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깅하러 나가기 전에 일기예보를 확인했다. 오늘은 대기질이 386이다. 조깅은 물 건너갔다. 이 정도면 KF94 마스크를 써도 초미세먼지를 들이마실 수밖에 없다. 한국의 봄철 대기질은 최악이다. 기침을 달고 사는 사람들을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다. 블라인드를 걷어 올리고 창문을 열었다. 하늘이 뿌옇다 못해 잿빛이었다. 멀리 보이는 아파트와 건물들이 흐릿하게 보였다. 같은 시각 중국 베이징은 168 인도 뉴델리는 153이었다. 악명 높은 뭄바이는 86을 기록했다. 서울을 비롯한 경기도 인근 도시는 평균 290 대였다.
불편함에 익숙해지면 생활이 된다. 창문을 닫고 공기청정기를 돌리고 외출할 때 마스크를 쓰는 것이 전부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존재하지 않는다. 재난 앞에서 인간은 초라해진다. 재해를 상대로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다들 아무렇지 않게 생활한다. 초미세먼지 경보 알림을 받아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평소보다 조금 더 늘어났을 뿐이다.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다 보면 인간은 결국 적응한다. 그리고 위기의식은 점점 희미해진다.
바깥이 어두워지더니 조금 전부터 비가 내리고 있다. 창문을 열자마자 기분 나쁜 흙먼지 냄새가 코끝을 자극한다. 인구의 절반이 거주하는 수도권의 공기질은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환경오염은 시작되면 계속해서 악화될 뿐이다. 좋아지는 법이 없다. 초등학생이었던 90년대에도 봄만 되면 황사가 기승을 부렸다. 교실 밖으로 피어오르는 누런 흙먼지를 보면서 새 학기가 시작됐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생각해 보면 황사는 양반이었다. 온갖 중금속과 발암물질이 잔뜩 들어있는 초미세먼지에 비하면 흙먼지는 참 인간적이었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환경오염이 극심하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환경문제에 관한 심각성의 기준이 사라진 것 같다. 상황이 바닥 아래 지하실로 떨어지면서 다들 포기한 것처럼 보인다. 적극적인 행동은 문제인식에서 나온다. 문제 상황에 적응해 버리면 개선의지는 사라진다. 인간의 적응력은 안 좋은 쪽으로도 작용한다. 갈수록 살기 힘들어진다는 말은 경제보다 환경에 더 잘 어울리는 표현이다. 산업이 발전할수록 생활수준은 올라가지만 환경은 빠르게 망가진다.
환경파괴는 연쇄반응을 낳는다. 대기오염은 토양으로 전이되고 땅이 망가지면서 지하수를 비롯한 수원이 오염된다. 깨끗한 것들이 점점 더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인류가 멸망하는 내용의 디스토피아를 상상하는 것은 아니다. 어차피 인간은 늘 적응하면서 살아남는다. 그저 세상이 좀 더 더러워지는 것뿐이다. 어린 시절에는 상상조차 힘들었던 일들이 상식이 됐다. 처음에는 물을 사 먹는 것도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공기청정기가 나왔을 때 사람들은 대체 누가 사냐고 비웃었다. 지금은 필수품이 됐다. 상황이 변하면 평가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