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온도차가 극심한 정서불안형 인간들
강아지와 고양이를 다 키워본 입장에서 둘의 가장 큰 차이점을 고른다면 역시 감정표현이다. 강아지는 감정표현이 뚜렷한 편이다. 얼굴만 봐도 좋고 싫은 감정을 확실하게 구별할 수 있다. 고양이도 호오를 분명하게 드러낸다. 그러나 고양이에게는 제3의 감정이 있다. 자기도 정체를 모르는 알 수 없는 감정이다. 인간의 입장에서는 해석하기 힘든 행동이라 이유를 알 수 없다.
애교를 부리다가 갑자기 홱 토라지거나 무심하게 있다가 기분이 좋아지기도 한다. 이런 감정의 온도차는 고양이만의 습성이다. 고의도 아니고 악의도 없다. 그저 동물의 본성이다. 고양이는 귀엽기 때문에 얼마든지 납득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본인의 감정을 제대로 모르는 인간은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준다. 기분이 안 좋아지면 남 탓을 하거나 화풀이할 대상을 찾는다. 가까운 가족 혹은 연인 아니면 친구가 그때마다 희생양이 된다.
문제의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을 생각은 없다. 습관처럼 주변 사람들에게 투정을 부리고 짜증을 낸다. 심하면 밑도 끝도 없이 공격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런 습성은 나이 들어도 달라지지 않으므로 사회생활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기분에 따라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가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동료는 신뢰할 수 없다. 피상적인 매력의 가면을 쓰고 있지만 그 아래 숨은 얼굴은 엉망이다.
외면적으로 드러나는 자신감이나 분위기는 포장지에 지나지 않는다. 내면은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은 시한폭탄이나 마찬가지다. 이런 사람들은 충동적인 성향이 상당히 강하다. 인내심도 없고 참을성도 존재하지 않는다. 감정이 급변하다 폭발하기 시작하면 스스로 통제할 수 없다. 사람들이 말려도 아무 소용없다. 강한 폭풍이 휩쓸고 지나가는 것처럼 주변은 엉망이 된다. 극심한 온도차는 함께 있는 사람을 지치게 만드는 원인이다.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알 수 없는 리듬은 불협화음을 만든다. 늘 긴장한 상태로 있다 보면 몸과 마음은 지칠 수밖에 없다. 결국 극심한 피로감은 무력감으로 발전하고 마지막에는 심리적 탈진 상태에 빠지게 된다. 상대가 뭐라고 하든 미안하다고 하면서 전부 감내하는 피해자로 전락하게 된다. 내면의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고 수시로 급변하는 사람을 곁에 두면 인생이 괴로워질 수밖에 없다.
인간관계에서 물음표가 자주 뜨는 사람은 피하는 것이 좋다. 확실한 느낌표가 뜨는 사람이 안전하다. 가까운 사이라도 모든 것을 다 알 수는 없다. 다만 습성과 특성을 명확하게 드러내는 사람은 신뢰할 수 있는 편이다. 느낌표가 뜨는 사람들은 기복이 적다. 행동이 일정하고 감정표현도 분명하다. 그러므로 예측을 벗어나거나 이해하기 힘든 짓을 거의 하지 않는다. 가끔 알 수 없는 행동을 해도 설명을 들으면 바로 납득할 수 있다.
반대로 행동에 물음표가 많이 뜨는 사람들은 예측할 수가 없다. 기복이 심한 데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다. 충동적인 면이 강해서 이해할 수 없는 일을 쉽게 저지른다. 합당한 설명을 요구하면 변명을 늘어놓거나 책임을 전가한다. 본인이 어떤 감정을 갖고 행동하는지 모른다. 그래서 늘 무책임하고 항상 심리적으로 불안한 상태에 놓여있다. 감정기복이 심하고 기분의 온도차가 큰 이유는 정서적으로 불안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본인은 사실을 절대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주로 자신의 성장환경이나 가정환경을 이야기하면서 과거를 만악의 근원으로 취급한다. 실제로 불안한 성장배경이 인격형성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원인을 거기서 찾는 사고방식은 피해의식이나 다름없다. 이들은 원인을 찾아서 해결하는데 관심이 없다. 뒤죽박죽으로 엉킨 불안한 감정이 지배하는 내면을 똑바로 들여다볼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겁이 많아서 스스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몸은 어른이지만 사고방식은 어린 아이나 마찬가지다. 가족들은 이런 사람을 의지하고 신뢰할 수 없다. 진심을 나눌 수도 없으므로 관계는 소원해진다. 대인관계가 전반적으로 변질될 수밖에 없다. 인간은 서로에게 안정감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 나를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정말 큰 불행이다. 내면이 불안정한 인간은 불행의 씨앗이다. 정서적으로 불안한 사람과 엮이게 되면 많은 에너지를 소모할 수밖에 없다. 이들은 언제나 스스로를 피해자라고 생각한다.
매력적인 모습으로 호감을 쌓고 심리적인 거리가 가까워지면 그때 본색을 드러낸다. 본인의 과거사를 이야기하면서 동정심을 유발하고 공감을 구걸한다. 상대방의 진심 어린 배려와 호의를 착취하면서 정서적인 우월감을 유지한다. 본인이 자초한 문제를 책임지고 해결할 생각은 없다. 상대방에게 떠넘겨버리고 비난하거나 신세한탄만 일삼는다. 책임감과 자기 연민은 늘 반비례한다. 책임감이 없는 인간일수록 자기 연민이 강하다. 비슷한 유형에 속하는 자기 합리화 역시 강할 수밖에 없다.
관계는 책임을 기반으로 유지되는 정서적인 계약이다. 인간관계에 무책임한 인간은 인생에 대한 책임감도 전반적으로 낮을 수밖에 없다. 본인의 감정과 행동에 책임을 지는 사람이 진짜 어른이다. 핑계를 대면서 자기 연민에 빠져있는 인간은 건강한 성인이라고 할 수 없다.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타인의 마음에 공감할 수 없다. 낮은 공감능력은 자기중심적으로 이기적인 태도로 이어진다. 사람은 누구나 흠이 있다. 부족한 부분도 있고 가까이 지내다 보면 실망스러운 점도 발견하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점을 인정하고 반성한다. 잘못을 반복하지 않으려고 신경 쓴다. 변화에 대한 강한 의지는 행동을 낳고 신뢰를 형성하게 된다. 확실하게 믿을 수 있는 느낌표가 되는 것이다. 일부러 상처받고 싶은 인간은 없다. 억지로 상처받을 필요도 없다. 극복할 수 없는 인간관계는 떠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본인조차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를 머리를 맞대고 같이 풀어야 할 이유는 없다. 불가의 말처럼 인연이 고통이라면 거기서 해방되는 것이 진짜 자유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