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태민 Jul 17. 2024

출구 없는 현실과 배출구 없는 인생

바닥에서 나락으로 추락하는 한국인의 삶

 사회분위기는 갈수록 더 어둡고 처참하게 변하는 중이다. 피땀 흘려 일한 노인들은 빈곤에 허덕이고 열심히 산 사람들은 고독에 시달린다. 팔지도 못하는 집 한 채를 끌어안고 늙어가는 삶이 한국중산층의 현실이다. 경쟁을 뚫고 오로지 앞만 보고 달려온 대가는 예상과 달랐다. 배신당한 부모 세대를 보면서 자식 세대는 희망을 버렸다. 반전 없는 삶에 기대를 거는 대신 쾌락과 한탕에 인생을 거는 이들이 늘어났다.


  부모세대는 안정된 삶을 동경하며 치열하게 살았다. 그러나 노년의 삶은 안정과는 거리가 멀었다. 젊은 세대는 더 이상 속지 않는다. 현실을 체감하고 격차를 피부로 느끼게 되면서 결국 계급을 인정하게 된다. 노력이 무의미하므로 시작조차 할 필요가 없다는 의식은 상식이 됐다. 반전이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면 인간은 쾌락에 지배당하거나 무기력에 잠식당한다. 도박이나 다름없는 한탕주의에 빠지거나 문을 걸어 잠그고 도태되는 이들이 넘쳐날 수밖에 없다.


 사이버 도박은 청소년들 사이에서 독버섯처럼 퍼져나갔다. 단돈 3만 원이면 마약을 살 수 있는 나라가 되면서 한국은 마약청정국의 지위를 상실했다. 전세사기와 코인다단계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파괴했다. 소수의 사례가 아니다. 누적된 통계가 증명하는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조명하는 탐사보도 속 이야기는 누군가의 처절한 경험담이다. 갑갑한 현실은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계층이동을 꿈꾸며 탈출구를 찾는 이들은 시간이 지나면 대부분 포기한다. 운이 실력이듯 때도 실력이다. 기회를 얻을 수 있는 문턱은 높아졌고 원한다고 누구나 올라갈 수도 없다.


 현실에 절망한 이들의 위로받고 싶은 마음은 돈이 된다. 성공학을 파는 유튜버와 자칭전문가들은 서민층에게 희망 가장한 욕망을 팔아서 주머니를 채운다. 공허한 내면을 채울 수 없는 이들은 구원을 찾아 헤맨다. 그러다 다단계의 늪에 빠지거나 절망적인 우울감에서 벗어나려고 약물에 손을 댄다. 3만 원으로 현실을 바꿀 수는 없지만 마약 1회 분은 살 수 있다. 뒤늦게 망가진 삶을 수습하기 위해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늦었다. 대한민국은 남보다 늦으면 남들처럼 살 수 없는 곳이다.


 한국은 실수와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사회다. 잘못된 행동으로 인해 발생한 격차는 차별의 근거로 작용한다. 반성을 하고 개선하려고 노력하더라도 훈수를 가장한 비난을 피할 수는 없다. 한 마디씩 날아드는 비수를 맞다 보면 자존감과 의지는 바닥으로 곤두박질친다. 본인을 평가하는 기준은 후하지만 타인을 향한 잣대는 여전히 엄격하다. 세상이 변해도 문화는 변하지 않았다. 냉혹한 평가 앞에서 의연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재도전을 냉정하게 보는 사회적인 편견은 재기하려는 이들의 의지를 꺾어버린다. 포기하지 말자고 가슴에 새겼던 다짐은 까맣게 말라버린다.


 패배자라는 낙인은 의지만으로 극복할 수 없다. 내가 벗어나더라도 남들이 맘대로 다시 씌워버린다. 사회는 탈락자에게 낙인을 찍고 따로 격리시킨다. 한 번 밀려난 이들에게 패자부활전은 없다. 미끄러지면 다시는 올라올 수 없다는 현실은 지속적인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실패에 대한 공포는 강박을 낳는다. 남들처럼 살기 위해 노력하지만 남들만큼 행복할 수 없는 근본적인 원인은 강박이다. 강박은 사람의 마음에 병을 만든다. 우울과 불안에서 자유로운 한국인이 과연 몇이나 될까? 낙인과 강박은 결국 재발로 이어진다.


 재기는 어렵지만 재발은 쉽다. 삶에 대한 기대를 거는 것보다 도박장의 확률에 인생을 거는 쪽이 더 현실적이다. 양극화는 지속적으로 고점을 찍으면서 우상향 하고 있다. 계층이동이 불가능에 가까운 서민들은 미래를 꿈꿀 만한 여유가 없다. 꿈을 잃은 사회는 성장동력을 상실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중독과 도박은 흔한 영화 소재가 됐고 사기와 사이비는 일상이 됐다. 격차를 해소하고 무너진 사다리를 수리하자는 의견은 늘 정치적인 논쟁으로 와해된다. 깊은 갈등의 골에서 흘러나온 증오는 강이 되어 사람들 사이를 갈라놨다.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알 수 없다면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판단할 수도 없다. 사회문제가 심각하다는 공감대가 있지만 현실은 변하지 않는다. 해결책을 제시할만한 사람이 없다. 알아서 살아남아야만 하는 생존난이도는 양극화를 만나면서 급격하게 상승했다. 탈락자와 패배자 그리고 중도포기자가 속출하고 격차는 계속해서 벌어지는 중이다. 양극화로 인해 생존경쟁은 승산 없는 싸움이 됐다. 각자도생을 외치는 이들은 전부 각개격파 당할 뿐이다. 오합지졸이 안전하게 생존할 수 있는 전쟁터는 없다.


 살아가는 일이 힘들어질수록 정신의 면역력은 급속하게 떨어진다. 병든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사회적인 병폐가 발생한다. 중독과 쾌락에 눈이 멀면 일상이 무너지고 사기와 사이비에 노출되면 인생은 망가진다. 현실에 대한 기대와 꿈을 잃어버린 이들은 무력감에 사로잡힌다. 우울과 불안을 떨쳐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평범한 이들마저 곧 사각지대로 밀려날 것이다. 바닥이라고 생각했던 곳에서 한 번 더 떨어지면 나락이다. 추락은 왕복이 아니라 편도다. 대한민국은 미끄러지면 재기할 수 없는 황량하고 척박한 땅이 됐다.

이전 20화 착한 사람들이 손해 보는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