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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민 Aug 10. 2024

관음

 인터넷을 통해서 바라보는 타인의 삶은 현실감이 없다. 거리감이 느껴지는 현실은 드라마처럼 가볍다. 무덤덤하게 엄지 손가락을 아래로 내리다 페이지에서 벗어난다. 삶의 영역이 온라인으로 이동하면서 인간적인 감정이 점점 메말라가는 것 같다. 숏폼과 쇼트콘텐츠는 자극만 있고 깊이는 없다. 눈길을 끄는 본능적인 볼거리는 넘쳐나지만 마음에 와닿는 울림은 없다. 밈이나 유머를 제외하면 남는 것이 거의 없다. 심플함을 추구하면서 다들 심하게 가벼워졌다.


  카카오톡 샵검색에 고양이를 검색했다가 블로그 몇 개를 둘러봤다. 필요한 정보와 일상 포스팅이 섞여있었다. 음식취향부터 좋아하는 친구들과의 추억까지 전부 오픈되어 있다. 창을 닫는 순간 기억 속에서 사라지겠지만 타인의 삶이 너무나 쉽게 스치고 지나 간다.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 삶은 한없이 가볍다. 관찰예능을 보는 것처럼 남의 인생을 시청할 수 있는 시대다. 원한다면 코미디부터 비극까지 얼마든지 찾아서 입맛대로 볼 수 있다. 엿보기는 즐길거리를 선사하지만 즐거움은 빠르게 증발한다.


 유튜브와 SNS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시각적인 욕망은 충족되지 않는다. 자극은 더 큰 자극을 갈망하는 연쇄반응을 부른다. 욕망은 늘어나면 중독으로 이어진데. 눈이 즐거우면 뇌는 괴롭다. 생각하는 능력이 감소하면 공감능력도 줄어든다. 비약이 아니다. 분노와 증오가 온라인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다. 관음증은 인터넷 세상에서 질병이 아니라 상식이다.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는 메커니즘은 어디에나 적용된다. 블로그와 SNS 심지어 댓글과 리뷰까지 엿보기와 들여다보기의 산물이다.


 심연을 들여다보면 심연도 나의 내면을 들여다본다는 니체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타인의 삶을 관찰하는 순간부터 AI 알고리즘이 따라붙는다. 추적은 집요하다. 최적화라는 이름으로 광고나 추천을 끈질기게 강요한다. 원하지 않는 정보가 멋대로 밀려들어올 때마다 피로감을 느낀다. 원칙적으로 인터넷에 자유나 비밀은 존재하지 않는다. 웹사이트를 이용할 때마다 로그가 남는다. IP주소와 검색기록은 지문이나 마찬가지다. 익명성을 내세운 비공개서비스를 이용하려면 가입부터 해야 한다. 맘대로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는 대가는 생각보다 크다.


 과거의 인간은 이야기를 남기는 동물이었다. 오늘날의 인간은 유튜브 콘텐츠와 SNS 포스팅을 남긴다. 정보는 홍수를 넘어서 쓰나미에 가까운 수준으로 폭증했다. 쓸만한 정보는 거의 없다. 유튜브만 봐도 조회수와 눈길을 끌려는 목적의 정크콘텐츠가 태반이다. 구글링을 하다 보면 검색유입을 노리고 만든 페이지를 숱하게 볼 수 있다. 정보는 휘발성이 강하지만 온도와 질감은 흔적을 남긴다. 한 번 들러붙은 불결한 느낌은 좀처럼 씻겨 내려가지 않는다. 지뢰와 함정이 널려있다. 알아서 피하고 요령껏 물러나야 살아남는다.


 사람들 입에 자주 오르내리면서 키워드는 이슈가 된다. 도파민 디톡스가 잠깐 유행하면서 이슈를 만들어냈다. 자극적인 콘텐츠에 대한 경각심과 위기의식이 공감대를 형성했지만 금세 와해됐다. 이슈는 더 큰 이슈에 잡아먹힌다. 불안도 위기도 모두 콘텐츠가 되는 세상이다. 사건이나 스캔들은 쉴 새 없이 쏟아진다. 인터넷은 이슈를 끊임없이 재가공하는 거대한 공장이다. 콘텐츠는 자가복제와 확대생산을 반복하면서 사람들의 시간을 잡아먹는다. 기술이 발전하는 속도가 빨라질수록 인간성이 퇴보하는 속도 역시 빨라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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