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이나 취향은 돌고 돈다. 요즘은 반스 올드스쿨을 거의 매일 신는다. 단화를 쭉 기피했던 내게 찾아온 큰 변화다. 발이 편해야 맘이 편하다는 생각으로 뉴발란스만 고집했는데 반스까지는 괜찮은 것 같다. 아웃솔 소재가 달라진 건지 아니면 내 발바닥이 단단해진 건지는 모르겠지만 하루종일 신어도 괜찮았다.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똑같은 단화지만 컨버스 올스타는 여전히 불편하다. 고무소재의 토캡 부분이 꽉 끼는 느낌이 든다. 척 70s는 착용감은 좋은데 유광코팅이 마음에 안 든다. 매장에 딱 하나 남아있던 말라카이트 컬러의 척 70s를 구매하려다 그만둔 적도 있다.
사람마다 중요시하는 착용감의 기준은 다른 것 같다. 발이 편하다는 느낌은 개인차가 큰 편이다. 신발 취향만 봐도 알 수 있다. 운동화보다 구두를 더 편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특정 브랜드를 즐겨 신는 것도 착용감의 영향이 크게 작용한다. 제작기술의 노하우가 아웃솔이나 인솔에 집중되므로 브랜드 별 편차가 뚜렷하다. 아식스의 오니즈카 타이거는 디자인은 예쁘지만 착용감이 정말 별로였는데 친구는 발이 편하다고 좋아했다. 무신사 세일기간에 주문한 푸마 스웨이드는 낮은 뱀프와 어퍼가 불편해서 바로 반품했다.
아웃솔이 주는 푹신함보다 신발 앞뒤로 여유가 있는 쪽을 더 선호한다. 발등은 높고 발볼이 넓은 편이라 딱 맞는 신발이 거의 없다. 그래서 신발을 조금 헐겁게 신는다. 발바닥이 아픈 것보다 발등이나 발가락이 조이는 쪽이 더 괴롭다. 딱 맞게 신어야 예쁜 구두나 닥터마틴은 아쉽지만 내게 맞지 않는 신발이다. 디자인이 마음에 든다고 발에 안 맞는 신발을 억지로 신을 수는 없다. 코트에 어울리는 로퍼를 찾다가 골랐던 닥터마틴 펜톤은 딱 한 번 신고 나서 중고로 팔아버렸다. 옷이나 신발이나 똑같다. 안 맞으면 손대지 말아야 한다.
머리는 같은 실수를 가끔 반복하지만 몸이 한 번 고생하면 다시는 반복하지 않는다. 고통은 각인된다. 가끔 아웃렛을 갈 때마다 매력적인 가격표를 달고 있는 신발들을 만나지만 매번 지나간다. 창고에 반스 올드스쿨 박스가 여러 개 쌓여있다. 세일기간에 한 켤레당 3만 원 주고 사서 쟁여놨다. 정가는 거의 10만 원이지만 예전이나 지금이나 반스 가격의 심리적 저항선은 4만 원대다. 5만 원만 넘어가도 애매하다 싶은 생각이 든다. 어쩌다 보니 돌고 돌아 올드스쿨이다. 반스 스타일 36도 같이 사봤는데 마음에 든다.
오늘은 프린팅 없는 회색 무지 맨투맨을 입고 올드스쿨을 신었다. 백팩 대신에 맨해튼 포티지 크로스백을 메고 나왔다. 단순하다 못해 조금 투박한 것들에 마음이 간다. 유행을 타지 않는 올드스쿨이 좋다. 단조롭지만 무난한 것들은 구식이 아니라 클래식이다. 트렌드는 변하지만 클래식은 변하지 않는다. 화려한 멋은 없지만 물리지 않는 맛이라 고민 없이 편하게 걸치고 다닐 수 있다. 옷을 고르고 믹스매치하는 즐거움도 매력이지만 고심할 필요 없는 간편함도 매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