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여의도에 갔다. 더현대는 늘 그렇듯 사람들로 북적였다. 팝업스토어를 대충 둘러보고 포터 매장으로 향했다. 친구가 쓸 가방이랑 지갑을 함께 골라줬다. 포터 가격이 너무 올랐다. 탱커 시리즈는 이미 50만 원대를 훌쩍 넘겼다. 제일 인기 많은 2way 블랙은 매장에서 실물로 보기도 힘들다. 물가와 인건비가 올랐다지만 가격이 상승이 너무 가파르다. 30만 원대에 사서 들고 다녔는데 몇 년 새 가격이 두 배 가까이 뛰었다. 헬멧백이나 슬링백도 크게 올랐다. 이제는 나일론 라인이랑 레더라인의 가격차가 얼마 나지 않을 지경이다.
배짱장사를 하더라도 매출만 잘 나오면 불만이나 비판은 얼마든지 묵살할 수 있다. 실적이 모든 것을 압도한다. 하지만 가격인상은 명분이 필요하다. 다른 브랜드들이 그렇듯이 포터도 혁신을 내세웠다. 자체개발한 100% 식물성나일론으로 소재를 변경했다는 소식을 듣고 고개를 갸웃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지속가능성이나 환경보호는 포터와 거리가 멀다. 30년 넘게 나일론 가방을 만들다가 이제 와서 왜? 파타고니아라면 모를까 좀 뜬금없었다. 혁신이라고 쓰고 그냥 원가절감이라고 읽어도 무관할 것이다. 인건비나 원자재 가격상승을 식물성나일론으로 포장한 것일까?
좀 더 그럴듯한 명분을 찾지 못한 것일까? 아니면 안 한 것일까? 사람들의 반응은 비슷했다. 물음표는 여간해서는 느낌표로 바뀌지 않는다. 전통을 고수하던 브랜드의 변화는 둘 중 하나다. 찬사를 받거나 거부감을 불러일으키거나. 소비자들의 반응은 정직하다. 식물성나일론이 적용된 신형을 두고 단종된 나일론 구형으로 수요가 몰렸다. 엔저와 맞물려서 일본 포터 매장을 한국인들이 싹쓸이했다는 말이 돌았다. 탱커 시리즈는 매장에 풀리자마자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매진당했다. 그동안 외면당했던 아이언블루 컬러마저 쓸어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올해 초 명품브랜드들의 생산공정과 원가가 폭로된 이후로 소재나 공정이 갖는 가치는 무의미해졌다. 그래도 다들 식물성나일론은 별로인 모양이다. 장인정신을 내세우면서 말했던 포터의 일침입혼도 이제 옛말이다. 전통이나 장인정신은 마케팅이다. 매출이 안 나와도 유지하던 세컨드라인들을 없애고 탱커 라인에 집중하면서 포터도 변했다. 높은 선호도와 인기를 바탕으로 배짱장사를 한지 오래다. 탄탄한 콘크리트 수요가 모든 것을 합리화해 줬다. 애초에 나일론 소재로 만든 탱커는 소모품이다. 알파인더스트리의 MA-1에서 영감을 얻어서 만든 천가방이다. 내구성을 내세울 만큼 튼튼한 물건이 아니다.
사용하다 더러워져도 세탁할 수도 없고 바느질이 터지면 수선하기도 힘들다. 불편함을 감수하고 쓰는 아이템일수록 역설적으로 마니아들의 사랑은 열렬하다. 바버나 포터, 닥터마틴은 스타일이라는 이름으로 비용을 지불하고 불편함을 구매하는 브랜드다. 개인차는 있겠지만 편의성과 스타일을 어느 정도 등가교환한다는 점은 공감할 것이다. 세 브랜드 모두 높은 인기와 수요를 등에 업고 많이 달라졌다. 바버 인터내셔널 라인은 캐주얼에 주력하면서 오리지널과 멀어졌고 닥터마틴은 모노 제품군을 주력으로 밀고 있다. 포터는 앞서 말했듯이 탱커시리즈에 전력 투구하는 중이다.
요시다 포터는 탱커 원툴로 불려도 개의치 않는다. 어차피 잘 팔리니까 부정할 생각도 없을 것이다. 포터는 대체재가 없다. 독보적인 오리지널리티는 꾸준히 사랑받는 브랜드가 갖는 강점이다. 유니클로가 싼 가격에 유시다포터를 찍어내도 수요는 굳건하다. 블랭코브 같은 도메스틱 브랜드가 비슷한 디자인을 만들어내도 인기는 꺾이지 않는다. 후속주자들이 저렴한 가격에 유사한 디자인을 출시해도 입지는 늘 그대로다. 그래서 가격을 올리면서 배짱장사를 해도 해괴한 콜라보를 선보여도 장사가 된다.
패션브랜드를 보면 될 놈은 뭘 해도 된다는 생각이 든다. 발렌티노나 무라카미 다카시와 함께 선보인 포터의 협업은 정말 별로였다. 하지만 브랜드 가치가 훼손되는 일은 없었다. 선호도와 충성도는 이름값과 평판을 보호하는 강력한 방벽이다. 마니아나 선망하는 잠재고객이 많을수록 높은 구매력이 확보된다. 이탈리아 브랜드인 프라다와 오로비앙코는 동일한 리몬타 나일론으로 가방을 만든다. 그러나 두 브랜드의 가격차는 거의 6배에 달한다. 네임밸류를 제외하면 원단이나 부자재의 퀄리티는 대동소이하다.
프라다는 페트병이나 폐그물로 만든 재생나일론으로 가방을 출시하고 있다. 리나일론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오는 가방의 출고가는 2백만 원에 달한다. 결국 가격을 결정짓는 것은 브랜드의 대중성과 선호도다. 아무리 많은 카피제품이 나와도 요시다 포터의 입지는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포터는 프라다를 꿈꾸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쓰레기를 재활용한 리나일론에서 식물성나일론을 벤치마킹 한 것은 아닐까? 참고든 동경이든 가격은 따라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러다 탱커시리즈 가격이 백만 원을 훌쩍 넘어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