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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민 Jun 28. 2024

속이는 자 그리고 속는 자

인문학과 성공학으로 사람을 속이는 법

 너도 나도 인문학을 내세워서 돈을 버는 요란한 시대는 끝나지 않는다. 유튜브는 성공학을 파는 자칭 전문가들로 가득하다. 사기와 세뇌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지갑을 노리는 협잡꾼들이 리더라는 이름을 달고 설치는 세상이다. 학문에 불안과 갈등을 끼워파는 인간들이 득세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열광한다. 지식을 돈벌이로 삼는 자들은 유행에 민감하다. 시즌이 끝나면 새로운 소스를 찾아 나선다. 예술을 강의하던 어느 강사는 잠시 공백기를 갖더니 AI전문가라는 명함을 파서 돌아왔다. 전문가 행세를 하려면 대중이 관심은 있지만 이해하기 어려운 분야가 제격이다.


 대중의 이목을 끄는 사람들은 깨달음을 세일즈포인트로 삼는다. 작가나 강사 혹은 교수로 불리는 이들은 유튜브를 개설하고 강연을 다니면서 책을 판다. 깨달음을 얻으면 삶이 달라진다고 단언하면서 공부를 종용한다. 시대가 변해도 늘 패턴은 똑같다. 몰라서 고통받고 무식해서 힘들다는 논리를 내세우면서 돈을 내고 강연을 듣고 책을 사라고 강요한다. 사짜와 가짜는 사람들을 속여서 돈을 번다. 교차검증보다 확증편향이 쉽고 흑백논리만큼 직관적이고 든든한 것은 없다. 지금까지 겪은 삶의 모든 문제는 깨달음을 접하지 못했던 무지에서 비롯된 오류로 치부하면 된다.


 깨달음을 얻었다고 착각하면서 시간과 돈을 써가며 공부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현재는 과거의 산물이다. 남다른 노력이나 특별한 열정을 발휘하지 않았으므로 현실은 평범할 수밖에 없다. 평범하다고 나쁜 것은 아니다. 그릇 크기를 인정하고 나비가 되는 환상을 버리고 싱싱한 솔잎을 먹고살면 된다. 하지만 꿈만 크고 능력은 없는 사람들은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자신이 모든 문제의 원인이라는 진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깨달음에 집착하면서 현실을 회피하고 문제의 본질을 철저하게 외면한다. 그 사이 사기를 포장해서 팔아먹는 협잡꾼은 큰 성공을 누린다. 독자는 신도가 되고 팬덤은 종교가 된다.


 인문학팔이는 일반명사가 됐다. 대중이 인문학에 대해 느끼는 피로감은 염증에 가깝다. 책과 강연을 팔아먹는 장사치들은 단물이 다 빠진 껌을 뱉고 새 먹잇감을 물색하는 중이다. 인문학의 대체제로 문화인류학이 주목받을 것 같다. 이목을 끄는 자극적인 키워드를 추출해서 인류학을 제2의 인문학으로 세일즈 할 것이다. 늘 그랬듯이 깊이 있는 접근이나 색다른 관점을 제시할 가능성은 없다. 그럴듯한 주제를 이슈와 적당히 버무려서 호기심과 관심을 끌면 된다. 사람들의 불안과 허영심 그리고 탐욕을 자극하면서 조용히 지갑을 열게 만든다.


 불안한 사람은 늘 정답을 알고 싶어 한다. 불길한 미래를 두려워하면서 점쟁이를 찾고 불투명한 전망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말해줄 현자를 기다린다. 그래서 현학적인 표현을 늘어놓으면서 진리를 운운하는 혀놀림에 쉽게 넘어간다. 지적허영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잘 속는다. 머리 아프게 공부하기는 싫고 학문 속까지 깊이 파고드는 노력을 할 생각은 없다. 자칭 전문가들이 유튜브를 통해 숟가락으로 떠먹여 주는 내용을 지식이라고 확신한다. 영상 몇 개를 보고 지혜를 얻었다고 생각하게 되면 확증편향이 심해지고 다양성을 보는 시야마저 좁아진다.


 가장 큰 피해를 입는 유형은 탐욕이 강한 사람들이다. 제일 먼저 달려들고 마지막까지 빠져나오지 못한다. 욕심은 판단력을 상실하게 만들고 분별력을 망가뜨린다. 불안과 허세는 혼자만 당하고 끝나지만 탐욕은 주변 사람들과 가족마저 피해자로 만든다. 흔한 삶이 단번에 나아지길 바라는 욕심은 파국을 부른다. 그러나 현실을 받아들일 만한 용기는 없다. 연극이 끝나고 나서도 무대를 떠나지 못하고 불 꺼진 극장 앞에서 기약 없는 앙코르를 기다린다. 세상을 탓하면서 끝까지 믿다 보면 주변 사람들마저 다 잃는다. 남는 것은 절망과 고독뿐이다.


 속이는 사람은 늘 속는 사람들을 찾아다닌다. 당하는 사람은 죄가 없다. 당연히 속이는 쪽이 나쁜 놈이다. 그러나 속는 자는 사기를 계기로 삶을 돌아보고 면밀히 점검해야 한다. 탐욕과 허영심 그리고 불안을 버리는 방법을 남에게 기대지 말고 스스로 찾아야 한다. 삶은 의존을 버리고 자립을 선택해야 비로소 안정을 찾는다. 이 세상에는 정답도 없고 진리도 없다. 정답을 거론하면서 본인을 신격화한다면 사기꾼이다. 해답을 제시하면서 진리를 말하는 자는 협잡꾼이다. 어차피 인간은 한 번 살고 죽는다. 누군가 평생을 바쳐 얻은 해답도 타인의 삶에 적용하려는 순간 오답이 된다. 모든 인간의 삶은 특수성과 남다른 정체성을 가진 독립시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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