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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민 Sep 20. 2024

아름다운 잡초

 잡초는 자연의 위대한 생명력을 상징한다. 어디서나 잘 자라고 어디서든 깊게 뿌리를 내리는 식물이다. 사람의 발길이 끊긴 자리마다 자연의 손길이 닿는다. 오염된 땅이나 텅 빈 마을, 버려진 공장부지까지 시간이 지나면 모두 싱그러운 초록빛으로 물이 든다. 자연은 외면하거나 차별하지 않는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똑같이 감싸 안아준다. 폐허가 된 땅 위로 잡초가 터를 잡는다. 바람에 실려온 씨앗이 하나 둘 뿌리를 내리고 나면 어느새 무리를 형성한다. 식물이 자란 곳은 여러 생물들이 함께 어울려 사는 보금자리와 터전이 된다.


 안양에서 의왕으로 넘어가는 경수대로를 지나다 보면 넓은 들판이 나온다. 아파트단지와 공장이 즐비한 익숙한 풍경 속에 푸른 들판이 덩그러니 놓여있다. 회색빛이 점령한 도시 한가운데 푸른 섬이 떠있다. 지금은 펜스에 둘러싸여 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개방되어 있었다. 공장이 있던 자리라 축구장 열 개쯤은 거뜬히 들어갈 만큼 넓은 땅이다. 텅 빈 채 버려져있던 넓은 부지는 시간이 지나자 완전한 녹지가 됐다. 바람이 불면 무리를 이루고 서있는 억새가 눕는 모습이 보인다. 초목이 뒤덮은 들판 위로 동물들이 무리를 지어 다닐 것 같다.


 동네 재개발로 인해 상록마을이 사라진 자리에 커다란 공터가 생겼다.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를 걷어내고 드러난 붉은 흙 위로 장맛비가 내렸다. 폭우와 폭염을 동반한 긴 장마가 끝날 무렵 공터는 작은 숲이 됐다. 공사용 가림막 너머로 풀잎이 하나 둘 보이더니 여기저기에 빽빽한 풀숲이 생겼다. 바위와 산을 깎아낸 자리마다 풀과 꽃이 돋았다. 생명은 쉬지 않는다. 사람들이 떠난 황량한 빈터에 생기를 불어넣고 황폐한 땅에 풍요로움을 선사한다. 자연의 회복력이 미치지 않는 곳은 없다.


 집 앞 골목 보도블록 위로 잡초가 올라왔다. 잡초는 혹독한 여름을 이겨내고 살아남아서 꽃을 달았다. 외출하다 우연히 눈길이 꽃에 닿았다. 작고 파란 꽃을 보고 살아있길 잘했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사람의 마음에도 자연의 손길이 닿는다. 부서진 건물 잔해가 널려있는 텅 빈 공터처럼 공허한 내면에 작은 꽃 한 송이가 피었다. 지친 마음을 위로받은 느낌이었다. 사진을 찍어뒀다. 이미지 검색을 해서 이름을 찾아보기로 했다. 잡초라는 말은 조금 거칠고 투박한 느낌이 든다. 식물도 저마다 고유한 본명을 가지고 있다. 이름 없는 풀은 없다. 이름을 아직 모르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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