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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민 Jul 15. 2024

피비 파일로 붙여 넣기

혁신 없는 혁신을 들고 나온 셀린느

 셀린느를 떠났던 피비 파일로가 복귀한다는 소식이 나왔을 때 패션계는 환호했다. 패션지들은 존경심과 경외심을 담은 찬양일색의 기사를 내놨다. 높은 리셀가를 자랑하는 피비 시대의 올드셀린느는 전설이다. 그녀가 보여준 스타일링은 고급스러움과 아름다움을 잃지 않으면서 편안함까지 챙겼다. 여성복이 갖춰야 할 이상적인 조건을 모두 갖췄다는 평가는 찬양받을만한 업적이었다. 동종업계의 경쟁자들 마저 피비 파일로에게 만점에 가까운 찬사를 보냈다.  셀린느를 통해 패션업계는 이상적인 모범답안을 얻었다.


  디올을 총괄했던 입생 로랑이 보여준 르스모킹룩은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 화려함 일색이던 여성복 시장에 미니멀리즘을 시도한 질샌더는 생로랑의 가능성에 현실감을 부여했다. 그리고 피비 파일로는 앞선 디자이너들이 보여준 선례를 아름답게 구현해 냈다. 그녀는 스타일링을 통해서 여성해방을 실현한 천재적인 디자이너다. 가브리엘 샤넬이 답답한 드레스를 버리고 여성들에게 편리한 바지를 입게 만든 것처럼 여성복 핏의 해방을 이끈 선구자다.


 아름다움이라는 개념은 때로는 창의성을 막는 족쇄가 되기도 한다. 정체된 트렌드는 꾸준한 수요를 만들어내지만 정작 혁신은 없다. 그러다 보면 몇 시즌 혹은 몇 년 내내 비슷한 스타일이 반복된다. 거슬리는 점도 없고 무난하지만 새로운 맛이 없는 패션.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스타일 정체기다. 웨이트트레이닝의 정체기는 자극점을 찾아내면서 돌파할 수 있다. 패션도 비슷하다. 전성기의 피비 파일로는 여성복의 지루한 무드를 참신한 발상으로 자극시키는 묘수를 보여줬다. 그래서 복귀에 대한 기대감이 컸지만 안타깝게도 결과물은 너무나 실망스러웠다.


 5년 만에 복귀한 피비 파일로의 뉴 셀린느는 흔한 패션하우스가 되어버렸다. 패션브랜드들이 서로를 자기복제하면서 우후죽순으로 내놨던 한물간 로고플레이를 보게 될 줄은 몰랐다. 트리옹프 엠블럼을 박아 넣은 가방과 액세서리는 식상하다 못해 지루했다. 구찌를 떠올릴 수밖에 없는 안일한 패턴사용법 역시 수준이하였다. 자라나 코스에서 써먹을 법한 무드에 적당히 여유로운 핏을 섞은 컬렉션은 안일해 보였다. 트렌드와 대중의 눈높이 사이에서 타협한 컬렉션을 보면서 감이 무뎌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번뜩이는 창의성의 날카로움을 잃어버리면 지난 과거의 성공공식을 답습하게 된다. 디올 옴므를 떠난 에디 슬리먼이 생로랑에서 보여준 전례가 피비 파일로에게 겹쳐 보였다. 장점이었던 편안함과 여성스러움의 밸런스는 트렌드를 끼워 넣으려는 욕심 때문에 망가졌다. 코로나 이후 하이패션에서 자주 사용하면서 관용어구가 된 에슬레저룩을 활용했다. 이도저도 아닌 결과물은 셀린느 특유의 무드를 잃어버렸다. 편안함과 우아함 그리고 유행까지 가져가려다 장점을 모두 상실했다.


 패션업계는 트렌드와 스타일을 모두 잡았다고 칭찬일색이지만 과거의 피비 파일로가 보여준 혁신은 이제 없다. 로고플레이와 애슬레저핏을 활용해서 우후죽순으로 찍어내는 패션브랜드는 온 세상에 널려있다. 셀린느도 이제 그 대열에 합류한 흔한 브랜드가 됐다. 대문짝만 한 앰블럼이 박힌 볼캡이나 레트로 디자인의 선글라스는 안일하다 못해 실망스러웠다. 이미 다른 브랜드들이 수도 없이 보여준 복사본을 보는 식상한 느낌이다. 스트릿무드의 스타일링으로 신선함을 더하려는 시도는 없느니만 못한 악수가 됐다. 엠블럼만 떼면 바로 무신사로 직행해도 손색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출은 잘 나온다. 다른 패션하우스들이 엉망이라 일종의 반사이익을 누리는 것 같다. <서진이네 2>가 동시간대 예능 시청률 1위를 달성하는 이유와 닮았다. 재미는 없는데 볼만한 게 없어서 그냥 보는 것처럼. 셀린느도 그래서 고평가를 받는 중이다. 수요는 어차피 이성이 아니라 감성의 영역이다. 피비 파일로의 행보를 보면서 질샌더가 떠올랐다. 질 샌더는 90년대 말 프라다에 브랜드를 매각하고 물러났다가 3년 만에 복귀했다. 그녀가 다시 전설을 써 내려갈 줄 알았지만 처참하게 실패하면서 회사의 적자만 늘어났다.


 질샌더와 비교한다면 피비 파일로는 연착륙에 성공했다고 볼 수도 있다. 물론 어디까지나 둘을 비교했을 때 한정이다. 한 시대를 본인의 이름으로 장식한 디자이너의 복귀 치고는 실망스럽다. 셀린느는 시장의 성공공식이 보장하는 안전함을 따라가려다 안일함만 답습했다. 혁신은 처음에만 신선한 법이다. 후발주자가 따라 하는 순간 복제품이라는 꼬리표만 따라붙는다. 벤치마킹으로 애써 포장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혁신을 말하면서 정작 혁신은 찾아볼 수 없었다. 단순한 믹스매치는 혁신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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