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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민 Jan 07. 2024

집착하지 말고 지나가라

차이를 인정하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법

 나는 삶의 의미를 부여하며 살아가는 것에 남다른 열정을 갖고 사는 인간이다. 그렇다고 해서 삶에 별다른 의미를 두지 않는 사람을 비정상으로 규정하지 않는다. 이유가 없다는 말도 이유가 된다. 이해할 수 없는 이유는 그냥 존중해야 한다. 납득하지 못한다고 해서 대립하면서 감정을 낭비할 필요는 없다. 삶이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것도 세상을 별의미 없는 곳으로 보는 시각도 인간에 대한 큰 애착이 없는 마음도 하나의 관점이다.


 세상은 아름다운 곳도 아니고 인간은 생각만큼 고귀하거나 특별한 존재도 아니다. 그래서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하려 애쓰면서 사는 사람도 있지만 신경 쓰지 않고 흘러가는 대로 사는 사람도 있다. 정답과 오답은 없다. 관점이 다를 뿐이다. 진리는 하나가 아니다. 각자가 믿는 서로 다른 진리를 추구하면서 인간은 다양성을 만들어낸다. 진리 때문에 세상이 망하는 일은 없다. 자기 방식을 강요하는 자들이 빚어내는 갈등 때문에 망가지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저마다의 답을 찾기 위해 산다. 이해할 수도 없고 존중할 여유도 없다면 지나가라.


 비난하거나 평가하지 말고 그저 조용히 지나가면 된다. 밤하늘을 가로질러가는 혜성처럼 지나치면 싸울 일이 없다. 다수의 방식은 경향으로 인정받는다. 그러나 소수의 선택 역시 경향이다. 주류와 비주류라는 이름표를 붙일 필요는 없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자유로운 선택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떻게 살든 스스로가 찾은 답이 명답이다. 획일화된 경쟁사회에서 주입식 교육을 받고 자란 한국인들은 정답에 관한 강박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인생은 객관식이 아니라 대체로 주관식이다. 틀에 박힌 정답은 시대가 변하고 상황이 달라지면 오답이 된다.


 스스로 문제를 풀어서 해답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남의 방식이 아니라 내 방식을 찾는 것이 먼저다. 직접 부딪히고 경험하다 보면 문제를 푸는 요령을 갖게 된다. 결국 경험이 사람을 만든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모범답안을 예시로 들면서 상대방을 가르치려고 한다. 설득하는 사람보다 강요하는 사람이 훨씬 많다. 그러나 삶은 철저한 독립시행이다. 모든 인생에 적용할 수 있는 성공의 공식은 없다. 가르침을 말하는 이들은 대게 사기꾼이었다. 그리고 가르침에 복종하는 이들은 대체로 겁쟁이들이었다. 두려움에 떠는 인간들은 지혜를 갈구한다. 그러나 정작 그런 인간들일수록 다양성을 배척하고 다채로운 선택을 비하한다.


 나약한 인간일수록 우열을 나누고 소속감과 권위를 통해 안정감을 느끼고 싶어 한다. 불안하기 때문에 정답과 원칙을 운운하면서 본인의 선택과 삶을 합리화한다. 어떻게 살든 어떤 선택을 하든 자유다. 어떻게 살아도 우리는 언젠가 다 죽는다. 모두의 인생이 다르듯 경험이 다르고 그러면 선택도 달라진다. 인생을 한 번뿐이다. 삶에 관한 제대로 된 평가는 죽은 뒤에나 가능하다. 완벽한 삶도 없고 완성된 인간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불안에 미혹당하가나 강박에 잠식당할 필요는 없다. 불안과 강박은 과도한 욕망을 부른다. 욕망에 잠식당한 인간은 추해진다.


 사람들은 인정받기 위해 발버둥 치고 남을 업신여기고 끊임없이 평가하면서 신분과 계급을 만들어낸다. 죽고 나면 누구도 기억하지 못할 것들을 얻기 위해 분투하고 남과 다르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발악한다. 치열함과 치졸함은 한 끗 차이다. 지구는 우주를 떠도는 먼지나 다름없다. 그리고 인간은 그 먼지에 들러붙어있는 티끌에 불과하다. 우주에 영원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불과 100년 남짓 사는 인간은 영원히 살 것처럼 집착한다. 더 많이 갖기 위해 발악하고 시간과 돈을 맞바꾸면서 산다. 유한한 존재들이 무한한 욕망을 쫓으면서 산다는 것은 우스꽝스러운 희극이다. 수명이 길어질수록 욕망도 함께 늘어난다는 사실은 기분 나쁜 비극이다.


 집착하지 않고 물 흐르는 대로 사는 삶도 있다. 가볍게 산책하듯이 이 세상에 잠깐 머물다 가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사람들과 관계를 소중하게 여기지만 함부로 인연을 맺지 않는다. 책임과 의무를 구별하고 권리에 연연하지 않고 여유로운 자유를 선택한다. 이들은 투쟁을 통해서 쟁취하려는 이상도 없고 다양성을 인정하면서 싸움과 논쟁을 지양한다. 이해할 수 없는 것들 때문에 다투지 않고 납득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돌아서지 않는다. 그저 주어진 삶을 유영하듯이 느긋하게 산다.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을 설득하려고 애쓰지도 않고 정답과 오답을 규정하면서 남을 가르치려 들지도 않는다.


 인생은 짧은 소풍이다. 가능하면 즐겁게 머물다 그면 그만이다. 잠시 머물다 떠날 곳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것은 피곤한 일이다. 삶을 여러 번 살 수 있었다면 역사 속 성인들은 두 번째 삶은 유유자적하며 살았을 것이다. 소풍 나온 것처럼 편안하고 느긋하게 여유를 즐기며 살다 가지 않았을까. 성인들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배척하고 다투지 말라는 가르침을 남겼다. 그러나 그 가르침을 따르는 인간들은 서로를 적으로 규정하고 지금까지 싸우고 있다. 나와 다른 것을 악으로 규정하고 교정해야 할 질병으로 인식하는 극단적인 논리가 교리로 대접받는 중이다.


 인류의 역사는 여전히 투쟁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편협한 시각으로 세상을 보고 흑백논리로 선악을 구별하려 든다. 다양성은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존중하는 것이다. 차이는 납득하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것이다. 정답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면 삶은 가벼운 소풍이 아니라 치열한 전쟁터가 된다. 해가 바뀌자마자 세계 각지에서 전운이 감도는 중이다. 여전히 세상은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생각이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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