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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민 Aug 22. 2024

아무도 모르게 꽃이 진다

어른들이 저지르는 잘못의 피해자는 아이들이다

 제법 많은 비가 내린 주말이었다. 집 앞 카페에서 상담전문가로 일하고 있는 대학동기를 만났다. 회색 빛 하늘에서 떨어진 비가 세상을 씻어내는 동안 이야기는 꼬리를 물고 길게 이어졌다. 교육을 주제로 대화를 나누다 듣게 된 자살에 관한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초등학생 자살률이 우상향 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눈앞이 아찔해졌다. 현실감을 느낄 수 없는 단어들이 공중에 떠다니고 있었다. 학교에서 자살예방 교육을 벌이고 있는 현실은 듣기만 해도 비극적이었다.


 무거운 주제인만큼 동기의 표정은 어두웠다. 업계종사자인 동기에게서 들은 내용은 각색 없는 현실이라 뉴스보다 더 참혹했다. 청장년층의 자살률은 소폭 줄어든 경우도 있었지만 청소년자살률은 예외 없이 우상향 했다는 말이 가슴에 남았다. 자살률이 지속적으로 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면서 동기는 말 끝을 흐렸다. 피기도 전에 가지에서 떨어지는 꽃망울을 머릿속에 떠올려봤다. 그 모습은 슬프다 못해 아프다. 가벼운 목숨은 없다.


 친한 친구의 조카가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도시 거주인구는 많은 편이었지만 학급당 신입생은 스무 명 남짓이었다. 인구절벽 문제는 자라나는 아이들을 보면 실감할 수 있다. 이 작은 한반도를 더 이상 채울 사람이 없다. 작년 중학교를 대상으로 한 설계프로젝트에 참여한 적이 있다. 기획과 콘셉트 부문의 자문이었던 나는 학생 정원 수를 표기한 부분을 보고 눈을 의심했다. 한 학급당 배정된 아이들은 18명에 불과했다.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산율을 기록하고 인구절벽 위기에 내몰린 국가 대한민국. 불과 10여 년만 지나면 경제활동인구로 성장할 아이들이 사라지고 있다. 스무 살이 되기도 전에 세상을 떠나는 청소년들이 늘고 있다는 현실은 이 나라의 미래를 보여준다. 아이 낳으라는 외침보다 아이들이 제대로 살 수 있는 문화와 환경을 만드는 개혁이 필요하다. 아이를 키우기 힘든 나라는 결국 아이들이 살기 힘든 나라나 마찬가지다. OECD 국가 중 청소년 자살률 1위를 수십 년째 지키고 있는 대한민국은 살기 좋은 나라일까?


 아이들에게 잘못은 없다. 자살을 일탈이나 비행과 같은 선에 놓는 관점은 틀렸다. 이런 시각은 개인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악습을 낳는다. 한국 사회는 아동청소년들에게 가치관이 형성되지 않았다는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그러나 자살과 같은 문제에 관해서는 대상에게 문제가 있다는 뉘앙스를 고수한다. 애들은 죄가 없다. 사회는 어른들이 만든다. 세상을 떠난 아이들에게 문제를 떠넘기는 비겁한 어른들의 변해야 세상이 변한다.


 답을 알 수 없는 문제로 고민할 때 아이들은 어른들에게 손을 내민다. 그러나 돌아오는 반응은 쓸데없는 데 신경 쓰지 말라는 핀잔이다. 힘겹게 내민 손이 구조신호였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어른들은 없는 것 같다. 어른들이 보기에 쓸데없어 보이는 고민들은 아이들 삶을 가로막는 거대한 장애물이다. 뛰어넘지 못하고 아이들은 그 앞에서 좌절한다. 덮어놓고 지내다 보면 마음이 곯는다. 상처는 벌어지고 통증은 깊어진다. 아이들은 죄가 없다. 세상은 여전히 그대로인 것 같다.


 내세울만한 천연자원이 없는 대한민국은 사람을 자원 삼아 경제를 굴렸다. 성장기를 거치면서 살만해졌지만 사람을 자원으로 취급하는 관습은 개선되지 않았다. 오히려 사람을 갈아 넣어 국가를 운영하고 산업을 지탱하는 방식은 상식으로 자리 잡았다. 한국은 교육을 관장하는 정부부처 명칭에 ‘인적자원’이라는 말이 들어가 있던 나라다. 교육은 효과성과 효율성만을 추구했다. 그래서 교육당국도 국가도 그 어느 누구도 아동청소년들의 자살문제를 책임지려고 하지 않는다.


 획일화된 선택을 강요받으면서 늘 비교당하는 입장에서 인간은 행복할 수 있을까? 적응한 아이들이 행복하다면 부적응자는 문제아일까? 20년 전 학교를 다녔던 그때나 지금이나 한국 사회는 그대로다. 다양성이나 선택지는 여전히 존재하지 않는다. 어른들이 만든 사회시스템이 아이들의 생명을 빼앗고 있다. 내가 느끼는 죄의식에 가까운 부채감은 슬픔과 분노를 동시에 품고 있다. 우리 사회가 아이들을 벼랑 끝으로 내몬 것이나 다름없다는 생각이 든다.


 한 명의 아이를 키우려면 마을 사람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격언이 떠올랐다. 한국의 사회현실은 정반대다. 온 마을 사람들이 합심해서 아이를 벼랑 끝으로 몰아세우고 있다. 2023년 한 해동안 청소년 3만여 명 중 무려 4천 명 넘는 아이들이 자살을 시도했다는 뉴스를 봤다. 살아남은 아이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떠난 아이들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나는 상상할 수 조차 없다. 주말이 지나고 나면 새로운 달이 시작된다. 비가 그치고 해가 뜨고 또다시 새로운 계절이 와도 비극은 끝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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