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현상으로 바라본 비트코인 2편
사람들은 비트코인 가격에 집착한다. 달러 헤게모니의 혼란 속에서 등장한 현상으로 보려 하지 않는다. 비트코인에 우호적인 이들도 달러나 미국을 겨냥하면서 매치업을 만들기를 즐긴다. 그러나 비트코인은 달러통화체계와 경쟁하는 제로섬게임을 할 이유도 힘도 없다. 비트코인은 그냥 비트코인이다. 힘의 논리는 시장의 논리다. 비트코인은 사토시 나카모토가 만들었지만 방향성을 결정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므로 전통적인 힘의 논리가 통하지 않는다. 바로 이런 점이 ‘지속 가능한 영속성(sustainable perpetuity)’을 부여한다.
지속가능한 영속성이란 완벽을 의미하지 않는다. 비트코인은 근본적으로 카오스 상태다. 결정권자는 없지만 수요 공급 구조로 시장이 유지되는 역설적인 특성을 갖고 있다. 수요와 공급 모두 무슨 일이 발생할지 모르는 불확실성 속에 서로를 끌어당긴다. 매우 높은 불확정성이 비트코인을 지배한다. 일반적인 경제시스템은 정부와 시장참여자들 간에 법률과 정책이 존재한다. 비트코인은 그런 개입이 전무하다. 그저 혼돈으로 움직일 뿐이다. 그래서 화폐라는 평가는 어폐가 있다.
화폐는 각국 중앙정부에 의해 발행되는 정부가 보증하는 신뢰가치 저장소다. 국가주도로 작동하며 경제나 사회문화적 배경의 영향으로 변동성을 갖는 체계(system)다. 혼란이 발생하면 국가는 개입하고 교란을 방지하기 위해 안전망을 운영한다. 이 점이 화폐와 시장이 갖는 고유한 특성이다. 그러므로 비트코인은 화폐보다는 현상(phenomenon)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화폐와 유사한 점도 있지만 차이점이 더 크다. 돈보다는 고위험 투기시장에서 통용되는 파생상품이나 콜옵션과 닮았다.
비트코인은 여러 위기를 거치면서 현재까지 살아남았다. 끈질긴 생존능력을 부여하는 것은 비트코인의 원동력인 혼돈이다. 거창하게 말했지만 포장지를 벗기면 속에 있는 알맹이는 욕망과 불안이다. 자본시장에서 발생하는 모든 현상은 탐욕을 먹이 삼아 체급을 키운다. 전 세계적인 위기에서 비롯되는 변동성을 흡수하면서 영향력을 확장한다. 전쟁이나 분쟁 같은 지정학적 위기, 장기침체와 불황, 자산과 화폐가치 하락에 대한 걱정. 비트코인은 이런 먹잇감을 폭식하면서 지금까지 생존했다.
위에서 언급한 ‘지속가능한 영속성’이란 결국 인류의 본성인 탐욕을 먹고 돌아가는 구조를 의미한다. 비트코인은 정부나 중앙은행 같은 결정권자가 없는 이상적인 금융혁명이 아니다. 탐욕과 혼란이 무제한으로 영향력을 발휘하는 현상이다. 비트코인은 가격이 만드는 추세는 있지만 달러가 만든 세계관을 깨뜨릴 만한 힘은 없다. 포장지를 다시 씌워보자. 비트코인은 전통적인 경제시스템에 존재하지 않는 ‘독립적인 정체성(isolated identity)’을 가지고 있다. 불안과 탐욕을 먹고 자라는 변동성과 불확실성을 가진 파생상품이다.
대내외적 변동성이 위기로 작용하는 국가는 자국의 화폐나 자산보다 비트코인을 선호할 것이다. 비트코인이 갖는 가장 큰 매력은 어디서나 달러로 ‘환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비트코인과 연동된 테더나 서클은 모두 미국 달러를 기반으로 한다. 비트코인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달러의 권력은 수직상승한다. 비트코인은 달러패권이라는 거대한 비구름 아래 펼쳐져 있는 조금 큰 파라솔이다. 기축통화가 만든 질서 아래 작동하는 ‘환전시장’이 바로 비트코인이다. 선진국일수록 비트코인보다 자국의 자산을 더 선호한다. 맨해튼이나 압구정 그리고 도쿄 미나토구의 부동산과 비트코인을 바꿀 부자는 적을 것이다.
비트코인은 달러의 그림자다. 달러의 그늘에서 완벽하게 벗어날 수 있는 통화는 존재하지 않는다. 화폐가 가지는 권력은 경제력과 군사력 그리고 문화지배력에서 나온다. 국가나 운영자가 없는 비트코인은 제3지대를 형성할 수는 있지만 달러가 만든 세계관을 깨뜨릴만한 파괴력은 없다. 체제를 부술 만한 힘이 없다면 변화는 혁신에서 그친다. 혁명으로 발전하지 않는다. 암호화폐 시장의 유동성도 결국 달러발행량에 달려있다. 전 세계적으로 비트코인을 환전할 때 대부분 달러로 환전한다. 달러는 모든 것을 지배하고 통제하는 힘의 질서를 품고 있다. 비트코인의 승리는 결국 달러의 승리다.
미국 중심의 달러패권주의는 달러를 이외의 경제체제를 불허한다. 새로운 질서를 내세우면 국제사회에서 제재당한다. 미국의 지배력에서 벗어날 수 있는 국가는 없다. 달러가 통용되는 곳에서는 늘 코카콜라와 맥도널드, 스타벅스를 볼 수 있다. 화폐는 곧 지배력이다. 돈이 통용되면서 영향력을 끼치는 곳은 그 나라의 식민지나 다름없다. 달러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곳은 없다. 중국이나 이란 심지어 북한까지 달러의 영향권 아래 놓여있다. 비트코인을 통화로 삼는다는 말은 달러헤게모니에서 탈출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새로운 형태로 편입된다는 뜻이다.
개입하는 주체가 없다는 비트코인의 무결성은 ETF의 등장으로 유명무실해졌다. 경 단위의 자산을 운용하는 월가의 헤지펀드들은 암호화폐 지수를 통해서 사실상 비트코인에 목줄을 채웠다. 막대한 자본과 달러패권이라는 든든한 우군은 시장의 방향성을 결정하는 키를 손에 쥐어줬다. 비트코인은 미국달러시장의 영향을 받지만 기축통화인 달러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 둘의 상하관계는 명확해졌다. 사실상 비트코인이 달러 아래 편입됐다. 달러의 영향력 아래 있지만 자유를 추종하는 이들에게 비트코인은 여전히 매력적인 대상이다.
중앙금융이나 국가 같은 중개자를 거치지 않고 직접 거래할 수 있다는 점은 장점으로 꼽힌다. 전쟁 같은 위기 상황에 고려할 수 있는 선택지 중 하나가 됐다. 국경 없는 여러 자금의 자유로운 피난처가 될 수도 있다. 감독기관이나 발행기관이 없으므로 규제에서 자유로운 특성도 강점으로 불리고 있다. 그리고 인생역전을 노리는 투자자들에게 10억 100억을 거론하는 비트코인의 전망은 복권이나 다름없다. 야수의 심장을 달고 있는 투자자들에게 앞으로도 사랑받을 것이다.