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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민 May 17. 2024

긍정의 감옥에서 벗어나라

자기 계발서 속에서 진리를 찾지 마라

 냉소적이고 비관적인 것인 죄악이라는 인식이 상식처럼 통하고 있다. 긍정의 힘을 믿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힘든 순간에도 긍정적으로 세상을 보는 것은 중요하다. 절망을 이기는 것은 언제나 절망보다 조금 더 강한 소망의 힘이다. 염세적인 시각이 사람을 마음을 병들게 만드는 것도 사실이다. 비관적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은 없던 병도 생긴다. 좋은 쪽으로 생각하고 밝은 면을 보는 태도가 중요한 것은 맞다. 그러나 인간은 어차피 양면을 모두 갖고 있다.


 우리는 월요일을 좋아한다고 노래 부르는 스펀지밥이 아니다. 정작 그런 스펀지밥조차 극 중에서 본인의 처지를 비관하고 여러 번 절망한다. 완벽하게 긍정적인 인간은 없다. 자기 계발분야에서 유명한 강사들은 하나같이 긍정을 노래한다. 본인들의 어두운 과거는 지나가고 지금은 밝은 희망만 가득하다고 열심히 광고한다. 노력하면 자기처럼 될 수 있다고 가르친다. 성공의 비법을 담고 있는 책과 강연을 열정적으로 홍보한다. 행복이 대입수능 같은 문제풀이라면 강의를 듣는 것은 효과적일 것이다.


 그러나 인생은 실전이고 예행연습은 오직 본인 몫이다. 남이 대신 살아줄 수도 없고 타인의 조언을 내 삶에 100% 적용할 수도 없다. 무조건 통하는 성공의 법칙은 없다. 성공한 사람들의 사례는 독립시행에 불과하다. 동기부여 측면에서 위로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성공한 그들의 삶과 내 현실은 커다란 격차가 있다. 서로 사는 세상이 다르다. 그리고 앞으로 살아가게 될 과정도 다르다. 보편타당한 법칙이 인생에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 온다. 그때가 되면 무한한 긍정론이 사기라는 것을 알게 된다.


 매사에 늘 긍정적인 사람은 밝은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 정말 많은 노력을 한다. 아주 낙천적인 성격이 아닌 이상 인간이 항상 긍정적일 수는 없다. 좋은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엄청나게 애쓰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노력이 잘 맞는 사람이 있다. 반면에 잘 안 되는 사람도 있다. 한 번 자리 잡은 성격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대인관계에 큰 문제가 없고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억지로 바꿀 필요는 없다.


 긍정론을 인생의 진리라고 설파하는 자기 계발서처럼 살 이유는 없다. 어차피 인간은 여러 가지 감정을 갖고 산다. 긍정과 부정은 모든 인간의 마음속에 다 들어있다. 날씨와 계절이 바뀌는 것처럼 위치는 자주 바뀌기 마련이다. 항상 부정적인 인간도 없고 언제나 긍정적인 인간도 없다. 인간은 자주 변한다. 사람들은 긍정의 힘을 마치 마법의 주문처럼 여기고 있다. 다양성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정작 자기 계발서들은 정답과 오답을 흑백으로 구별한다.


 편향된 사고에 매몰된 이들은 긍정의 감옥을 벗어날 수 없다. 태도는 개인의 기질이나 성격의 차이에서 발생한다. 다양성의 관점으로 볼 필요가 있다. 부정적인 태도나 염세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을 반드시 변화시킬 필요는 없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비판적인 사고를 비정상으로 취급한다. 시니컬한 태도를 질병으로 여기고 모든 문제의 원인을 성격으로 연관 짓는다. 그다음에는 긍정론을 들이대면서 성격을 바꾸고 인식을 전환할 것을 요구한다. 추천이나 권면을 가장하고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강요일 뿐이다.


  남의 인생을 내가 소유한 바비인형 정도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내 뜻대로 통제하고 간섭하고 싶을 때 하나같이 긍정론을 내세운다. 그들에게 비판적인 삶의 사고방식은 거슬리는 눈엣가시나 마찬가지다. 차이를 인정하지 못하는 인간은 차별을 만들어낸다. 긍정론을 거부하는 이들을 하대하거나 홀대하면서 부적응자라는 낙인을 찍고 벽을 친다. 직접적인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라면 타인의 삶에 왈가왈부할 권리는 없다.


 조금 냉소적인 성격이라도 사회생활하고 대인관계를 유지하는데 문제는 없다. 누구나 낮과 밤처럼 인격의 양면이 존재한다. 겉으로 드러나는 표현방식 이면에 보이지 않는 인간적인 면 역시 존재한다. 긍정론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이야말로 긍정적인 인생과 동떨어진 삶을 살고 있다. 삶의 일면만 보고 흑백논리를 들이대는 태도는 인간에 대한 신뢰가 없다는 말이다. 불안은 외부가 아니라 내면에서 온다. 긍정의 힘을 철석같이 믿는 신도들은 정작 내면이 불안한 상태다. 그들 눈에 보이는 부정적인 인간들은 자기 내면의 풍경을 그대로 담고 있다.


 타인의 삶을 보면서 본인의 나약한 단점을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정서적으로 건강한 인간은 남에게 간섭하지 않는다. 한 가지면만 보고 함부로 판단하거나 평가하지도 않는다. 전후 상황을 충분히 살펴보고 사람을 제대로 겪어보기 전에 쉽게 입을 열지도 않는다. 마음이 가난한 인간일수록 긍정의 노예가 된다. 심리적인 내구도가 취약할수록 긍정론의 낭설에 휘둘릴 가능성이 높다. 자기 계발서는 결과론적인 이야기에 불과하다.


 모든 인생은 연관성 없는 독립시행이다. 다른 사람의 인생에서 발생한 독립시행을 따르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큰돈을 따려고 노름꾼이 의지하는 미신에 불과하다. 자기 계발서를 경전처럼 여기는 사람들은 삶에 불만이 많다. 자신이 걸어온 여정을 불완전하다고 여긴다. 지금까지 선택을 잘못했다는 생각에 빠져있거나 답을 찾지 못해서 힘들게 산다고 믿는다. 모두 하나 같이 약점을 드러내고 있다. 그 포인트를 저자는 귀신같이 알아차린다. 그들은 그저 듣고 싶은 말을 하는 것뿐이다. 소중한 인생의 정수를 알았다고 기뻐하지만 특별한 내용은 없다.


 대단한 진리나 역전 만루홈런의 비법 같은 것도 없다. 그들은 인세와 강연수익으로 풍요로운 인생을 산다. 늘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 원동력은 깨달음이 아니라 그들의 통장 잔고에서 나온다. 인생의 선택권과 결정권은 온전히 본인의 몫이다. 걸어온 길을 돌아보면 배울 것이 있다. 놓치고 지나친 것들을 살펴보면 깨달음도 발견할 수 있다. 답은 늘 문제 속에 있다. 본인의 삶을 진지하게 통찰하는 노력을 게을리하는 사람일수록 자기 계발서의 노예가 되기 쉽다. 스스로 깨우치지 못하는 이들은 끝까지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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