넷플릭스는 광고를 보면 구독료를 할인해 주는 플랜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여전히 2024년에도 영화관에 가면 10분 가까이 광고를 강제로 봐야 한다. 광고타임을 패스하려고 아예 10분 늦게 들어간다. 10년 전에도 영화관 광고와 관련한 문제를 제기한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독점이나 다름없는 극장업계는 합리적인 해명대신 상식 밖의 변명을 늘어놓았다.


 광고수익으로 이용자를 위한 편의서비스나 할인이벤트를 운영한다면 좋겠지만 그럴 생각은 없는 것 같다. 멀티플렉스의 시장점유율이 하락하는 결정적인 원인은 본인들에게 있다. 어느 집단이든 문제인식 단계에서 실패하면 쇄신은 불가능하다. 대기업들이 운영하는 만큼 망할 일은 없겠지만 과거의 영광을 회복하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범죄도시 3>를 시작으로 <서울의 봄>을 거쳐 <파묘>까지 한국 영화들이 크게 성공했다. 그러나 영화흥행과 극장업계의 부흥은 별 상관이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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