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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민 May 30. 2024

나락도 樂이다

사건과 사고를 소비하는 시대

 언젠가부터 가십이 상식이 됐다. 이슈는 조회수를 부르고 사람들의 관심은 돈이 된다. 광고단가를 높일 수만 있다면 주류도 황색언론이 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유튜브는 추측성 보도와 자극적인 뉴스의 온상이 됐다. 1인 미디어는 논란을 찾아 헤매는 하이에나다. 한 번 물면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소재거리를 뱉을 때까지 놓치지 않는다. 24시간 방영되는 뉴스는 알고리즘을 타고 끊임없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다들 갈등을 소비하고 비극을 수집한다. 누군가가 사건 사고로 나락으로 떨어지는 소식을 손꼽아 기다린다. 유명인의 나락은 일반인들의 오락이 된다.


 삶이 힘들 때 사람들은 해학적인 즐거움을 추구한다. 웃음으로 슬픔과 걱정을 털어낸다. 그러나 힘들다 못해 생활이 각박해지고 앞날이 막막해지면 가학적으로 변한다. 내가 가질 수 없다면 남이 가진 것을 망가뜨리고 싶은 뒤틀린 욕망이 고개를 든다. 혐오는 콘텐츠가 되고 증오는 아이템이 된다. 국민의 알 권리를 내세우면서 사냥과 추적이 밤낮으로 계속된다. 탈탈 털다 보면 먼지가 피어오르기 마련이다. 살면서 들러붙은 티끌이든 덮어놓고 살았던 과오든 전부 흠결이 될 뿐이다. 바위나 모래나 물에 가라앉는 것은 똑같다.


 지갑이 얇아지면 마음의 여유도 사라진다. 날 선 감정은 공감을 망가뜨리고 날카로운 관점은 교감을 차단한다. 동감도 동조도 없다. 세상을 보는 시각은 협소해지고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차가워진다. 변화와 반전이 없는 삶에 지칠수록 자극적인 먹잇감을 찾게 된다. 사람들은 더 이상 성공스토리에 박수를 보내지 않는다. 부러움은 어느 순간부터 시기와 질투 그리고 증오로 대체됐다. 누군가의 치부를 헐뜯고 과오를 물어뜯는 행위는 대중적인 콘텐츠로 자리 잡았다. 다들 유명인의 몰락을 보며 웃고 즐거워한다.


 여론재판은 집단린치나 다름없다. 이슈를 곁들이고 가십으로 포장하면 잔혹한 마녀사냥의 본질은 흐려진다. 유튜브와 SNS를 거치면서 폭력은 재생산된다. 영상을 보고 뉴스를 클릭하는 모두가 가해자가 된다. 추락하는 인간이 나락으로 굴러 떨어질 때까지 헐뜯기와 물어뜯기는 멈추지 않는다. 사람들이 한 마디씩 덧붙이다 보면 말은 점점 불어나서 거대한 파도가 된다. 밀물처럼 밀려드는 비판과 비난을 버텨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소나기처럼 퍼붓는 인신공격은 인격을 속에서부터 파괴한다.


 미디어는 여론재판과 마녀사냥을 부추긴다. 콜로세움에 내몰린 당사자는 아무것도   없다. 해명하면 부정당하고 설명하면 조롱당한다. 단단하게 들러붙은 사회적인 낙인은 사라지지 않는다. 가학적인 즐거움에 눈을  대중에게 각인되고 나면 출구는 없다. 낙인은 과녁이다. 처참하게 몰락해서 바닥으로 추락할 때까지 화살비는 그치지 않는다. 눈과 귀가 모이는 곳에는  돈이 몰린다. 화제성은 이슈를 낳고 조회수는 소문을 만든다. 욕구를 충족하고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진흙탕 위를 뒹구는 난장판이 벌어진다.


 AI기술과 미디어가 만나면서 알고리즘은 대중의 관점과 취향을 통제하는 막강한 권력을 얻었다. 이목을 끄는 이슈가 터지면 24시간 쉬지 않고 콘텐츠가 쏟아져 나온다. 알고리즘은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자극적인 영상을 계속해서 추천한다. 어느새 유튜브는 인간의 추악한 욕망을 자극하는 촉매제가 됐다. 다들 정보에 관한 선택권을 잃어버렸다. 가십과 뉴스를 구별할 수 없는 세상이 됐다. 원하지 않아도 논란을 접하게 되고 피하려 해도 이슈는 귀에 들어온다.


 사실확인 되지 않은 내용이 가득한 온라인은 루머의 온상이다. 사람들의 입을 거치다 보면 루머는 팩트가 된다. 기사거리를 찾던 언론이 보도하면서 루머는 신빙성을 얻는다. 이유를 불문하고 조회수가 늘기 시작하면 비즈니스가 된다. 사건과 사고 그리고 불행이 돈이 되는 시대다. 언론의 정통성은 유명무실해졌다. 조회수를 늘리기 위해 품위나 윤리는 이미 내다 버렸다. 늦게 배운 도둑질이 무섭다. 보이는 대로 받아들이고 들리는 대로 믿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어나는 중이다. 분별력을 잃어버리기 쉬운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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