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PEARL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태민 Aug 11. 2024

장례식장에서

 대학동기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부고를 알리는 내용이었다. 집에 들러서 급하게 옷을 갈아입고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입구에서 몇 년 만에 만난 동기들이랑 인사를 주고받았다. 헌화를 하고 인사를 올렸다. 상주가 된 친구의 손을 붙잡고 짧은 위로를 건넸다. 종종 친족상을 당했다는 연락을 받는다. 이제 그럴만한 나이가 됐다. 결혼식 청첩장을 받는 시기가 이어지다 몇 년이 지나면 돌잔치 초대장을 자주 받게 된다. 그러다 또 시간이 흐르고 나면 장례식장에 갈 일이 늘어난다. 나폴리 스타일의 예식용 슈트보다 흰 셔츠에 검은색 셋업을 입을 일이 더 늘었다.


 식사를 권하는 친구들과 마주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육개장에 밥을 가득 말아 술술 넘겼다. 결혼식 뷔페는 골라먹지만 장례식장 밥은 가능하면 배불리 먹고 간다. 돌아가신 분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한다. 자정을 훌쩍 넘긴 시간이라 사람들 얼굴에 피로가 잔뜩 묻어있다. 술잔과 함께 근황을 담은 소식을 주고받는다. 다음 달 동기 결혼식에 다시 만나서 얼굴을 보자는 말이 나왔다. 병원과 장례식장은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곳이다. 떠난 사람을 기리며 남은 사람들은 일상을 이어나갈 준비를 한다.


 헌화와 분향으로 고인이 떠나는 길을 기린다. 기도를 하는 사람도 있고 절을 하는 사람도 있다. 방식은 달라도 추모하고 애도하는 마음은 같다. 여러 감정이 뒤섞인 유족의 얼굴을 볼 때마다 만감이 교차한다. 단단히 마음의 준비를 해도 상실감은 사람의 예상을 벗어난다. 눈물을 흘리면서 곡을 하는 유가족을 보면 말로 할 수 없는 먹먹함을 느낀다. 밖으로 나오면 상복을 입고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을 만난다. 먼 하늘을 응시하면서 깊은숨과 함께 뱉는 연기는 허공을 맴돈다.


 시작을 예측할 수 없듯이 끝도 예상할 수 없다. 태어나는 것이나 죽는 것이나 자유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사는 것은 선택이지만 출생과 죽음은 선택의 자유에서 벗어나있다. 갑작스럽게 시작해서 예기치 못한 순간에 마지막에 도달하는 것이 인생이다. 장례식장에 올 때마다 고인의 삶을 조용히 떠올려본다. 태어나고 사람들을 만나고 인연을 맺고 가족이란 이름의 소중한 결실을 얻고 나이가 든다. 소임을 다하며 살다가 삶을 정리하고 마무리한다. 스치고 지나가는 이미지들은 상상에 불과하지만 무게감은 결코 가볍지 않다.


 지나간 기억은 모두 추억이 된다. 좋은 순간도 나쁜 순간도 전부 같은 페이지에 담는다. 남은 사람들의 추억 속에 변하지 않는 모습으로 남는다. 저마다 고인에 대한 가장 아름다운 기억을 붙잡고 산다. 삶은 길고 다시 만날 날은 아직 멀리 있다. 그때까지 가슴속에 간직한 추억을 버팀목 삼아 열심히 산다. 죽음은 단절을 의미하지 않는다. 함께 보낸 시간은 사라지지 않는다. 떠난 사람을 그리워하면서 같이 산 날들을 추억한다. 더 이상 옆에 없지만 곁에 남은 기억들은 위로가 되고 힘을 준다.


 죽음은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가까운 곳에 있다. 장례식장을 찾을 때마다 죽음과의 거리를 가늠해 본다. 겪어보지 않은 일이라 아직은 남일처럼 멀게 느껴진다. 언제가 될지 알 수 없지만 언젠가는 나도 장례식장에서 배웅과 조문을 받게 될 것이다. 인간은 모두 이야기를 남긴다. 죽음은 긴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마지막 문장의 마침표다. 한 사람의 일생은 한 편의 이야기가 되고 죽음은 인생을 완성하는 끝맺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에 의해 완성된 이야기는 오랫동안 회자된다. 삶은 죽음을 통해 완성되고 죽음으로 인해 삶은 의미를 갖는다.

매거진의 이전글 관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