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다. 시원한 바람이 분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아래 하얀 햇살이 쏟아진다. 행복한 계절이 왔다. 여름 내내 피부에 들러붙던 습기가 사라졌다. 시야를 가리는 칙칙한 잿빛 구름도 먼 곳으로 떠났다. 어디를 가도 나들이 가는 기분이 들 것 같은 화창한 가을이다. 빠르게 가방을 챙겨서 밖으로 나왔다. 산을 타야겠다. 야외활동하기 정말 좋은 날이다. 걷다 보니 주변에 등산객들이 하나 둘 나타났다. 동네에 산림욕장이 있다 보니 봄가을만 되면 등산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아온다. 자연을 사랑하는 이들은 산타기 좋은 날을 놓치지 않는다.
가을은 모두가 사랑하는 계절이다. 추운 겨울이 가고 찾아오는 따스한 봄볕도 좋지만 여름의 끝자락에서 만나는 시원한 가을바람은 더 각별하다. 바람이 불 때마다 가을이 다가오는 소리가 들린다. 나뭇가지와 이파리가 바람에 스치면서 잔잔한 파도소리를 만들어낸다. 그래서 가을만 되면 자주 산을 찾는다. 열심히 걷다가 바람이 불면 자리에 서서 눈을 감고 귀를 기울였다. 번잡한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는 느낌이 참 좋다. 느린 걸음으로 산책하듯이 걷다가 결국 정상까지 올라왔다. 해를 등지고 완만한 능선이 햇살에 물드는 모습을 바라봤다.
산에서 내려오는 길에 작은 개울을 만났다. 조그마한 계곡에서 내려오는 물이 유난히 맑다. 추수 위로 빛나는 윤슬이 물고기 비늘처럼 하늘거렸다. 봄햇살이 환한 느낌이라면 가을햇살은 투명한 느낌이다. 봄볕은 모든 사물을 노랗게 물들이고 가을볕은 사물의 고유한 빛깔을 이끌어낸다. 자연광 아래 아름답지 않은 것은 없다. 가을빛을 품은 부드러운 햇살은 사물이 품고 있는 본래의 색감을 되찾아준다. 가을은 곱다.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들이 전부 영롱한 빛으로 물드는 계절이다.
여름하늘보다 채도가 높은 가을하늘의 선명한 쪽빛을 보면 기분이 상쾌해진다. 가만히 바라보기만 해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근심이나 걱정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깨끗하게 씻어주는 것 같다. 푸른 하늘을 배경 삼아 화창한 햇살을 받고 서있으면 행복감을 온전하게 느낄 수 있다. 행복은 날씨가 반이다. 날씨가 좋은 날은 가슴속에서 설렘이 고개를 든다.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예감이 마구마구 샘솟는다.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마냥 기분이 좋다. 또 가을바람이 분다. 살아있어서 다행이다. 참 좋은 계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