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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민 Dec 10. 2023

내면으로 눈을 돌리다

마음이 가난해지는 시대

 일주일에 한 번씩 꼭 서점을 찾는다. 책을 사기 위해서가 아니라 보기 위해서다. 매대에 놓여있는 책은 사회 현실을 비추는 거울이다. 어디를 봐도 자기 개발서가 많이 보인다. 불황일수록 자기 계발서는 사람들로부터 사랑받는다. 요즘은 내적 성장을 주제로 삼은 책이 인기다. 역량개발에 중점을 둔 책은 유행이 지났다. 변화에 대응하는 생존전략을 담은 책도 이전만큼 관심을 끌지 못했다. 내면을 돌아보라는 메시지를 담은 강연과 자기 개발서가 사랑받고 있다. 사회발전 단계에 따라 사람들이 추구하는 욕망도 변화한다. 소유하는 것에서 향유하는 시대로 사회는 진보한다. 물질적인 성공이 아니라 정서적인 성장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이게 된다. 많이 갖는 것도 좋지만 어떻게 보람 있게 살 것인가 를 고민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은 예외다. 경제적인 성공 대신에 자아실현으로 사람들의 관심사가 변한 것이 아니다. 한국 사회는 여전히 행복의 절대적인 기준이 돈이다. OECD 회원국 중에서 삶의 가장 소중한 가치를 돈으로 꼽은 나라는 한국뿐이다. 정서적인 만족감이나 화목한 가족애보다 경제적인 자유를 행복이라고 믿는 나라다. 선진국 대열에 합류했지만 여전히 개도국 시기의 어젠다에 머물러있는 기형적인 국가다. 자아성찰을 위해서 내면을 신경 쓰기 시작한 것이 아니다. 진짜 이유는 불안감이다. 노력으로 극복할 수 없는 양극화와 남의 시선을 신경 쓰는 문화로 인해 심리적인 불안이 폭증하고 있다. 예전부터 존재했던 고질병이었지만 코로나를 겪으면서 병세가 급격하게 악화됐다. 그래서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사람들은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3년 가까이 지속된 코로나 시기동안 우리는 사회적인 단절을 경험했다. 상상해 본 적 없는 재난을 겪으면서 상식과 법칙이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관계가 단절되고 서로 만날 수 없는 상황에서 오는 무력감을 체험하면서 사람들은 달라졌다. 위기가 왔을 때 나를 지켜줄 수 있는 존재는 남이 아니라 자신이라는 인식이 등장한 것이다. 심리학자 융은 본인의 내면을 바라보는 인간은 깨어난다고 이야기했다. 내가 나를 의지해야 한다는 자각이 트렌드를 만나면서 온갖 자기 개발서와 강연이 쏟아져 나왔다. 과거를 인정하고 단점과 결점을 받아들이라는 메시지는 사람들을 위로했다. 그러나 불황이 만든 불안감은 일시적인 위안으로 극복할 수 없는 벽과 같았다.


 감상적인 위로가 주는 용기는 현실 앞에 금세 사라져 버렸다. 성냥팔이 소녀가 아무리 성냥불을 켜도 매서운 눈보라 속에서 온기를 느낄 수는 없다. 사람들은 비정한 각자도생의 시기를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경제적 자유를 운운하는 사람들이 말했던 장밋빛 미래는 환상에 불과했다. 격차는 좁힐 수 없을 만큼 벌어졌고 치솟는 물가와 반대로 삶의 질은 급격하게 떨어졌다. 자칫하면 지금 서있는 곳마저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밀려오자 내면으로 눈을 돌렸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옛말이 경종을 울렸다. 계속되는 전쟁과 불황으로 인해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태로운 세상이다. 나를 구해줄 사람은 나뿐이라는 확신이 곳곳에서 확산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화려한 성공을 쫓던 시선을 거두고 내면을 돌아봤다.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은 낯설고 어색하다. 조심스럽게 대면한 내 진짜 본모습은 많이 초라하다. 보잘것없는 민낯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심란해진다. 생각이상으로 나약하고 남들이 보는 것보다 훨씬 더 유약한 진짜 나를 받아들이는 것은 쉽지 않다. 유행에는 한 시도 눈을 떼지 못하면서 정작 내밀한 감정을 들여다볼 시간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자신을 인정하는 용기를 낼 수 없었다. 현실을 받아들이고 처지를 납득하는 것이 용기다. 그리고 용기는 자존감을 만든다.


 초라한 본인의 내면을 당당하게 인정할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래서 자신 있게 본모습을 드러낼 수 있는 사람이 드문 것이다. 자존감이 낮은 수많은 사람들은 익숙하게 가면을 쓰고 산다. 그들은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누군가 싫어할까 봐 눈치를 보고 누가 나쁘게 소문을 낼까 봐 주저한다. 계속해서 남을 의식하다 보면 결국 나를 잃어버리게 된다. 한국은 줄곧 이랬다. 그리고 코로나가 만든 고립 속에서 불안과 우울감은 이전보다 더 심해졌다. 모든 것이 정상화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코로나 이전과 완전히 다른 곳이 되어버렸다.


 이제 사람들은 고민이나 걱정을 쉽게 토로하지 않는다. 익명성이라는 가면을 쓰고 다양한 커뮤니티를 돌면서 위로를 요구하고 공감을 구걸한다. 외면하고 살았던 내면을 들여다보는 용기는 가면을 쓰면 무의미해진다. 정서적인 교류마저 온라인이 대체하면서 사람들의 마음은 점점 활기를 잃고 있다. 보이지 않는 벽이 만든 고립 속에 모두가 섬처럼 멀어졌다. 길을 잃고 헤매는 이들을 미혹하는 협잡꾼이 넘치는 시대다. 자기 개발서 몇 권을 읽고 삶이 바뀌길 바라는 사람들은 가르침을 줄 누군가를 찾아다닌다. 코로나 끝에 자유를 얻었지만 자신을 가두고 사는 사람들은 전보다 더 늘어났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고립은  늘어날 것이다. 함께 협력하고 같이 연대하는 방법을 우리 사회는 점점 잃어가고 있다. 다들 편을 갈라서 싸우면서 서로 증오를 쌓아가는 중이다. 배려존중이 사라진 곳에는 갈등과 혐오만 남는다. 살기 힘든 사회가 될수록 사회구성원들의 불안은 갈수록  심해진다. 자기 개발서를 찾고 강연을 듣는 것은 어쩌면 생존본능 일지도 모르겠다. 다들 의지할 대상이 필요한  같다. 괜찮다는 한마디를 해줄 사람이 없어서 멘토를 찾고 마음을 나눌 사람이 없어서 비교에 집착하는 시대다. 손가락 하나로 모든 일을 해결할  있는 세상을 살고 있지만 정작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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