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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민 Jun 08. 2024

기술이 진화할수록 인간은 퇴화한다

AI와 IT기술의 발전은 인간성을 붕괴시킨다

 손 안의 작은 기계만 있으면 어느 누구와도 소통할 수 있다. 인스타그램으로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을 달고 있으면 본 적 없는 상대방이 꼭 친구처럼 느껴진다. 필요한 물건은 쿠팡에 다 있다. 결제만 하면 문 앞까지 배송된다. 희로애락의 즐거움을 담은 콘텐츠는 무궁무진하다. 넷플릭스와 유튜브 그리고 배민만 있으면 생활에 큰 걱정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독서는 읽는 것에서 듣는 것으로 진화했다. 이어폰을 끼고 AI가 읽어주는 내용을 들으면 된다.


 문서를 작성할 때는 GPT 쓰면 된다. 이슈나 트렌드는 여러 커뮤니티 사이트를 돌다 보면   있다. 일일이 사람을 만날 필요가 없다. 현실에서 얼굴 보고 주고받는 이야기나 온라인에서 나누는 대화나  차이가 없다. 전화 대신 카톡으로 모든 의사소통을 대신할  있다. 전자증명을 이용하면서 관공서나 은행에  일도 거의 없다. 모바일청첩장을 받으면 토스나 카카오페이로 축의금을 보낸다. 주변 사람들의 생일과 기념일에 기프티콘을 선물한다. 생활이 정말 편해졌다.


 업무와 인간관계 그리고 사회생활까지 모두 한 손 안에서 가능한 세상이다. 하지만 정작 IT기술이 사람들을 긴밀하게 연결할수록 인간들은 점점 더 멀어진다. 외로움과 우울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 생활수준과 삶의 질은 분명 전보다 크게 올랐지만 행복지수는 바닥으로 처박혔다. 한국 사회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 세계인들이 겪고 있는 첨단기술 시대의 비극이다. 공허한 마음은 유튜브 강연이나 동기부여 쇼츠 몇 개를 본다고 해소되지 않는다. 터치 하나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세상이지만 정작 마음의 문제는 풀 수 없다.


 IT기술은 위대하지만 전능한 것은 아니다.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대가로 인간의 사고력과 행동력을 앗아갔다. 관계를 형성하면서 마음을 주고받는 행위가 크게 줄어들었다. 인간답게 살아가는 삶이 점점 더 어색해지는 것이다. AI기술을 앞세운 빅테크기업들은 자극적인 콘텐츠를 쏟아낸다. 더 큰 자극을 찾으려고 다들 애를 쓴다. 더 재미있는 드라마, 더 짜릿한 게임, 더 쾌락적인 프로그램을 원한다. 현실은 초라하고 보잘것없으니까 도파민을 분출시키는 것들에 마음을 빼앗길 수밖에 없다. 그렇게 사람들은 천천히 인간성을 상실한다.


 직접 사고하고 깊게 사유하는 습성을 잃어가는 중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제 기술이 막아서고 있다. 자극적인 콘텐츠와 AI기술이 주는 즐거움과 편리함에 길들여지면 인지기능이 떨어진다. 시각적인 신호에는 민감하지만 정서적인 반응은 느려진다. 가장 먼저 나타나는 것은 언어구사력이다. 10대의 문해력 문제를 지적하지만 경제활동인구 대부분의 의사소통 능력이 저하된 상태다.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는데 다들 애를 먹는다. 글을 쓸 일도 없고 책을 읽는 사람은 갈수록 줄어든다.


 본인의 감정과 기분의 변화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말로 제대로 표현할 수 없다면 감정을 이해하고 생각을 분석하기 어렵다.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 받아들일 수도 없다. 당연히 타인의 생각이나 마음을 헤아리는 공감능력 역시 떨어지게 된다. 원칙적으로 인간에게는 멀티태스킹 능력이 없다. 하나에 과도하게 집중하면 나머지 능력은 점점 퇴화된다.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해낼 수 있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기계와 AI다.


 콘텐츠중독이나 스마트폰 중독은 기술이 만든 비극이다. 편리함에 익숙해지면 이전으로 돌아갈 수없다. 인공지능을 활용한 생활개선속도는 놀라운 수준이다. 분기마다 출시되는 새로운 AI서비스들은 편리함에 편리함을 더한다. 번거로운 일이 줄어들면서 확보한 시간은 다시 콘텐츠와 AI서비스를 즐기는데 소모한다. 지식과 교양을 함양하는 시간은 거의 없다. 배움에 대한 욕구도 기술이 대신한다. 나무위키는 모든 지식이 모여 있는 보물창고로 대접받는다.


 사람들은 무지에 당당하다. 모르는 것이 아니라 검색해보지 못했을 뿐이라고 여긴다. 유튜브나 인스타에서 본 요약본을 보고 공부했다고 여긴다. 강사나 유튜버들의 강의를 듣고 나서 전문가가 되었다는 착각에 빠진다. 댓글로 서로에게 공부하라는 말을 남발하지만 정작 깊이 있는 대담은 찾아볼 수 없다. AI가 똑똑해질수록 인류는 더 멍청해질 것이다. 자극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주체적으로 생각하는 능력을 천천히 상실한다. 사고력이 저하되면 제대로 된 견해를 내놓을 수 없다.


 그저 이슈에 반응하면서 가십과 갈등만 만들어낼 뿐이다. 생각하는 동물이 생각을 못하게 되면 한낱 동물에 불과하다. 먹이를 보면 흥분하고 적을 보면 달려들고 기분 좋게 만드는 손길에 반응한다. 온라인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겉으로 보면 멀쩡한 사람들이다. 누군가의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누군가의 자녀들이다. 기술이 지배하는 세상은 사회가 아니라 무리로 불러야 할지도 모르겠다. AI에 길들여진 인간이라는 이름의 포유류. 만물의 영장이라는 이름은 이미 녹이 슬어버렸다. 많은 사람들이 인간성을 상실해 버렸다.


 기술의 발전은 중독을 낳았고 심리사회적인 문제가 극심해졌다. 환부를 도려내려면 이제 몸통을 잘라내야 할 판이다. 몸통을 포기할 수 없으므로 사회는 극심한 통증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기술에 중독된 사람들은 점점 인간성을 잃고 감정의 통제력을 상실할 것이다. 온라인 세상에서 고립되는 사람도 늘어나겠지만 뒤틀린 자의식을 숨기고 사는  이들 역시 늘어날 것이다. 갈등을 해소하고 화합을 지향하며 사회를 발전시킬 수 있었던 시대는 지났다.


 더 이상 사람들은 사회적인 비극이나 큰 사고에 눈물 흘리지 않는다. 애도와 관용보다 조롱과 악의가 훨씬 더 많다. 공감 대신에 증오의 이빨을 서로에게 드러낸다. 온라인에서 적개심을 드러내는 사람들 대부분은 평범한 얼굴을 가면처럼 쓰고 산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망가지는 인간은 더 늘어난다. 사람들의 마음이 단절되는 속도 역시 더 빨라질 것이다. 결국 기술은 진보하지만 인간은 퇴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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