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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민 Sep 02. 2024

불황은 인형 뽑기와 함께 온다

 고깃집이 폐업한 자리에 또 오락실이 들어왔다. 보랏빛 조명으로 물든 매장 안에 인형뽑기기계가 줄지어 놓여있다. 건너편 상가 1층에도 똑같은 가게가 영업 중이다. 불황은 늘 인형 뽑기와 함께 찾아온다. IMF때부터 그랬다. 90년대 말 오락실과 인형뽑기방은 할 일을 잃어버린 아저씨들의 아지트였다. 아저씨들은 인형을 잔뜩 뽑아서 구경하는 어린애들에게 나눠줬다. 적은 돈으로 작은 성취감을 얻기 위해 인형 뽑기에 열을 올렸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린 내 눈에 비친 중년남자의 뒷모습은 무척 쓸쓸해 보였다. 인형을 품에 한가득 안고 있어도 어딘가 모르게 외로운 느낌이었다.


 학교 끝나고 인형뽑기방에 가면 양복을 입은 남자들이 인형을 건져 올리는 작업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바닥에 널브러진 서류가방이 그들의 처지를 말해주는 것 같았다. 저녁 먹을 시간이 되면 아저씨들은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싸구려 인형을 안고 퇴근 시간에 맞춰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은 물에 젖은 솜처럼 무거웠을 것이다. 어른들은 살기 힘들다는 말을 인사 대신 주고받았다. 불황과 호황은 낮과 밤처럼 번갈아가며 찾아온다. 세기말을 앞두고 벤처열풍이 불었고 닷컴버블이 터지기 전까지 주식투기가 유행처럼 번졌다. 피시방이 게임방으로 불리던 시절이었다.


 시장이 무너지면서 오락실이나 인형뽑기방에 보이던 남자들은 모두 사라졌다. 늦은 밤 창문 너머로 희미하게 울려 퍼지는 구급차 소리가 자주 비극으로 이어지던 시기였다. IMF를 조기졸업하고 숨통이 트이나 싶었던 경기는 곧 다시 주저앉았다. 좌절감을 달래기 위해 사람들은 즐거움을 찾아 헤맸다. 동네마다 바다이야기 같은 성인오락실이 하나둘씩 등장했다. 뒤틀린 욕망은 햇볕이 들지 않는 음지로 모인다. 성인오락실은 서울과 지방 가릴 것 없이 독버섯처럼 골목을 잠식했다. 아이들은 오락실 대신 피시방을 선택했고 어른들은 슬롯머신 앞에서 세월을 낭비했다.


 한동안 인형뽑기 기계를 볼 수 없었다. 그러다 미국에서 서브프라임이 사태가 터졌다. 또다시 위기가 찾아왔다. 불황의 풍경 역시 반복됐다. IMF에 대패삼겹살이 유행했듯이 9900원에 저가 냉동육을 파는 고깃집이 성행했다. 그리고 몇 년 만에 인형 뽑기가 다시 돌아왔다. 인형뽑기방이라는 이름 대신에 샵이라는 그럴싸해 보이는 단어를 선택했다. 싸구려 인형 대신에 보노보노나 도라에몽 같은 캐릭터 인형이 인기를 끌었다. 인형의 퀄리티와 게임가격은 동반상승했다. 한 판에 100원이 아니라 500원이었다. 오락실뿐만 아니라 술집 골목마다 사탕이나 젤리가 들어있는 뽑기 기계가 놓여있었다.


 술에 잔뜩 취한 사람들은 츄파춥스나 멘토스 몇 개를 얻으려고 기계 안에 지폐를 밀어 넣었다. 최악의 상황은 지나갔지만 호황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스마트폰이 등장하면서 세상이 변했다. SNS에서 유행하는 프랜차이즈들이 골목마다 피고 지기를 반복했다. 꽃은 질 때 아름답지만 삶은 달랐다. 유행 따라 개업과 폐업을 반복하면서 번화가는 카멜레온처럼 수시로 옷을 갈아입었다. 동네 오락실은 자취를 감췄고 피시방도 내리막 길에 접어들었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모바일게임에 중독된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성인오락실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인형뽑기샵은 게임장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간판을 바꿔달고 살아남았다. 낡은 옷을 갈아입으면서 많은 것들이 변했다. 매장 내부의 정신없는 조명이나 시끄러운 일렉트로닉 음악은 라운지바나 클럽을 닮았다. 아저씨들이 기웃거리던 인형뽑기방은 유튜브에서나 볼 수 있는 90년대의 낡은 풍경이 됐다. 유리로 만든 장식장 안에 놓인 인형은 꼭 거대한 트로피 같았다. 이제 뽑기 한 판에 1000원이다. 카드결제도 된다. 세상이 변했지만 승부욕과 소유욕을 자극시키는 영업방식은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사람들은 경제가 안 좋다는 말을 인사말처럼 주고받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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