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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민 Jul 05. 2024

착한 사람들이 손해 보는 이유

동정심이 아니라 멍청함이 화를 부른다

 선량한 인간은 호의를 잘 베푸는 만큼 거절에도 능하다. 본인의 역량으로 감당할 수 없는 일은 빠르게 판단하고 고사한다. 온화한 화법으로 납득할 수 있게 설명한다. 타인의 고민이나 인생의 문제를 함부로 짊어지지 않는다. 정말 착한 사람들이 손해 보는 일은 있어도 망할 일은 없다. 남에게 좋은 사람이 되려면 우선 본인에게 좋은 행동을 해야 한다. 나의 생존과 생활의 안정을 지킬 수 있어야 남에게 베풀 아량과 여유도 생긴다. 착한 사람들은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선하다는 것은 지혜롭다는 말과 같은 말이다.


 더 내어줄 수도 있고 때로는 손해 보기도 하지만 피해를 감수하면서 까지 떠안는 일은 없다. 이것이 성량하고 현명한 인간의 삶이다. 그러나 스스로를 착한 사람이라고 착각하는 인간은 다르다. 사정이 딱해서 누군가를 도와준다고 말하는 사람일수록 본인의 상황이 변변치 못하다. 혼자라면 위험을 감수해도 뭐라 할 말이 없다. 그러나 부양할 가족을 두고 남을 위해 나서는 행동은 위험을 초래한다. 상황이 나빠지면 죄 없는 가족들만 피해를 본다. 사람이 좋아서 착해서 당하는 것이 아니다. 떨어지는 판단력과 스스로를 좋은 인간이라고 착각하는 오만이 문제다.

 그들은 착한 사람이 아니라 그저 심약하고 어리석은 인간일 가능성이 높다. 무리해서 남을 도와주느라 손해를 봤다면 자기 객관화가 부족한 것이다. 이성적인 판단이 제대로 작동하는 사람이라면 들어줄 수 있는 부탁인지 아닌지를 가늠한다. 감정에 호소하는 상대방을 외면하지 못하고 이 판단을 무시하는 순간 고생길이 열린다. 대체로 딱한 사정을 무시할 수 없다는 사람들은 상대방과 본인을 동일시한다. 그러나 남은 남이다.


 차갑고 비정하게 세상을 보라는 말이 아니다. 감정에 휘둘리게 되면 그릇된 판단을 할 가능성이 높다. 업계경력이 전무한 지원자를 채용한 한 관리자의 이야기를 들었다. 방황 끝에 뒤늦게 진로를 정했다는 지원자의 사정을 듣고 관리자는 본인의 힘들었던 과거를 떠올렸다. 기회를 주고 싶다는 이유로 팀원들을 설득해서 결국 합격시켰다. 그러나 선택은 악수로 돌아왔다. 신입으로 들어와서 심각한 사고를 쳤고 나중에 무책임하게 퇴사해 버렸다. 채용담당자이자 직속상관인 그는 수습하느라 온갖 고생을 해야만 했다.


 남을 본인과 동일시해서 선의를 베푸는 행동은 남의 인생을 떠안는 것에 불과하다. 동정은 어디까지나 감정일 뿐 행동으로 옮겨서는 안 된다. 우리는 타인에게 호의를 베풀 수는 있지만 동아줄을 내려줄 수는 없다. 구원자를 자처하는 인간은 사기꾼 아니면 멍청이다. 전자가 좋은 사람이라는 가면을 쓰고 있다면 후자는 착한 사람이라는 착각에 빠져 산다. 현실은 동화가 아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착한 것도 아니고 부자들 중에 악인만 있는 것도 아니다. 취약계층이 저지르는 강력범죄는 수두룩하다.


 금융범죄를 저지르는 부유층도 상당히 많다. 부자나 빈민이나 결국 똑같은 인간이다. 죄는 인간이 저지른다. 유형이 다를 뿐이다. 동화 속에서나 볼 수 있는 얄팍한 흑백논리로 세상을 보면 문제가 생긴다. 머리로 검증하지 않고 가슴으로만 판단하면 누구나 쉽게 악수를 둔다. 딱한 사람이 착한 사람이라는 환상에 빠져있으면 답이 없다. 동화책을 읽던 나이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무리해서 선행을 베풀다 감당하기 어려워지면 결국 주변에 손을 벌려야 한다. 남의 문제를 떠안으면 결국 내 인생의 문제가 늘어난다.


 가까운 지인이나 가족에게 도움을 요청하면 여럿이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 결국 주제를 모르고 저지르는 선행은 남의 고생을 사서 나와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일이다. 착한 사람 이미지를 버릴 수 없어서 고생하면서도 포기하지 못한다. 도와줄 사람이 나밖에 없다는 말이나 나 말고 부탁할 사람이 없다는 말은 대게 거짓말이다. 잘못되더라도 피해볼 일 없고 문제가 생겨서 등 돌려도 큰 문제없는 사람에게 부탁하는 것이다. 소중한 사람이라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살기 위해서 상대에게 위험을 떠넘기는 것이다. 진짜 소중한 사람에게 피해 갈 만한 부탁을 하는 인간은 없다.


 친구집이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큰 빚을 지게 된 적이 있다. 그러나 그는 주변 친구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 개인회생과 파산 같은 법적절차를 진행하고 채무를 변제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나중에 개인사업을 하면서 위기도 여러 번 겪었지만 돈 빌려달라는 말 한 번 꺼낸 적 없었다. 열심히 산 친구는 현재 본인 명의의 건물을 갖고 있다. 나는 친구에게 주변에 손을 내밀지 않은 이유를 물어봤다. 그는 집안의 문제는 가족이 감당해야 하는 일이고 자기 문제 역시 본인이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남에게 부탁해서 위기를 해결한다면 큰 문제가 생겼을 때 스스로 해결하는 능력을 가질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진짜 소중한 사람들에게 힘든 일을 떠넘길 수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사람을 도와줄 때는 사람의 인성과 본성을 모두 확인해야 한다. 어려운 사람이니까 착한 내가 도와야 된다는 생각은 어리석음을 드러내는 것에 불과하다. 제대로 된 사람은 감정이나 인정에 호소하지 않는다. 자기가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을 모두 처리하고 일손이 부족한 부분에 한해서만 도움을 요청한다. 그리고 손길을 내밀 때까지 신중하게 고려한다. 가족과 본인의 문제를 자기 손으로 해결한 친구는 슈퍼히어로가 아니었다. 다시 일어서려는 의지를 가진 평범한 사람이었다.


 의지가 없는 사람은 도울 수 없다. 무턱태고 내미는 손길보다 사람을 판단하는 안목이 먼저다. 사람을 제대로 보는 눈이 없다면 선의나 호의를 베풀만한 수준과 역량 모두 없는 것이다. 선은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행하고 악은 아무리 작더라도 저지르지 말라는 유비의 유훈을 생각해 보자. 선행의 크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무리해서 남을 도우라는 말이 아니다. 할 수 있는 만큼만 선을 베풀면 된다는 의미다. 내 상황과 사정에 맞는 선을 지키는 것이 핵심이다. 선의를 베푸는 방식을 보면 사람의 수준이 보인다. 무리해서 착한 일은 하는 것은 제 살을 깎아 먹는 일에 불과하다. 착한 사람은 손해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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