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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민 Aug 21. 2024

폭염

 사람을 만나면 인사 대신 덥다는 말이 먼저 나오는 여름이다. 오늘 최고기온은 35도다. 몇 년 지나면 40도가 여름기온의 표준이 될지도 모르겠다. 매년 여름철 기온은 신기록을 경신하는 중이다. 올해는 폭염의 경계선이 완전히 사라졌다. 밤기온은 27도를 넘나들고 있다. 해가 져도 열기는 식지 않는다. 끔찍한 습도가 온 세상을 거대한 찜통으로 만들어버렸다. 서울은 한 달째 열대야가 이어졌다. 비가 내리고 나면 모기가 기승을 부린다. 여름은 사람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계절이다.


 너무 더운 날씨라 옷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작년에는 리넨셔츠를 입었는데 올해는 반팔 티셔츠에만 손이 간다. 여름용 슬랙스는 옷장에서 꺼낸 적도 없다. 긴바지는 도저히 입을 자신이 없다. 여름정장을 입은 사람들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넥타이를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갑갑함을 느끼게 된다. 7월만 해도 여름용 반팔 니트를 입은 사람들을 흔하게 볼 수 있었다. 하지만 폭염이 시작되자 모습을 감춰버렸다. 여름 멋쟁이 쪄 죽고 겨울멋쟁이 얼어 죽는다는 말은 틀렸다. 폭염경보 앞에서 멋은 소용없다. 생존본능이 개성을 이긴다.


 취향은 고집이다. 조금 불편하고 귀찮아도 멋을 추구하는 주관적인 선택에서 만족감을 얻는다. 하지만 너무 덥거나 지나치게 추운 날씨가 되면 본능이 취향을 이긴다. 날씨가 사람의 고집을 꺾어버린다. 물론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는 일찌감치 고집을 내다 버렸다. 애초에 멋쟁이가 아니라 여름용 니트나 시어서커 슈트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리넨셔츠가 여름패션의 마지노선이었지만 올해는 내려놨다. 몸이 편해야 맘이 편해진다. 편한 것은 생각보다 쉽게 취향을 이긴다.


  작년 봄, 세일 기간을 이용해서 언더아머의 운동복을 여러 벌 구입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현명한 소비였다. 올여름 내내 몸에 꼭 맞는 슬리브리스 타입의 운동복을 입고 지내는 중이다. 여름철의 최강자는 스포츠웨어다. 폴리에스터소재로 만든 기능성 티셔츠는 입자마자 신세계를 선사한다. 유니클로 에어리즘보다 훨씬 더 시원하다. 아토피 때문에 피부에 닿는 옷은 면 100% 혹은 마 100%를 고집하지만 한여름만은 예외다. 흡습성과 속건성을 자랑하는 스포츠티셔츠는 폭염을 이겨낼 수 있는 생존도구다.


 여름은 점점 더 길어지고 있다. 30년쯤 지나면 사계절이라는 단어는 사라지고 여름만 남을 것 같다. 온대기후가 아열대기후로 바뀌는데 그쯤 걸렸다. 지금은 제주도에서 바나나와 망고를 재배하고 있다. 소나무가 사라진 공원에 야자수가 늘어서 있는 모습을 상상했다. 도토리나 밤송이 대신에 코코넛이 떨어져 있는 풍경이 현실화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세상이 오면 사람들의 생활도 크게 달라질 것이다. XR과 AR 기술이 보편화된다면 폭염을 피해서 실내에서만 활동하게 될까?


 화성에 식민지를 건설하고 외우주로 진출하는 시대가 와도 인류는 기후를 정복할 수 없을 것이다. 더위가 심해질수록 에어컨을 더 많이 트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눈부신 기술 발전을 이룩했지만 여전히 자연 앞에서 무력한 존재다.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만나면 인간은 한계를 체감하게 된다. 풀 수 없는 문제 앞에서 고심하고 있지만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가까운 미래의 우리는 늘 그랬던 것처럼 답을 찾을 수 있을까? 인간이 처한 상황은 냄비 안에서 물이 끓기를 기다리는 개구리를 닮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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