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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민 Aug 08. 2024

새벽 1시에 먹는 편의점도시락

 자정을 훌쩍 넘긴 시간이라 거리에 사람은 없다. 배달오토바이만 텅 빈 도로 위를 지나다닌다. 시끌벅적한 한낮의 풍경은 찾아볼 수 없다. 낮밤이 바뀐 올빼미족이나 야간근무를 하는 사람들을 제외하면 다들 이불을 덮고 있을 시간이다. 고민을 끌어안고 끙끙대는 사람만 누워서 뜬눈으로 밤을 새운다. 떨쳐내기 힘든 걱정이나 답을 찾을 수 없는 문제는 수면을 해친다. 쓸데없는 걱정을 하느라 잘 시간을 놓쳤다. 시곗바늘을 힐끔거리다 침대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온다. 어두운 거리 하얗게 빛나는 편의점이 꼭 등대 같았다.


 나는 복잡한 머리를 비우러 편의점에 간다. 집 근처 CU나 GS25 둘 중 어디든 상관없다. 오늘은 CU를 선택했다. 야식을 거의 먹지 않는 편이지만 오늘 같은 날은 예외다. 의기양양한 표정의 백종원 아저씨 얼굴이 들어간 제육볶음 도시락을 골랐다. 눈이 아플 만큼 밝은 편의점 내부는 한산하다. 느긋하게 자리를 잡고 살짝 뜨겁게 데운 도시락을 먹는다. 간이 세고 역시 짜다. 편의점 음식다운 맛이다. 좋아하는 맛과 거리가 멀지만 익숙한 맛이라 거부감은 크지 않았다.


 다 먹은 도시락을 치우고 테이블을 정리했다. 배가 차면 여유가 생긴다. 천천히 주변을 둘러본다. 매대에 진열된 여러 상품들을 구경하고 행사상품 중에 살만 한 것들을 살펴본다. 원플러스 원인지 투플러스 원인지 구분하고 비슷한 제품은 가격도 비교해 본다. 탄산수는 행사상품에서 제외됐다. 아쉽지만 다른 음료를 하나 골라서 계산한다. 오늘은 데자와를 골랐다. 이 시간에 카페인은 최악이지만 이미 야식을 먹는 죄악을 저질렀다. 원플러스원이다. 달달한 밀크티가 혀를 적시고 식도로 넘어간다. 쌉쌀한 홍차 향이 입 안에 남아있는 자극적인 맛을 씻어냈다.


 까만 유리창 너머 공사장이 눈에 들어온다. 건너편 상록마을은 불과 얼마 전까지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동네였다. 재개발로 인해 주민들은 모두 이주했다. 동네도 변하고 사람도 떠났지만 추억이 깃든 장소는 그대로 남아있다. CU는 주인이 몇 번 바뀌었지만 여전히 같은 장소에서 영업 중이다. 친구들과 버스를 기다리면서 여기서 종종 야식을 먹었다. 컵라면에 삼각김밥이 전부였지만 즐거웠다. 20대 초반에는 친구가 여자 알바생 번호를 땄다. 데이트만 하고 정작 사귀지도 못했다. 그 이야기를 안주 삼아 웃고 떠들면서 술을 마셨던 기억이 난다.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기억은 생생하게 살아있다. 지나간 날들을 떠올리다 보면 마음이 편해진다. 후회나 아쉬움보다 익숙한 얼굴과 친숙한 사람들이 먼저 생각나서 다행이다. 늦은 밤의 편의점을 볼 때마다 에드워드 호퍼가 그린 나이트호크가 오버랩된다. 심야영업을 하는 미국음식점은 영화나 소설 속에 자주 등장한다. 커다란 통유리창을 등지고 긴 테이블에 앉아서 팬케이크나 샌드위치를 먹는 모습. 감성과 현실이 묘하게 어우러져있는 특유의 분위기는 제법 매력적이다. 밤의 편의점도 나름 분위기가 있다.


 창 밖을 보면서 생각 없이 앉아 있다 보니 기분이 좀 나아졌다. 기분을 전환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밖으로 나가는 것이다. 우울함으로 물든 자리를 벗어나면 감정은 원래 제자리를 찾아간다. 최악이라고 생각했던 순간이나 깊은 절망감도 흐르는 강물처럼 시간과 함께 지나간다. 시간은 약이 아니지만 무엇이든 과거로 흘려보낼 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카운터 쪽으로 인사를 건네고 편의점 밖으로 나왔다. 며칠 째 열대야가 이어지는 무더운 밤이다. 무거운 머리를 비우고 돌아가는 발걸음은 올 때보다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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