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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민 Sep 24. 2024

안전제일

 정류장을 앞을 지나다 건너편에 정차 중인 공항리무진 버스에 눈길이 닿았다. 밀크티 색깔의 버스는 옆면에 작은 문이 달려있었다. 픽토그램을 보고 긴급상황에 쓰는 탈출구라는 사실을 알았다. 차내에 비치되어 있는 작은 비상탈출용 해머보다 나은 것 같다. 내부에도 비상구 표시가 되어있어서 찾기 힘든 해머보다 더 직관적이다. 교통사고로 출입구가 고장 났을 때는 유리창을 깨고 나가면 된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막상 큰 사고가 나면 정신이 없다. 사고가 발생했을 때 침착한 유형은 크게 둘이다. 전문적인 훈련을 받았거나 비슷한 사고경험이 있거나. 그 이외의 사람들은 냉정함을 잃어버린다.


 스무 살 겨울, 친구들이랑 바다를 보러 여행을 갔다 다 같이 죽을 고비를 넘긴 적이 있다. 가스버너에 불길이 치솟으면서 가스통이 폭발할 뻔했다. 죽음을 예감하면 주마등이 지나간다는 말은 진짜다. 시간이 느리게 가는 것처럼 슬로모션이 걸린다는 말도 진짜다. 불길이 번지는 순간이 사진처럼 선명하게 남아있다. 친구 하나가 괴성을 지르면서 가스버너를 발로 찼고 나는 그 위에 담요를 덮었다. 다른 친구가 넘겨받아서 밖으로 내던졌다. 충격을 받으면서 가스통이 분리됐고 모래구덩이에 처박히면서 불도 꺼졌다. 그날 이후로 친구들과 나는 안전에 관해서는 무척 깐깐한 기준을 갖게 됐다.


 사고는 예고 없이 찾아오는 만큼 만약이 없다. 그래서 평소에 안전과 관련된 정보를 자주 찾아보는 습관이 필요하다. 게임은 실패해도 여러 번 반복할 수 있지만 실제상황은 단 한 번뿐이다. 아무리 침착한 사람이라도 돌방상황이 발생하면 당황할 수밖에 없다. 안전수칙을 잘 알고 있어도 긴장해서 시간을 허비할 수도 있다. 그래도 알고 있는 편이 낫다. 모르면 기회조차 없다. 속수무책으로 당할 뿐이다. 화재예방교육을 받았을 때 담당자였던 소방전문가는 생존율을 높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안전수칙을 숙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사회는 재난이나 사고에 유난히 취약한 편이다. 주기적으로 큰 인명피해를 겪으면서도 여전히 의식개선은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긴급상황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생존기술을 교육하려는 시도나 노력 모두 부족하다. 지하철에서 사고가 발생하면 과연 몇 명이나 비상핸들을 조작해서 문을 열고 나올 수 있을까? 머리로 아는 것과 직접 몸으로 경험하는 것은 다르다. 당장 그런 일이 발생하면 나도 허둥댈 것 같다. 사고 이후로 친구들과 나는 여행을 가면 늘 비상구와 소화장비 위치를 파악하는 습관이 생겼다. 위험한 일은 그 후로 한 번도 없었지만 경각심을 갖게 됐다.


 백미러 하단에는 사물이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다는 문구가 들어가 있다. 사고나 위험도 마찬가지다. 사고는 일상 가까이에 있고 위험은 생활 속에 도사리고 있다. 언제 어떤 형태로 들이닥칠지 알 수 없다. 예측할 수 없는 문제는 대비하고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 친구 하나는 아이를 갖게 되자 수영부터 배웠다. 친한 동생은 고령인 아버지와 함께 안전교육을 이수했다. 가장 큰 사랑은 소중한 것을 내손으로 안전하게 지키는 것이다. 그래서 안전은 사랑의 실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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