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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민 Oct 05. 2024

가을마다 하는 옷장정리

 가을은 정리의 계절이다. 봄이 되면 매번 봄옷을 사고 가을에는 늘 옷을 처분했다. 올 가을도 어김없이 옷장을 정리했다. 선물 받고 입은 적 없는 셔츠를 당근마켓에 내다 팔았다. 올해는 무지 티셔츠를 제외하면 옷을 구입한 적이 없다. 미니멀리스트가 되면서 옷장의 부피는 계속해서 줄어드는 중이다. 슈트를 즐겨 입던 시절에 비하면 옷장이 정말 간소해졌다. 코트와 재킷을 합쳐봐야 5벌이 전부다. 예전에는 셔츠만 스무 벌 넘게 걸려있었는데 참 많이 변했다. 그때는 옷을 참 좋아했다. 불편함을 감수하면서까지 멋 부리기를 즐겼다.


 지금은 입기 편한 옷이 좋다. 벗어서 세탁기에 바로 던져 넣을 수 있는 옷이 최고다. 네이비를 여전히 제일 좋아하지만 요즘은 밝은 색을 더 선호한다. 라이트베이지나 크림색에 가까운 베이지도 자주 입다 보니 마음에 든다. 서랍장을 열어보니 작년 겨울에 산 머플러가 보였다. 선명한 코발트블루가 지금 보니 부담스럽다. 같이 구매한 포레스트 그린은 그나마 나아 보였다. 사진 몇 장을 대충 찍어서 중고나라앱에 업로드했다. 70% 할인이라 샀는데 결국 중고나라 행이다. 싸다고 산 옷의 결말은 늘 똑같다.


 ‘나중에’ 나 ‘언젠가’는 없다. 지금 안 입는 옷은 시간이 지나도 입을 일이 없다. 옷은 당장 입을 수 있는 것으로 사야 한다. 속옷이나 흰 티셔츠 같은 기본템을 제외하면 옷은 무조건 유행이나 계절을 탄다. 무턱대고 사면 짐으로 전락한다. 옷장을 충분히 비웠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멀었다. 버릴 옷들이 침대 위에 하나둘씩 쌓였다. 브룩스브라더스의 레지멘탈 타이도 꺼냈다. 지난 2년간 한 번도 착용한 적이 없다. 시간이 지나면서 선호하는 스타일도 조금씩 변한다. 지금 넥타이를 산다면 레지멘탈 타이대신에 솔리드 타입의 니트 타이를 살 것 같다.


 한 번 손이 안 가면 두 번 다시 찾을 일은 없다. 마음이 떠나면 돌아오지 않는 것처럼 애정이 식은 아이템에 손길이나 눈길은 좀처럼 닿지 않는다. 입맛이 변하는 것처럼 취향도 변한다. 스타일은 늘 아주 작은 데서부터 변한다. 컬러나 패턴 같은 디테일의 선호도가 미묘하게 달라진다. 냉장고를 비우듯이 옷장을 정리한다고 생각하면 편하다. 유통기한은 남아있지만 구미가 당기지 않는 음식이나 옷이나 똑같다. 슈트를 구매할 때 받았던 행커치프도 침대 위로 던져버렸다. 오일릴리나 에트로가 연상되는 페이즐리 패턴이 너무 튀는 느낌이 들었다.


 그때는 좋았는데 지금은 아니다. 과거의 선택이 틀린 것은 아니다. 그냥 달라진 것뿐이다. 계절이 바뀌는 것처럼 사람은 변한다. 화려한 봄날을 닮은 스타일을 좋아했던 시기는 지나갔다. 리버티 백화점의 플로랄 원단이나 칸글리니의 시원한 스트라이프 패턴이 들어간 셔츠를 좋아했었다. 하지만 지금 옷장에는 옥스퍼드 셔츠만 걸려있다. 요즘은 가을날씨처럼 차분하고 편안한 옷이 좋다. 거슬리지 않는 무난한 것들이 마음에 든다. 지루해 보일 수도 있지만 단순할수록 고민 없이 걸칠 수 있다. 포인트는 모자나 신발에 주면 된다.


 옷장을 비우면서 처음 테일러샵에서 맞췄던 슈트를 꺼내봤다. 지금 보면 과하다 싶은 디테일이 곳곳에 눈에 들어온다. 스트라파타가 적용된 라펠이나 바르카 포켓이 영 부담스럽다. 그때는 나폴리 스타일이 멋져 보였다. 옷장을 보면 과거의 내가 동경했던 것들이 보인다. 자꾸 보다 보니 입꼬리가 나도 모르게 올라갔다. 화려한 것들에 눈길이 가는 것처럼 단순함에 끌리는 시기가 있다. 계절이 변하고 시간이 흐르는 것처럼 변화는 자연스럽게 찾아온다. 조금 더 나이가 들면 다시 강렬한 패턴이나 화려한 디자인을 좋아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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