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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민 May 23. 2024

신념을 전시하는 사람들

진짜는 실천하지만 가짜는 연출한다

 한국에 살다 보면 신념을 전시하는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카카오톡 친구목록을 내리다 보면 정치나 종교적 신념을 드러낸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표현은 자유다. 그리고 개인의 신앙과 정치성향은 당연히 존중받아야 한다. 다만 신념을 전시하는 행위는 조금 미묘한 느낌을 준다. 본업이 정치나 종교 분야와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는 사람이라면 한 번은 의심해 보게 된다. 신념을 직접적으로 전시하는 사람들 치고 그 신념이 건실한 사람이 드물기 때문이다.


 확고한 사람은 흔하다. 그러나 기반이 단단한 사람들은 적은 편이었다. 일반화가 아니다. 인간은 누구나 경험을 근거로 판단을 한다. 누적된 경험치를 토대로 내린 결과는 약한 개일수록 자주 크게 짖는다는 사실이다. 종교적 신념을 SNS에 표현하는 것은 일종의 자기표현이다. 같은 종교를 가진 사람들에게 본인의 신앙을 한껏 드러낼 수 있다. 행복한 모습을 마음껏 보여주면서 멋진 이미지도 구축할 수 있다.


 모범적인 종교생활을 담은 사진이나 성경구절이 들어간 인스타그램 스토리는 감성까지 자극한다. 다만 모든 사람들이 보는 온라인 공간에 누구나 볼 수 있게 오픈하는 이유는 자랑하기 위해서다. 자유로운 자기표현의 궁극적인 목적은 자랑이다. 칭찬을 듣고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남들의 부러움을 사는 것. 종교적인 신념을 전시하는 사람들이 바라는 것은 바로 이런 관심이다. 신념을 전시하는 사람들의 지식이나 통찰은 대체로 깊지 않다.


 신앙을 광고하는 사람 중에 성경을 끝까지 통독한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멋있는 구절을 따와서 인스타 스토리에 올리지만 정작 제대로 읽을 생각은 없다. 그들에게 신념은 일종의 패션이다. 신실한 신앙이 만들어주는 이미지는 매력적이다. 같은 종교를 가진 사람이라면 여러모로 신뢰와 호감이 갈 것 같다. 믿음은 어차피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다. 보이는 것은 언제나 이미지다. 믿어야만 보이는 것이 신앙이지만 보여야만 믿을 수 있는 것이 사람이다.


 신앙을 광고하고 신념을 전시하는 이유는 믿음이 약하다는 반증이나 다름없다. 이미지로 신앙을 대신하지 않으면 표현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겉모습을 가꾸면서 SNS에 의식 있는 신앙생활을 하는 이미지를 만들면 관심과 선망을 받을 수 있다. 이성에게 어필하기도 좋고 비즈니스를 하는데도 유리하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쓰는 가면이나 교회에서 쓰는 가면이나 무게는 비슷할 것이다. 다만 가면을 여러 개 쓸수록 사람은 본모습을 잊어버리고 점점 이상해진다.


 연기에 몰입하다 보면 배우는 자신을 잃어버린다. 관심과 주목을 받고 싶은 마음은 역할극에 빠진 배우와 비슷하다. 인정받고 싶은 욕구는 식욕과 성욕 그리고 수면욕만큼 강렬한 것이다. 한 번 맛을 들이면 쉽게 빠져나올 수 없다. 의식 있는 사람이라는 역할극의 매력에 사로잡히면 약이 없다. 계속해서 신념을 전시하다 보면 내가 정말 대단한 믿음을 갖고 있다는 착각에 빠진다. 이런 행동은 배우의 몰입과 닮았다. 연기에 열중하는 것과 비슷하다. 자랑은 인정받고 싶은 욕구의 연장선에 있다.


 심하면 자만이 되겠지만 교만을 금기시하는 종교의 특성상 거기까지 가는 사람은 드물다. 적당한 선에서 멋진 메서드 연기를 펼치면서 온갖 방법으로 본인을 광고한다. 행복하다면 상관없다. 신념도 신앙도 표현도 모두 자유다. 굳이 지적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물론 나약한 내면을 엿보거나 꿰뚫어 본 사람들은 비웃을 것이다. 하지만 상관없다. 어차피 연기는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으로 극명하게 나뉘는 법이다. 안티는 멀리하고 팬들만 사로잡으면 된다.


 작고 약한 개는 크게 자주 짖는다. 반대로 맹수는 함부로 포효하지 않는다. 사냥감을 잡으려면 신속하게 접근해서 치명타를 가해야 한다. 느긋하게 멋진 모습으로 포효를 내지를 여유는 없다. 진짜는 전력을 다하고 가짜는 연기에 매진한다. 존경받는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가장 낮은 곳에서 보이지 않게 일한다. 봉사와 자선을 일상처럼 베풀면서 드러내지 않는다. 믿음의 형태는 사람의 얼굴만큼이나 다양할 것이다. 그러나 신앙의 본질은 신이 남긴 가르침을 실천하는 의지다.


 누군가는 SNS에 열심히 신념을 광고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타인의 삶을 구제하고 있다. 초라한 곳에 내려와서 약한 자들을 보듬어준 신의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은 과연 어느 쪽인가?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강한 사람일수록 정작 본인을 사랑하는 마음은 적은 편이다. 자존감이 낮다는 표현을 관용적으로 쓰고 있지만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인간은 스스로를 속일 수 없는 존재다. 외면하고 무시해도 본인은 자신의 민낯을 안다. 그 모습을 추악하다고 여기거나 부끄럽다고 생각하면 결국 자신을 미워하게 된다.

 

 감추고 싶은 마음이 커지면 가면을 쓰게 된다. 사람들이 좋아해 주고 관심을 줄 수밖에 없는 이미지를 갖기 위해 노력한다. 그럴수록 정작 마음 깊은 곳은 공허하다. 내면의 맨얼굴은 여전히 그대로 거울 속에 남아있다. 신념을 전시하고 신앙을 광고해도 그 모습은 사라지지 않는다. 인위적인 인기보다 진실된 인정이 먼저다. 자랑보다 본인을 먼저 받아들이는 태도가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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